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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레블에서 헤어날 수 없어

등록 2021-06-20 07:48 수정 2021-06-23 23:49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광야’라는 단어를 듣고 이육사의 시를 떠올리는 당신은 공부 좀 한 한국인!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 유영진을 떠올리며 심장이 뛴다면? 당신은 진정한 케이팝 공화국의 넥스트 레벨(Next Level) 시민입니다. 자자, 무슨 말인지 쉽게 알려드릴게요.

2020년 11월, SM엔터테인먼트가 레드벨벳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걸그룹 ‘에스파’의 인기가 대단하다. 특히 2021년 5월에 발매한 <넥스트 레벨>의 반응이 폭발적인데, 집 나간 ‘슴덕’(SM이 제작한 노래를 좋아하는 팬)도 돌아오게 할 정도로 ‘정통 SMP’(SM표 퍼포먼스)라 평가받는다. 처음 들으면 난해하다. ‘이게 하나의 곡이라고?’ 가사도 쉽지 않다. “절대적 룰을 지켜. 내 손을 놓지 말아. 결속은 나의 무기. 광야로 걸어가.” 하지만 이것이 H.O.T. 시절부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유영진식 언어이다.

하지만 <넥스트 레벨>에 중독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에스파의 진짜 매력은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난해한 세계관에 있는데…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으로 구성된 그들은 분명 4명이지만 공식 석상에선 8인조 걸그룹이다. 또 다른 자아인 ‘ae’(아이)와 함께 활동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에 ‘카리나’가 있다면 가상세계엔 ‘ae-카리나’가 있다는 말씀. 둘이 연결된 상태를 ‘싱크’(SYNC)라고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블랙 맘바’를 찾아 광야로 떠나는 여정이다.

진짜 무슨 소린가 싶다. 하지만 유튜브에 공개한 10분짜리 세계관 영상 ‘ep1. Black Mamba-SM Culture Universe’(에피소드1. 블랙 맘바-SM 세계관)를 보면 조금씩 이해되면서 나도 이 지독한 세계관 놀이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e’와 친구가 된다면 조금은 덜 외로울 테니까. 이에 관해 ‘슴덕’들을 위한 유튜브 채널 ‘들짐sm’을 운영하는 ‘세세’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에스파 존재의 첫 번째 미션은 ‘너와 나의 연결’이 아니라 ‘나와 나의 연결’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분열된 자아는 회피나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놀이의 대상으로 재현된다. 나를 더 고양시키고, 영감을 주며, 자존감을 높이고, 한계를 넓혀주는 행위이다.”

인간적인 것, 그 넥스트 레벨을 꿈꾸는 음악이라니, 짜릿하지 않나?

정성은 콘텐츠 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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