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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몰락으로 가는 폭주 기관차

밑바닥 약물중독자였던 뇌과학자의 자전적 경험 기록한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
등록 2022-01-06 14:03 수정 2022-01-07 09:26

흔히 하는 새해 결심 중 하나가 술, 담배, 약물 등을 끊겠다는 것이다. 작심삼일이기 십상이다. 중독은 힘이 세다. 중증 중독자들은 찰나의 기쁨을 위해 많은 자원과 기회를 포기하고 때론 목숨까지 건다. 왜 그럴까?

미국 행동신경과학자 주디스 그리셀의 <중독에 빠진 뇌과학자>(이한나 옮김, 심심 펴냄)는 중독의 신경과학적 원리를 세밀하게 밝히고 이상적인 치료와 예방책까지 제시한다. 자신이 심각한 약물중독자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자들의 심리적 특성까지 섬세하게 살폈다. 책의 원제(Never Enough)처럼 중독은 ‘절대 충족되지 않는’, 헤어나기 힘든 늪이다.

그리셀은 13살 때 처음 와인에 취한 뒤 “이브가 사과를 맛본 뒤 느꼈을” 자유와 행복감을 만끽했다. 술은 “마구 피어나던 온갖 고뇌를 해결할 열쇠를 비단처럼 보드라운 베개에 얹어 전해주는 것 같은 (…) 신체적 위안과 정신적 해독제”였다. 그는 알코올을 시작으로 대마, 코카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엘에스디(LSD) 등 중독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며 “순수한 즐거움”에 탐닉했다. “호시탐탐 약물을 사용할 기회를 엿보며, 그를 위해서 어떠한 대가든 지불했다.” 연방 요원에게 쫓기고, 친구가 죽고, 학교와 집에서 쫓겨나고,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비극에도 약을 끊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셀은 거울 속 자신의 눈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마주한다. 자신이 여태껏 시달려왔던 공허보다 훨씬 더 비참한 ‘밑바닥’을 들여다본 것이다. 극적인 변화는 초인적 의지로 뒷받침됐다. 1년간의 집중치료 뒤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4년이 더 걸렸다. 지은이는 중독을 “뇌가 사랑하는 최고의 미식”에 비유한다. “코카인은 내가 미처 그 존재를 느끼기도 전에 미각과 청각을 강타”했고 “나는 삶의 아름다움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런 쾌감은 뇌의 보상중추(쾌락중추)에서 쏟아지는 도파민의 마술이다. 동물은 일상적 상태와 다른 경험을 할 경우 뇌의 특정 회로에서 신경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먹거나 마시거나 성관계를 할 기회, 위험이나 고통 같은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뇌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 자극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적응해 효과를 약화하려 한다. 약물에 대한 내성과 의존이 생기는 이유다. 처음의 황홀한 행복감 뒤에 불안과 우울, 더 큰 자극을 향한 갈망이 뒤따르는 과정은 “몰락으로 가는 폭주 기관차”다.

지은이는 “우리의 사고와 감정, 행동은 전부 신경화학적인 뇌 활동의 산물이지만 이 활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대부분 뇌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진화론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중독의 반대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며, 그러므로 중독의 치유도 “사회적 연결과 지지, 다양한 대안을 제공”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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