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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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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계와 탈속계 중간쯤 ‘여돌’에게

아이돌산업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권하는 <여신은 칭찬일까?>
등록 2021-02-02 13:07 수정 2021-02-05 01:41

케이팝(K-Pop) 전성시대다. 한국의 인기 대중가요는 전세계 젊은이의 문화 코드가 됐다. 그 핵심에 아이돌 그룹이 있다. 아이돌(Idol)은 문자 그대로 청춘 세대의 ‘우상’이다. 아이돌이 신과 다른 것은, 아이돌이 숭배 대상인 동시에 소비되는 오락, 평가와 상벌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란 사실이다. ‘여성 아이돌’(여돌) 그룹에서 그런 특성은 도드라진다.

대중음악 평론가 최지선은 책 <여신은 칭찬일까?>(산디 펴냄)에서 여돌을 둘러싼 14가지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고백으로 첫 문장을 시작했지만, 여돌에 대한 찬사나 비판, 혹은 젠더 피해자라는 시각에 방점을 찍은 책이 아니다. 지은이는 한국의 여돌들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이를 위해 “여성학이나 젠더 이슈뿐 아니라 인문·사회, 예술 분야의 여러 시각과 정보를 기반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논의를 펼친다.

한국의 첫 걸그룹은 일제강점기에 악극단에서 활동한 ‘저고리 시스터즈’다. 1960년대 전후로는 김시스터즈, 김치캣츠, 펄시스터즈, 바니걸스 등 수많은 ‘시스터즈’가 명멸했다. 1980~90년대에는 김완선, S.O.S. 등이 인기를 끌었다. 지금의 ‘케이팝 여돌’ 시대는 1990년대 이후부터다. 지은이는 한국에서 여돌 그룹이 세 번에 걸쳐 ‘붐’을 일으켰다고 본다. 1990년대 후반 한국형 아이돌 그룹의 등장기, 2000년대 중후반 원더걸스·소녀시대·투애니원 등의 활약, 이어 2010년대 중후반 러블리즈부터 블랙핑크까지 대중적이면서도 유의미한 평가를 얻은 여돌이 대거 등장했다.

​한국형 아이돌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선발부터 육성, 기획과 제작, 관리와 홍보까지 총괄하는 고비용 ‘상품’이다. 노래뿐 아니라 패션과 댄스, 드라마와 광고까지 얽혀 있다. 아이돌의 음악성이 의심받고, 특정한 장르나 스타일이라기보다 본격 장르의 외피만 차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아이돌 산업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초연결 시대가 되면서 지상파 TV의 울타리를 벗어나 단숨에 글로벌 시대를 맞았다. 메시지보다 이미지가 앞서는 시대, 수많은 여돌이 ‘요정’과 ‘여신’으로 태어나 활동하고 사라진다. 대개는 “관능적인 섹슈얼리티와도, 거칠고 강력한 걸크러시와도 거리가 있는데, 이는 통상 ‘소녀’에게 요구되는 이미지와 일치”한다. 여돌은 그렇게 현실계와 탈속계 중간 어디쯤 놓이며, 시간이 흐르고 더는 그런 이미지가 유효하지 않은 어느 순간 소진되고 폐기된다.

여돌과 그 음악이 포괄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진정 여성적인 것은 무엇이며 구현할 수 있는지, 나아가 여돌 스스로의 주체적 시선이 가능한지를 묻는 지은이의 문제의식이 따뜻하고 묵직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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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소년원에서 의무교육 수업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소년원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기록한 아이들의 성장기. 몸은 불우한 환경에 갇혔으되 여전히 호기심 많고 푸르른 청소년들이 독서로 환대를 경험하고, 마음을 열며,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유쾌하고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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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 쏘이면 아프다. 침을 쏘는 곤충은 벌 말고도 수천 종이나 된다. 방어용 생존 무기다. 미국 곤충학자가 곤충이 침을 쏘게 진화한 배경, 침의 종류와 독성, 침 쏘기 등에 대한 화학적·생물학적 지식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세계 전역에서 침 쏘는 곤충 83종을 추려 만든 통증지수도 재미있다.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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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없는 언어

정관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1만6천원

헌법은 한 나라의 최고 규범이다. 원론적 가치와 지향을 담았기에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현령비현령’이기 십상이다. 그런 이유로 “‘헌법 정신’(이란 표현)이 싫다”는 변호사가 비행기 조종사의 턱수염 금지부터 광우병 논란, 양심적 병역 거부 등 삶을 바꾼 판결들을 통해 헌법의 의미와 중요성을 풀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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