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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듬뿍 얹어서 M.S.G.R. 주세요.”

[힙스터 카페 중독기] ‘노키즈존’ 내세우는 힙스터 카페의 ‘감성 공식’
등록 2022-06-07 09:09 수정 2022-06-09 01:18
개그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의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래’의 한 장면. 힙스터 카페를 풍자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개그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의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래’의 한 장면. 힙스터 카페를 풍자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석면 가루 토핑 듬뿍 얹어서 M.S.G.R. 주세요.”

친구들끼리 힙스터 카페를 두고 던지는 농담이다. 힙스터 카페들의 ‘감성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보면 ①내벽은 공사장에 커피머신만 갖다둔 것처럼 무조건 노출 콘크리트 ②메뉴판에는 미숫가루를 ‘M.S.G.R.’라고 언어창조를 해서라도 한글로 적어서는 안 됨 ③테이블 높이는 커피에 경배하듯 허리를 숙여 음료를 마실 정도로 낮아야 함 ④매장 영업 여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숙지해야 함 ⑤간판이 따로 없어 골목 몇 번은 돌아야 찾을 수 있음. 이 공식의 공통점은 의도된 불편함 그리고 ‘노키즈존’(어린이 출입 금지)이다.

노키즈존을 내세우는 업장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든다. 노출 콘크리트 등에 어린이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불판이 식탁마다 놓인 뼈해장국집에선 어른과 동석한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한 네티즌의 말을 보고 생각하게 됐다.

“제주 모 피자집도 노키즈존인데 외국 어린이가 가면 주인장이 그렇게 친절하다고 함.” 다른 네티즌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노키즈존을 내세우는 ‘힙한’ 공간에서 어쩐지 백인 어린이를 받아줄 것 같다며 공감했다. 핵심은 어린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약자는 힙하지 않다는 거다. 어린이 입장을 허용하면, 알음알음으로 겨우 찾아간 카페에서 아이가 울며 보채느라 사장이 세심하게 선곡한 음악을 감상하기 어렵다. 아이는 쿨한 태도로 주문하고 매장에서 음료를 들고 우아하게 움직일 줄 모르는 존재기에 주변 사람들이 계속 신경 써야 한다. 이런 존재에는 어린이만 해당하지 않는다. 휠체어를 끄는 장애인, 키오스크(무인단말기)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노인처럼 돌봄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감성’을 망치는 존재다.

그렇다고 힙스터 카페가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무조건 프리하지는 않다. 내가 입은 옷이 힙하지 않은 듯해 방문이 망설여진 적이 있었다. 힙스터 카페에서는 손님도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모두 힙해야 한다.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팔에는 정교한 타투를 새기고, 하이엔드 브랜드의 옷을 걸치고 니치향수(소수를 위한 고급 향수)를 뿌린 사람들은 흡사 감성 소품 같다.

이런 걸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찾았다. ‘심미노동’이다. 연구자 심선희에 따르면 심미노동이란 노동자가 기업을 홍보하는 존재로서 말쑥한 외모, 잘 갖춘 외양, 능숙한 언변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당연히 유아차에 앉아 곧잘 침을 흘리는 어린이는 그런 노동을 할 수 없다. 다른 약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 중 누구도 미숙하지 않은, 혹은 평생 미숙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어린이 입장 금지’가 아니라 영어로 ‘No Kids Zone’이라고 써두는 식의, ‘감성’이 가리는 차별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도우리 작가

*청춘의 겨울: 언론에서 청년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봄’이라면 이 칼럼은 ‘겨울’입니다. 지금, 여기, 청년이 왜 데이트앱, 사주, 주식 등에 빠지는지를 서른이 된 도우리 작가가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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