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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돈 안 내, 당신 체납자야?”

나토 집단방위체제 등급제·재집권하면 수입품에 10% 과세… 외교·안보에도 돈 요구하는 트럼프 2기 대외정책 전망
등록 2024-03-01 07:35 수정 2024-03-07 02:35
2017년 11월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7년 11월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대외정책 기조의 핵심은 “돈 안 되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2024년 2월10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2기’ 대외정책 기조의 핵심 역시 ‘돈’이 될 것을 예고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는 ‘도착 즉시 사망’

“언젠가 ‘아주 큰 나라 대통령’과 대화했다. 그 대통령이 내게 ‘우리가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가 공격해오면, 미국은 우리를 보호할 것이냐’고 묻더라. ‘왜 돈을 안 내? 당신 체납자야? 그럼 러시아가 공격해도 당신들을 보호하지 않겠다. 솔직히 당신들한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러시아를 부추기고 싶다. 당연히 돈을 내야지.’ 그 대통령한테 이렇게 답해줬다.”

어제오늘의 주장이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도 툭하면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을 상대로 “자기 나라 국방비는 아끼고 미국의 보호에만 의존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나토 조약 제5조가 규정한 ‘집단방위체제’(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나토 전체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에 ‘등급제’를 도입할 뜻도 내비쳤다.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지출 목표치인 ‘국내총생산(GDP)의 2%’를 채우지 않은 동맹국은 유사시 방어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2기’ 출범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경고음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격한 반대 속에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지원을 머뭇거리자, 2월15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직접 나서 “우크라이나군 전투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는 처사”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 사례다.

아직 선거 초반인 탓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은 내놓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잘 안다. 아주 영리하고 날카롭다”거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영리한 정도가 아니라 실로 엄청난 인물”이라는 말도 유세 때마다 던진다.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도 있다. 그는 “재집권하면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주장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기존보다 더욱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무역전쟁 ‘2차전’을 예고한 셈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재탈퇴도 다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초부터 공들여 2022년 출범시킨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대해선 ‘도착 즉시 사망’이라고 했다.

‘외교적 고립주의’의 다른 이름 ‘미국 우선주의’

미-중 관계의 핵심 쟁점인 대만 문제는 어떤가? “중국이 침공하면 대만을 보호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답을 피하고 있다. 1기 때 보인 태도만 놓고 보면 대만이 불안을 느낄 법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였던 2016년 12월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바 있다. 1979년 1월 미-중 수교 이후 미국-대만 간 정상급 통화가 공개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중국 쪽은 즉각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한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차이 총통이 당선을 축하한다면서 전화를 걸어와 통화했을 뿐”이라며 “미국이 해마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군사장비를 팔고 있는데, 축하 전화도 허락받고 주고받아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이후 4년 임기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갈등이 격해질 때마다 ‘대만 카드’를 휘둘렀지만, 정작 대만과 실질적 관계 강화는 추진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미-중 수교협상에 따라 대만과 모든 당국 간 공식 접촉을 금지했던 제한을 전면 해제한다. 더는 베이징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란 내용을 발표하기는 했다. 발표 시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 퇴임을 불과 11일 앞둔 2021년 1월9일, 후임 정부를 겨냥한 일종의 ‘알박기’였다.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이 1기 때보다 ‘악성’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경험에서 나온 ‘확신’과 ‘복수 심리’가 더욱 극단적 상황을 연출할 수 있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월17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첫 집권 때보다 훨씬 불안정한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이 장기간 주도해온 다국적 군사·경제 체제에서 철수하려 들 것이며, 1기 때보다 훨씬 충성스러워진 보좌진이 그의 지시를 이행할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우선주의’는 ‘외교적 고립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직접 비용을 감수하면서 세계 질서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는 2월1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선거 유세에서 “미국한테 이런 짓을 한 게 대체 누군가? 어느 바보들이 미국을 이렇게 망가뜨렸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 2기의 고립주의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도 전후 질서 수호자 자임하는데…

트럼프 1기가 추구한 ‘고립주의’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힘을 떨어뜨렸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것이 중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에 맞서 중국은 미국이 만든 전후 질서의 두 기둥인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한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관리 모드’로 전환해놓은 미-중 전략경쟁이 다시 불을 뿜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의 바다는 고립된 작은 호수로 되돌릴 수 없다. 경제 세계화란 대세는 뒤집을 수 없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월17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누구든 디리스킹(위험회피·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경계하는 표현)을 명목으로 탈중국화를 시도한다면 역사적 잘못을 저지르는 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과 미국, 특히 트럼프 집권 2기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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