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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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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곳곳이 지뢰밭

조직위원회는 연일 대국민 사과하고, 코로나19 확산세도 부담
“올림픽 중지는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등록 2021-07-23 18:21 수정 2021-07-23 22:48
2021년 7월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7월1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환영 행사를 연 모토아카사카 영빈관 주변에서 ‘올림픽 취소’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7월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7월1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환영 행사를 연 모토아카사카 영빈관 주변에서 ‘올림픽 취소’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점입가경이다.

올림픽 개막식을 하루 앞둔 7월22일 낮 12시께 속보가 전해졌다. 도쿄올림픽 개·폐막식 쇼 연출을 맡은 고바야시 겐타로를 해임한다고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공식 발표했다. 코미디언 출신인 고바야시가 과거 사람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잔뜩 쌓아놓고 ‘유대인 대량 참살 놀이’라고 야유한 영상이 문제가 된 것이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하시모토 세이코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개막식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나 많은 관계자, 국민, 도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7월21일에도 하시모토 위원장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과거 학창 시절에 장애인 친구에게 배설물을 먹이고 폭행하며 괴롭힌 학교폭력 전력으로 7월19일 전격 사퇴한 뮤지션 오야마다 게이고 때문이다. 오야마다는 올림픽 개막식 영상 음악을 담당한 뮤지션이다. 하루 만에 하시모토 위원장은 또다시 대국민 사죄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쯤 되면 3월 개·폐막식 연출 총괄감독이던 사사키 히로시가 인기 탤런트의 뚱뚱한 외모를 비하하는 연출 계획을 제안한 것이 알려져 사임한 것은 차라리 애교에 속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지니 일본 국민 사이에서 “진짜 올림픽 열리는 것 맞아?”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도쿄올림픽을 취재하는 일본 기자들의 입에선 “왠지 불안해. 뭔가 지뢰밭을 걷는 것 같다”는 말이 비명처럼 흘러나왔다.

각국 정상들도 찾지 않는 개막식

스가 요시히데 정부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애초 적어도 80~120명가량 각국 정상급 요인이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것으로 계획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각국 수뇌부 80여 명이 참석했으니 도쿄올림픽에는 100명은 넘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수년에 걸쳐 각국 정상들을 상대로 치밀한 로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19라는 긴급사태에 직면하고, 개막식을 하루 앞둔 7월22일 방일하는 정상급 요인은 총 15명으로 집계됐다.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우익 성향 <요미우리신문>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일본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30여 명이라고 부풀려서 보도했다. 정상급 요인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루브산남스라이 오윤에르데네 몽골 총리가 유일하고, 그동안 스가 총리가 몇 번씩이나 직접 초대한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질 바이든 여사가 일본을 찾았다. 은근히 방일을 기대해 정성을 들였던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오지 않고, 대신 당 서열 25위인 쑨춘란 국무원 과학기술교육문화담당 부총리가 개막식에 참석한다.

비록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가 있었지만 스가 정부의 엉성한 방역 대책과 은폐 행위가 결국 일본에 방문할 예정이던 각국 요인들까지 참석을 포기하게 했다. 한 예가 지난주까지만 해도 방일 확정이던 영국의 앤 공주가 연일 계속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식 참석을 포기한 것이다. 도쿄올림픽을 유치한 아베 신조 전 총리도 국민의 반대 여론을 의식했는지 불참 의사를 밝혀, 국민으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반 관중의 개막식 입장도 애초 2만 명에서 1만 명, 5천 명 순으로 줄어들다가 종국엔 950명만 참가하는 초라한 개막식이 되고 말았다. 이뿐만 아니라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일본 대기업의 총수들도 불참석 릴레이에 끼어들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을 비롯해 도요타, 후지쓰, 아사히신문, 아사히맥주, NTT, NEC 등도 도쿄올림픽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좋지 않자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참석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55% 이상이 “도쿄올림픽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22%가 “연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일본 국민에게 도쿄올림픽이 얼마큼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스가 총리의 정치생명을 위해 강행했나

“저는 기본적으로 도쿄올림픽 개최를 반대해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필요하지 않거든요. 무리해서 올림픽을 하는 것보다는 코로나19로부터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세계에 일본을 어필할 수 있다고 봐요. 스가 총리나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모두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국민의 생명이 중요한 것을 무시하고 올림픽에서 성과를 얻으려고 해요. 그래도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보다 나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지금은 너무 실망해서 기대를 안 합니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후지모토 지카게의 말이다.

심지어 예선 경기가 열리는 후쿠시마나 홋카이도 경기장 주변에선 “올림픽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19 확산을 조장하는 올림픽을 당장 중지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매일같이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문제는 6개월 전부터 한국 정부 쪽이 요청해 일본 정부가 교섭에 나섰다고 한다. 한국 쪽 요구사항은 1시간 정도의 회담 시간과 한-일 현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상정해놓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문 대통령이 방일할 경우,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다른 나라 요인들과 똑같이 통역을 동반한 상태에서 악수하고 인사하는 15분 정도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이 보도하는 ‘특별대우’는 스가 총리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 스가 총리의 입장에서 따져보면 올림픽 개최, 코로나19 방역 대책, 그리고 9월 중의원 해산과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등으로 자기 앞가림을 하기에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하자고 졸랐다는 게 <요미우리신문>과 외무성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 와중에 JTBC가 보도한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망언이 일본에까지 전해지고, 일본 정부 내에선 두 가지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일부 부적절한 말만 빼면 소마 공사의 발언은 맞는 말 아니냐, 통쾌하다”는 반응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저렴한 발언을 입 밖에 내는 것은 일본 외교관으로서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으로서도 수치다”라는 의견으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7월22일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사이클링 경기장 관중석에 한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외롭게 앉아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7월22일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사이클링 경기장 관중석에 한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외롭게 앉아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스토커라고?

국회를 출입하는 일본 기자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문 대통령 혼자서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소마 공사의 발언 중에서 ‘마스터베이션’을 ‘스토커’로 바꾸면 일본 정부의 심중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된다는 주장이다.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이 아무 조건 없이 방일하면 의례적으로 정중하게 모시겠다는 그 이상, 그 이하의 아무것도 예정해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외무성 관계자가 교섭에 나선 것은 일본 쪽 주장대로 한국 정부가 졸라서일까? 아직도 수수께끼다. 다만 확실한 것은 스가 정부가 문 대통령의 조건부 방일을 ‘극도로’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7월21일, 일본 정부 산하 코로나19 감염증대책분과회 회의를 마친 오미 시게루 회장은, 현재 상태가 계속된다면 8월 초쯤이면 도쿄의 하루 확진자 수가 3천 명이 넘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다른 의료 전문가들은 3천 명이 아닌 5천 명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7월21일 도쿄의 신규 확진자 수는 1832명, 22일에는 1979명으로 늘었다. 전국 확진자 수는 5381명이나 됐다.

문제는 스가 정부나 도쿄도가 유전자증폭(PCR) 검사 수를 전혀 늘리지 않는 점이다. 7월21일만 해도 도쿄도 인구 약 1400만 명 가운데 겨우 8206명만 검사했다. 일본인 사이에선 도쿄도가 발표한 확진자 수에 곱하기 5를 하면 실제 확진자 수에 가깝다는 말이 상식으로 통한다. 도쿄도가 검사 수를 늘리지 않는 이유는 올림픽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선수·관계자 등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감염도 심각하다. 7월21일 9명, 22일 낮 12시까지 12명 등 총 91명의 선수와 올림픽 관계자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선수들의 경기 출전 자격이다. 도쿄올림픽 위원회가 밀접접촉자더라도 경기 시작 6시간 전에 검사받아 음성으로 나오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잠복 기간을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한 결정이다. 경기 중 거친 스킨십을 할 수밖에 없는 종목의 선수인 경우 집단감염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도 도쿄올림픽 위원회는 선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위험천만한 결정을 내렸다.

올림픽 취재를 하는 일본 기자들 사이에선 다음과 같은 말이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애꿎은 선수가 코로나19에 노출돼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선수를 보호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문제는 스가 정부가 그런 여력이나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도쿄올림픽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최 능력도 없으면서 무리해서 강행했다. 이제 올림픽 중지는 시간문제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지뢰밭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싸한 기분이다.”

도쿄(일본)=유재순 JP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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