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최초’가 된 최고의 모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 전기 <메리와 메리>
등록 2024-04-26 09:19 수정 2024-05-02 03:08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한 장면. 메리 셸리는 어머니의 묘비석을 보면서 글을 깨쳤다고 했다.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한 장면. 메리 셸리는 어머니의 묘비석을 보면서 글을 깨쳤다고 했다.


다수의 여자 조산사가 마녀로 몰려 죽은 뒤 그 위치를 대체한 18세기 유럽 의사들은 출산을 유도하며 손을 잘 씻지 않았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다가 세균에 감염돼 죽어나갔다. 영미권 최초의 근대적 페미니스트로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딸을 낳다가 산욕열로 죽은 것 자체가 여성사의 결정적 장면이다. 그 딸은 세계 최초의 과학소설(SF)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메리 셸리였다.

<메리와 메리>(이미애 옮김, 교양인 펴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나 그만큼 잘 알려지지도 않은 모녀의 일생을 다룬 전기다. 미국 영문학자 샬럿 고든이 2015년 펴낸 이 책은 어머니 메리가 출산 뒤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딸 메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리라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모녀의 삶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두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연관되는지 상세히 살폈다. 한국어판 분량은 무려 782쪽에 이른다.

영미권 최초의 근대적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초상.

영미권 최초의 근대적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초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내 삶의 자랑이고 기쁨이었어. 내가 누린 행복의 대부분은… 어머니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흠모에서 비롯되었지.”

1827년 딸 메리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가 얼마나 어머니 메리의 삶에서 큰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묘비명을 보며 글을 익힌 딸 메리는 그러나 어머니를 배반한 딸로 비판받았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사상을 저버린 겁쟁이였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딸 메리가 평생 어머니 메리가 펼친 철학의 강력한 옹호자였다고 반박한다. 메리 셸리는 모든 작품에서 여성의 독립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정복과 출세라는 남성적 가치를 비판했다. 메리 셸리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조신한 빅토리아 여성’으로 왜곡된 것은 그의 며느리 탓이었다. 훌륭한 시어머니를 창조하고 싶었던 메리 셸리의 며느리는 시어머니 사후 그와 전혀 닮지 않은 피조물을 만들어 기록으로 남겼다.

세계 최초의 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작가 메리 셸리의 초상.

세계 최초의 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작가 메리 셸리의 초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남편이자 메리 셸리의 아버지는 아나키즘의 근간을 마련한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이었고, 메리 셸리의 남편은 영국의 대표적 낭만주의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였다. 거의 200년 동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창녀, 비이성적 여성 사상가로 치부됐다. 메리 셸리는 남편과 어머니의 혁명적 가치를 훼손한 중산층 여자, 남편의 손을 빌려 좋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의존적인 작가라고 비난받았다. 저자는 이처럼 두 메리에 대한 오랜 공격이 있었고, 그 공격의 방향과 근거는 달랐지만 공격이 거둔 성과만큼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두 사람의 도전적 생애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페미니스트의 바이블이자 교양인의 필독서.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아직도 정신과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허찬희 지음, 그래도봄 펴냄, 1만8천원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장을 역임한 허찬희 박사가 45년간 환자들을 상담해온 공력을 쏟아부어 쓴 정신치료 이야기. 힘든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담아 직격탄을 쏘아 올렸다. ‘다 괜찮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환자는 자신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도록, 치유자는 공감하는 마음을 갖도록 강조한다. 특히 양육자의 역할과 태도를 중시하는 부분이 사뭇 논쟁적이다.


미술 사는 이야기
유지원 지음, 마티 펴냄, 1만7천원

2010년대부터 서울의 오래된 골목에 미대를 졸업한 작가들이 자생적으로 ‘신생 공간’을 만들었다. 개성을 한껏 발휘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한 이 세대 작가들은 관객의 취향을 저격했다. 신생 공간에서 미술을 사기 시작한 저자는 미술로 먹고살게 되면서 그 공간과 작가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보게 된다. 창작, 비평, 느슨한 연결의 문화적 현상을 담았다.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펴냄, 1만5천원

커피와 초콜릿의 달콤쌉쌀한 향은 나무 씨앗을 굽고 발효해서 얻는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차의 내음은 카멜리아 시넨시스 잎의 성질과 기원을 알려준다. 생물학자인 저자가 ‘나무 내음’을 열쇳말로 나무와 사람의 연결에 대해 쓴 과학 에세이. 바이올린 연주자·작곡가 캐서린 리먼이 에세이에 대한 답가이자 반주를 만들어 독자들과 나눈다.


당과 인민
브루스 J. 딕슨 지음, 박우 옮김, 사계절 펴냄, 2만6천원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세계 공산주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하는 정당으로 살아남았을까. 정치학자인 저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부터 최근까지 정치 개혁 흐름을 다섯 시기로 나누고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구분했다. 당과 인민의 관계를 ‘억압과 호응’의 역설적 결합으로 정의하면서, 이 관계가 당을 존속시킨 주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