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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엥겔스를 일점일획 그대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첫 번역본 출간
등록 2021-05-28 17:44 수정 2021-05-29 02:54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그의 지적 동료이자 후원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의 저작들을 일점일획 가감 없이 번역해낸 책들을 한국의 독자도 볼 수 있게 됐다.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Die Marx-Engels-Gesamtausgabe, 이하 메가)의 우리말 번역본 1차분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메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방대한 저작을 집대성한 유일한 정본이자 가장 완벽한 전집이다. 

국내에는 지금까지 옛동독이 낸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EW) 중 주요 저술들의 번역판이 단행본으로 조금씩 간행되긴 했지만 정본으로 꼽히는 메가가 출간된 것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21년 옛소련에서 전집 발간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0년, 도서출판 길이 독일 아카데미 출판사와 한국어판 저작권 계약을 맺은 지 9년 만에 그 첫 결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체 114권을 목표로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 메가는 인류 지성사에서 단연 독보적이고 걸출한 업적으로 꼽힌다. <공산당 선언> 초고와 전체 5권으로 짜인 <자본> 제1권의 마르크스 육필 원고는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첫 우리말본을 얻은 메가 문헌은 마르크스의 핵심 저작인 <자본>의 초안으로 알려진 ‘1861~1863년 초고’의 일부이다. 이 초고는 모두 6개의 분책으로 이뤄졌다. 마르크스가 남긴 원고가 너무 방대한 까닭에, 메가 편집위원회는 원고들을 주제와 분야에 따라 임의로 나눠 편찬(분책)하고 있다. 그렇게 분류된 분책 중 일부는 여전히 분량이 많은 까닭에 다시 각기 몇 권으로 나뉜 편집본으로 나온다. 

이번에 국내에 출판된 책은 그 중 제1분책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제2권(김호균 옮김)과, 초고의 제2분책이자 <자본>의 제4권으로 알려진 <잉여가치론>의 제1권(강신준 옮김)이다. <잉여가치론>은 ‘상품’에 내재된 ‘이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노동시간과 임금의 차이,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의 관계로 밝혀낸 저작이다.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화폐가 어떻게 자본으로 전화하는지와 자본과 임노동의 적대적 모순을 규명했다. 

메가 발간 프로젝트는 꼭 100년 전인 1921년 옛소련에서 레닌의 지원을 받은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소가 전 세계에 흩어진 두 사상가이자 혁명가의 유고를 모두 찾아 학술 정본 편찬 작업을 추진한 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1924년 레닌의 사망과 후계자 스탈린의 무관심 및 정치적 숙청 작업 탓에 1936년 메가 발간도 한때 중단됐다. 그 시기를 전후한 1928년부터 1966년까지 스탈린 주도로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의 대중판본(소치네니야)이 쏟아졌으나 정치적 편향과 구성의 결함이 도드라졌다. 이런 문제를 보완한 독일어판 저작집(MEW) 43권이 옛 동독에서 1956~1990년에 나왔지만 한계가 여전한 데다, 사회주의 붕괴로 그마저 중단됐다.

1990년 서방 학자들이 설립한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두 사상가의 육필 원고를 애초 쓰여진 순서와 언어 그대로 복원하는  이어받았다. 메가 출간 작업은 독일 정부의 지원으로 한 세기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메가 원본 114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육필 원고를 빠짐없이 되살린 본권과 원고의 복원·정리 과정에서 문헌적 고증 작업과 주석을 상술한 부속 자료까지 각각 2권으로 간행되고 있다. 본권과 부속자료를 합하면 228권에 이른다. 

옛소련과 옛동독 시절 대중판 출간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오염’되거나 편집 과정에서 ‘손질’된 문제점을 바로잡고 마르크스의 본디 생각과 의도를 정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메가 프로젝트가 학술과 출판에서 갖는 의미는 기념비적이다.

원고의 집필 순서대로 발간할 예정인데, 전체 114권 중 2020년 말까지 69권이 나왔다. 한국어판도 책등의 일부 색깔만 빼고는 표지 디자인과 제목 활자체까지 메가 원본과 모양새가 똑같다. 메가 한국어판은 길 출판사와 동아대 맑스엥겔스 연구소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에 힘입어 2023년까지 17권을 발간하고, 이후에도 출간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번역 작업을 전담할 연구자와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연구소 쪽은 월 1만원 이상의 소액 후원제를 시행하고 있다.

문의  051-200-8691, http://marxengels.donga.ac.kr/sites/marxengels/index.do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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