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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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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통나무집을 팠더니 쓰레기가 5t

안동에서 옛것을 고치고 고귀함을 더하는 업사이클링 가구디자이너 이덕화씨
등록 2022-06-15 14:08 수정 2022-06-16 00:58
고재 가구 디자이너인 이덕화씨가 작업실이자 쇼룸인 경북 안동 ‘고이’에서 자신이 만든 수납용 가구인 반닫이 미니어처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고재 가구 디자이너인 이덕화씨가 작업실이자 쇼룸인 경북 안동 ‘고이’에서 자신이 만든 수납용 가구인 반닫이 미니어처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북동쪽 낙동강 상류로 향하면 ‘예끼마을’이라 부르는 곳에 도착한다. 마을을 둘러싼 안동호수와 그 위로 펼쳐진 선상수상길이 가장 먼저 방문자를 반긴다. 이곳은 몇 해 전부터 주민 참여형 마을사업이 추진돼, 골목마다 정원이 꾸며지고 벽화가 그려졌다. 과거 관아 건물은 한옥 갤러리로 탈바꿈했고, 빈집은 예술가를 위한 작업실과 카페로 바뀌기 시작했다.

본래 기능을 잃은 건물들이 새로 태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전체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주변 풍광을 해치지 않고 원래 있던 마을 풍경과 어우러지도록 변화했다. 옛것을 고치고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예끼마을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는 가구제작소 ‘고이’. 이곳 역시 오랫동안 방치됐던 농가주택을 철거하지 않고 살릴 건 살리고 고칠 건 고쳐가며 8개월간 개·보수했다.

가구디자이너인 이덕화(46)씨의 작업실이자 가구 쇼룸, 공예품 전시·판매가 이뤄지는 예술 공간인 ‘고이’는 마을 방문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도자기 공예품 판매, 한옥보수 인테리어 상담’. 공간 초입에 쓰인 문구는 덕화씨가 안동에서 한옥보수 인테리어 일과 공사 현장에서 나온 고재(오래된 가옥이나 가구에서 썼던 목재를 뜯어 나온 자재)를 재활용한 가구를 디자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만들어낸 가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마루 앞에 신발을 벗도록 돼 있는데, 이 마루도 안동과 경주의 한옥 철거 현장에서 나온 마룻장과 장귀틀(세로로 놓는 가장 긴 마루의 귀틀)이 합해져 만들어졌다. 안에는 소나무과 나무로 만들어진 사과상자를 활용해 만든 장식장, 한옥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를 활용해 만든 다구함 등 그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묻어나는 가구가 가득하다. 집과 어우러지는 도예가들의 다양한 작품도 선물처럼 놓여 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거나 오래된 자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로 새롭게 창조해내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고재를 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의 주요 소재는 옛집의 기둥과 보, 서까래, 철근 등인데요. 짧게는 30여 년, 길게는 10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을 지나온 부재를 털어내고 사포질하고 칠하고 또다시 다듬어 새로운 쓸모를 기다리는 가구로 만듭니다.”

덕화씨가 안동에서 한옥 공간과 가구를 공들여 만들 수 있는 데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서로 영감을 주는 목수 친구들이 있다.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그의 소중한 동료들이다.

“20평 안 되는 집 하나 짓는데 나무를 200그루 넘게 베거든요. 하지만 함께 일하는 목수분들은 ‘버려진 나무를 다시 다듬어서 쓰면 최소한 그만큼의 새 나무는 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요. 집을 철거할 때 포클레인 부르면 하루 정도 부수고 쓰레기 버리면 끝인데, 버려진 나무를 다시 쓰려면 일주일 넘게 걸리고 비용도 두세 배 들거든요.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현장에는 공사 중 쓰레기가 적어요.”

‘고이’ 공간에 머물며 지난한 공정을 거친 가구를 하나둘 천천히 바라보니, 덕화씨와 동료들이 보낸 시간이 전달된다. 쓰임을 다한 것 같은 나무를 다시 살려내고, 되살아난 나무만이 지닌 고귀함을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내해준 이들에게 선물하는 과정이 눈에 펼쳐진다.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 없는 덕화씨가 안동에서 업사이클링 가구 디자이너가 된 것은, 강원도 정선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이 영향을 미쳤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매트리스를 사지 않는 이유

경북 경주에서 나고 자란 덕화씨의 첫 이주지는 여성학 공부를 위해 떠난 서울이었다. 대학원 졸업 뒤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귀한 동료들을 만났지만, 일에만 푹 빠져 살다 건강이 나빠졌다. 요양이 필요했던 덕화씨는 우선 경주로 돌아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새로운 이주지를 찾았다. 평소 관심 있던 하동 등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혼자 이주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상담소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난 유석씨 역시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귀촌할 곳을 찾고 있음을 알았다.

새 이주지를 찾던 그들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함께 집을 구하자고 입을 모았고, 10년 넘게 함께 사는 생활동반자가 됐다. 덕화씨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고, 유석씨는 남동생이 귀촌해서 사는 강원도 정선에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당시 정선에 몇 안 되는 카페 중 한 곳을 운영하는 숲 박사님이 저희에게 집 한 곳을 소개해주셨어요. 해발 520m에 있는 산속 통나무집인데, 그곳을 보자마자 둘이 함께 ‘여기면 살 수 있겠다’고 말했죠.”

평소 손으로 공들여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던 덕화씨는 전 주인이 10년간 살았던 집과 주변 곳곳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경주에서 놀러 온 목수 친구들이 기울어진 마당을 보고 바닥을 긁어 흙을 채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동료들의 말대로 포클레인으로 바닥을 파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쓰레기 5t이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쓰레기 버리는 과정을 알고 싶어 쓰레기 처리장에 따라갔다가, 덕화씨는 난생처음 이른바 ‘쓰레기산’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많은 쓰레기를 마주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쓰레기산을 덮고 있던 수천 개의 버려진 매트리스를 잊을 수 없어요. 제가 그때부터 매트리스를 사지 않거든요. 그 현장에서 다짐한 게 있어요.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요.”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병산서원이 준 첫인상 같은 곳

유석씨가 둘이 함께 사는 첫 이주지를 정선으로 골랐다면, 두 번째 이주지는 덕화씨가 안동으로 골랐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병산서원이 좋았다. 그는 안동에 들를 때마다 하회마을 근처에 있는 병산서원을 방문했는데, 한국 특유의 서원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데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서원에 매료됐다. 낙동강과 병산이 마치 정원처럼 펼쳐져, 서원에 가만히 앉아 보내는 시간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정선에서 쉼이 있는 삶을 기대했는데, 안동에서 기대한 삶 역시 쉼이었어요. 한옥 공사 현장과 가구제작소를 오가며 예기치 않게 삶의 속도가 빨라지긴 하지만, 안동은 제게 병산서원이 준 첫인상 같은 곳이에요. 고요히 머물며 쉬는 곳.”

사실 안동은 경주로 향하는 길목이라 택한 이유도 있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곳이자 돌아갈 곳이 경주라 생각한다. 같이 일하는 목수 친구들을 비롯한 오랜 지인, 그리고 생활동반자인 유석씨와 함께 살게 될 경주를 그리며 길게 남지 않은 안동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는 덕화씨의 바쁜 일정 때문에 요즘 문이 닫힌 날이 많지만, 그의 작업을 천천히 볼 수 있는 공간이 또 있다. 그가 2019년 봄, 안동에 도착해 처음으로 리모델링한 도심생활형 한옥 ‘스테이 고이’(www.instagram.com/staygoi)다.

1970년대에 보급된 서민주택을 처마와 기둥을 살려 수선하고 현대식 편리함과 안정성을 더해 단기이주자나 여행자가 머물 수 있는 숙소로 만들었다. 실내 공간에는 한옥 수리 과정에서 나온 고재로 만든 수제가구, 공예작가들이 만든 도자기, 패브릭 소품, 조명 등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다.

안동에서 이틀간 그가 공들여 지은 공간에 머물며 ‘고이’라는 이름이 무척 와닿았다. ‘정성을 다하여 소중하게’ ‘상태를 그대로 고스란히’ ‘편안하고 평화롭게’란 의미가 담긴 ‘고이’보다 그의 공간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다른 이주지에서 그가 새롭게 만들어갈 공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경북 안동 예끼마을에 있는 가구제작소 ‘고이’에는 덕화씨가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나무 소품 외에 도자기, 공예품 등이 가득했다.

다시 지도를 펼치며

‘우리를 구하는 건, 스스로에게 들려줄 수 있는 다르게 사는 방법의 이야기’. 미국 작가 제사 크리스핀의 이 문장을 들고 1년간 전국 곳곳으로 이주한 이들을 만났다. 저마다의 지역에서 스스로 다르게 살 가능성을 만드는 여성 11명이 공통으로 건넨 말이 있다.

“지역엔 할 일이 많아요.”

덕화씨 역시 그렇게 말했다. 어느 지역이든 이전에 했던 일을 응용 또는 활용해서 할 일이 많다고. 자신이 해온 일로 쌓은 전문성을 어필하기보다, 새로 이주한 곳에서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는지 고민한다면 충분히 할 일이 많다고 말이다. 더불어 잘 살기 위한 선택으로서 ‘이주’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임을 그들에게 배웠다.

이제 나 역시 또 다른 이주지를 찾아 다시 지도를 펼쳐본다.

안동=글·사진 채혜원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저자 chaelee.p@gmail.com

*‘바깥에 사는 사람’ 연재를 마칩니다. 사랑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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