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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새책 <우리에겐...>, 비석의 옆과 뒤를 보라

인권과 민주화 유산 답사기, 박래군의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등록 2020-05-18 17:06 수정 2020-05-22 02:01

코로나19의 전세계적 유행 속에 여행업계 시름이 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자칫 죄가 될 수 있는 세상인 탓이다. 이 시국에 여행기이자 현장 답사기인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클 펴냄)를 소개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우선 저자가 한국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인 박래군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스러진 이들의 유가족 단체인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에바다복지회, 군대 내 의문사,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노동자 손배가압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과 억압받는 인권이 있는 곳엔 늘 박래군이 있었다. 이번 그의 답사 현장 9곳이 4·3항쟁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도에서 시작해 한센인들의 눈물이 고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와 여전히 전두환 등 책임자 처벌 숙제를 하지 못한 5·18의 광주 등을 거쳐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이르는 과정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 책에 ‘맛집’이나 ‘주변 관광지’ 따위 정보는 없다. 대신 국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한테 저지른 폭력과 범죄의 흔적”과 함께 이 과정에서 개인들이 벌인 처절한 저항과 투쟁에 대한 정보로 가득하다. 가슴 저릿한 인권 파괴의 현장에 대한 내용은 읽기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간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두 번의 물고문과 여덟 번의 전기고문을 당한 뒤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빌라”고 하는 고문자들의 요구를 따랐다고 하는 대목에선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4·3항쟁 유적지를 들러보려는 이들한테는 ‘제주 4·3평화공원’부터 들르라고 한다. “여기에서 전반적인 이해를 하고 다른 유적지를 찾는 게 좋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사를 온몸으로 밀고 온 사람들” 150여 명이 분야별로 구분 없이 안장된 마석 모란공원의 민주열사 묘역에선 ‘노동의 길’과 ‘민주의 길’ ‘인권의 길’을 따라 걸어보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묘역 입구에 있는 차봉천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유구영-김종수-송철순-김종배 등을 거쳐 전태일 열사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 중 숨진 김용균 열사에 이르기까지 책에 열거한 이름을 따라가다보면 노동 현장에서 숨져간 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누구의 묘인지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까지 챙겨볼 수 있”으려면 비석의 앞면만 보지 말고 옆면과 뒷면도 보라고 귀띔한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목을 쓰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4·16연대 공동대표를 맡는 등 “현재 가장 깊숙이 관여하는 일임에도 무언가 하나라도 매듭짓지 못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출판
21이 찜한 새 책



민담형 인간

신동흔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6천원
구비문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동서양의 민담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정리했다. 좌고우면하는 소설 주인공과 달리, 민담 주인공은 일관되게 평면적이고 행동거지에 거침이 없으며 재기발랄하다. 이른바 ‘트릭스터’(어릿광대) 캐릭터인데, 펭수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수영 지음, 다른 펴냄, 1만6천원
스무 해 넘게 고위험 임신부의 아기들을 받아내며 산부인과 현장을 지킨 저자의 치열한 기록. 아기들은 조산이나 임신중독 같은 여러 난관을 힘들게 이겨내며 태어난다. 저자는 임신과 출산에 성공과 실패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생생하고 숨가쁜 현장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기억의 과학

찰스 퍼니휴 지음, 장호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 2만원
기억은 정말 우리가 겪은 경험을 뇌가 차곡차곡 정리한 서류철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같은 사건을 겪은 이들의 기억이 다른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과학·역사·문학은 물론 자신의 경험까지 끌어들여 기억이란 무엇이고 어떤 힘으로 왜곡되는지를 설명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라즈 파텔·제이슨 무어 지음, 백우진·이경숙 옮김, 북돋움 펴냄, 1만8천원
저자들은 자본주의가 자연과 인간의 노동, 식량,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값싸게 부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 결과가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가장 큰 사회문제인 극단적 불평등이고, 자연 생태계에 닥친 기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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