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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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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코로나19·편견… 난민이 된 미얀마 ‘난민신청자’

‘쿠데타 2년’ 고국에선 폭압적인 군부의 위협, 한국에선 일하고도 환영받지 못한 신세
‘코리안드림’의 이주노동자 “행복은 고사하고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등록 2023-02-03 16:49 수정 2023-02-10 00:46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맞은 2023년 2월1일(현지시각), 미얀마 접경국 태국의 수도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인들이 아웅산 수치의 석방과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사령관 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맞은 2023년 2월1일(현지시각), 미얀마 접경국 태국의 수도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인들이 아웅산 수치의 석방과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사령관 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3년 2월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한 지 2주년을 맞았다. 이날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 양곤의 거리는 깊은 적막에 빠져들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가들이 접경국 타이에서 발행하는 독립매체 <이라와디>는 “군부의 위협에도 양곤, 만달레이, 네피도 등 미얀마 전역의 도시들에서 상점이 문을 닫고 주민들은 집에 머무는 침묵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의 연대 침묵시위는 2021년 쿠데타 다음달인 3월과 그해 12월 세계 인권의 날, 2022년 2월1일 쿠데타 1주년에 이어 네 번째였다.

앞서 2021년 2월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총선 결과에 불복해 새 의회 개원일에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했다. 미얀마 민주화 진영은 군부의 무차별 학살과 민주화운동 탄압에 맞서 광범위한 시민불복종운동을 벌이는 한편, 민족통합정부(NUG)와 시민방위군(PDF)을 조직하고 2년째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2023년 1월23일 미얀마 군정은 올해 총선 실시 방침을 확인한 데 이어, 1월27일에는 자신들이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지목한 정치세력의 총선 참여를 금지한 새 선거법을 공표했다. 2010년과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주의민족동맹의 발을 묶고 군부의 합법적인 장기 집권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군정은 1월 중순부터 자국민의 여권 발급과 갱신도 전면 중단했다. <이라와디>는 “군부의 여권 업무 중단은 외국에 나간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민주화 진영을 지원하는 송금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맞은 2023년 2월1일(현지시각), 미얀마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의미의 침묵 시위를 벌인 가운데, 양곤의 중심가에 인적이 거의 끊긴 채 적막감이 감돈다. AFP 연합뉴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맞은 2023년 2월1일(현지시각), 미얀마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의미의 침묵 시위를 벌인 가운데, 양곤의 중심가에 인적이 거의 끊긴 채 적막감이 감돈다. AFP 연합뉴스

미얀마 쿠데타 2년, 외국 체류자의 삶까지 바꿔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미얀마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에 체류하는 미얀마 국적자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국에서 미등록 체류자로 발이 묶인 윈마웅(가명)도 그중 한 명이다. ‘코리안드림’을 꿈꿨던 30대 청년이 이른바 ‘불법체류자’가 된 사연은 기구하다. 근본 원인은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이지만, 한국 정부의 경직된 출입국·외국인 정책, 특히 이주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배타적 편견과 차별 대우도 큰 몫을 한다.

윈마웅은 2016년 6월 한국 정부의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받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고용주는 서울에 본사를 둔 ㄷ건설사였다. 눈비 내리는 날을 빼곤 휴일도 없이 철근 슬라브 작업 같은 중노동을 하며 평균 22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힘들었지만 고국의 가족에게 부치는 돈이 미래의 종잣돈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2017년에는 잠깐 미얀마에 들어가 결혼도 했다. 신혼집은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 차렸다.

대전과 경남 창원의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윈마웅은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3년 체류 기간이 만료된 뒤 1년10개월의 재취업(고용 연장) 허가도 받았다. 고용허가제가 허용하는 최장 체류 기간이었다. 윈마웅의 외국인등록증에는 체류 기간 만료일이 2021년 4월로 갱신됐다. 일터는 경기도 광명과 서울로 바뀌었다.

그의 한국 체류 신분은 출국 기한을 앞두고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출입국이 엄격히 통제됐다. 정부는 체류 기한이 다가온 이주노동자에게 체류 기간을 몇 개월씩 연장해줬다. 2021년 초 경기도 광명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윈마웅은 체류 기간 만료를 앞둔 3월 중순께 체류 연장을 신청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다가 전혀 뜻밖의 통보를 들었다. 건설업체와의 고용계약이 2021년 1월로 만료됨에 따라 ‘불법취업’ 상태라는 것이다.

윈마웅은 “재계약 만료 시점이 당연히 비자 만료 기간 직전까지로 맞춰져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만 했다”고 했다. 그런데 회사는 고용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윈마웅을 고용했고, 윈마웅은 그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체류 연장은 고용계약서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윈마웅은 회사에 사정을 설명했지만, 회사는 비자 만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데다 소급 계약은 곤란하다며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고용은 유지했다. 코로나19로 출입국이 봉쇄된 상황에서 윈마웅은 불법체류자 신분이 예고된 셈이었다.

2023년 1월28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 대표부에서 7년 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가 난민 신세가 된 윈마웅(가명)이 한국 정부에 냈던 난민신청서 사본을 보여주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2023년 1월28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 대표부에서 7년 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가 난민 신세가 된 윈마웅(가명)이 한국 정부에 냈던 난민신청서 사본을 보여주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인도적 특별체류 조처의 사각지대

그 한 달 전인 2021년 2월1일, 미얀마에선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한국 정부는 그해 3월부터 국내 체류 미얀마인 약 2만5천 명에게 ‘인도적 특별체류’ 조처를 시행했다. 체류 기간이 지난 경우에도 “(미얀마의) 불안정한 국가 상황을 고려해 강제출국을 지양하고 국가 정세가 완화된 후 자진출국”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윈마웅은 그런 ‘특별 혜택’(G-1-99비자)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였다. 아직 불법체류는 아니지만 불법취업 상태가 문제가 됐다. 이도 저도 못하고 발이 묶인 채 한 달이 흘렀고, 2021년 4월부터 윈마웅은 속절없이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 됐다.

윈마웅의 곤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불법취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고국에서 벌어진 군부 쿠데타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재한 미얀마인들은 미얀마군부독재타도위원회를 결성했다. 한국 시민들과 연대한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도 꾸려졌다. 윈마웅도 이 단체들에 가입해, 취재기자와 홍보요원으로 적극 활동했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한국 대표부의 활동과 재한 미얀마인들의 집회·시위, 민주화운동 지원 모금 같은 소식을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 매체로 알리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아내가 있는 미얀마 만달레이에서도 반군부 저항운동이 활발했다. 윈마웅의 아내도 민주화운동가를 도왔다. 이런 활동은 곧장 미얀마 군정의 감시망에 포착됐다.

2021년 5월께, 만달레이에서 군경이 아내를 찾아와 윈마웅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한국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는데 가족이 말리지 않으면 총살당한다”고 협박했다. 아내는 누군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지만, 같은 해 8월 군경이 다시 찾아와 협박을 되풀이했다. 결국 아내는 만달레이를 떠나 피신했다. 군부는 아내의 집이 있는 마을의 민가들을 군 소유지의 ‘불법주택’이라는 구실로 철거해버렸다. 2023년 1월 미얀마 민주화운동가 단체 ‘데이터 포 미얀마’(Data for Myanmar)는 “(쿠데타 발발 이후) 2022년 12월31일까지 미얀마 군부와 친군부 세력이 미얀마 전역에서 4만8463채의 민간인 가옥을 불태우거나 파괴했다”고 밝혔다. 민가 파괴는 반군부 저항운동이 거센 곳에 집중됐다.

2021년 10월, 윈마웅의 일터에서 미얀마인 동료가 낙하물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부가 현장조사를 나오자, 이미 불법체류자 신분이던 윈마웅은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미얀마에 돌아간다면 군부에 체포될 위험이 컸다. 한국과 미얀마 양쪽에서 불운이 겹친 윈마웅의 유일한 선택지는 ‘난민 신청’이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앞둔 2023년 1월29일,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 등 한국 체류 미얀마인들과 한국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성동구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군부독재 종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저항과 혁명의 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앞둔 2023년 1월29일,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 등 한국 체류 미얀마인들과 한국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성동구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군부독재 종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저항과 혁명의 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범칙금 1천만원 내야 가능한 난민 신청

2021년 11월 난민 신청을 하러 경기도 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를 찾은 윈마웅은 또다시 생각지도 못한 통보를 받았다. 불법체류와 불법취업을 이유로 “범칙금 1천만원을 내야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주노동자가 감당하기 힘든 ‘벌금 폭탄’이었다. 2022년 1월24일, 어렵게 1천만원을 마련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납부하고서야 난민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이틀 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출국명령서’를 발부했다. 윈마웅의 처지를 고려해, 출국 기한은 3개월씩 두 차례, 2022년 7월까지 유예됐다. 그것도 본인이 신청해야 했다.

불운은 계속됐다. 2022년 6월, 정부는 윈마웅에게 난민 인정 심사 기간을 2023년 1월24일까지 연장한다는 통지서를 보냈는데, 윈마웅은 당연히 체류 기간도 그때까지 연장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난민 심사 기간과 체류 기간 연장 신청은 별개였고, 누구에게서도 그런 정보를 듣지 못했다. 윈마웅은 난민 심사 기간 만료를 앞둔 2023년 1월 초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 갔다가 다시 범칙금 480만원을 납부하라는 말만 들었다. 벌금 기한인 1월20일에 또다시 거금을 마련해 갔더니, 이번에는 난민 신청 철회 신청서에 서명하라는 요구와 함께 ‘강제퇴거 명령서’까지 받아들었다.

이주외국인 인권옹호 단체인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난민 신청 접수는 범칙금과 상관없이 거부할 수 없는데 출입국 관리들이 위법한 행위를 했다. 범칙금 부과도 법정 최고액 한도 안에서 현장 직원 마음대로 고무줄”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난민(신청자)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난민 신청자 대다수를 ‘가짜 난민’으로 여기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0.4%(2020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4.8%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난민 신청자 1000명 중 996명은 기각된다는 뜻이다. 이 변호사는 “윈마웅이 언제든 다시 난민 신청을 할 수는 있다”며, “당장은 강제퇴거명령 취소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 나섰다가 군부·경찰의 박해”

윈마웅은 난민 신청서에 이렇게 적었다.

“본인이 낯선 한국 땅에서 힘든 일을 마다 않고 일한 것은 오직 미얀마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돈을 벌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국 미얀마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시민들 학살하고 갖은 만행을 자행하여 (…) 본인 가족은 지금 행복은 고사하고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 본인은 거창한 애국 투사도 민주화 투사도 아닙니다. 오직 가족과 함께 미얀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며, 조국 미얀마가 본인의 그런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나섰다가 군부·경찰의 박해를 받게 됐습니다.”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는 노동력이 부족한 업종에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한국 정부(고용노동부)가 인력사무소 구실을 하는 제도다. 이주노동자는 체류 기간 중 지정된 사업장을 이탈할 수 없다. 법무부는 이들의 체류 현황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며, 고용계약 기간이 끝난 이들을 본국으로 되돌려보내는 데만 관심이 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이주노동자권리협약과 난민협약 가입국이다. 그러나 윈마웅 같은 이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노동력 착취 국가이자 가난한 나라의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처지에 관심 없는 인권 후진국일 뿐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조일준 선임기자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4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호모 미그란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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