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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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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공간이 아니라 미디어가 ‘나의 집’

좋아하는 콘텐츠 따라 거주지 옮겨다닌, 연예인이 꿈인 장민지 경남대 교수
등록 2022-03-09 13:39 수정 2022-03-10 02:40
좋아하는 콘텐츠 따라 이주해온 장민지 경남대 교수. 장민지 제공

좋아하는 콘텐츠 따라 이주해온 장민지 경남대 교수. 장민지 제공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서해문집)라는 책을 읽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주해 혼자 사는 여성청년들의 경험담이 생생하게 담겼다. 22살 독립한 이후, 집 계약 기간에 따라 2년마다 서울 곳곳의 거주공간을 옮겨가며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이 그들의 이야기와 교차했다. 책에 담긴 인터뷰보다 눈길을 끈 건, 저자인 장민지(38)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의 소개란이었다.

나는 ‘콘텐츠에 미친 덕후’

‘부산에서 태어나 20년을 살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이주한 뒤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13년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5년간 서울과 전남 나주를 오가며 지냈다. 지금은 경남대 교수로 재직하며 경남 창원에 산다.’

호기심이 생겨 그의 글과 연구논문을 찾아봤다. 석사과정 때는 인디게임에서 미소년을 기르는 여성 게이머들을 연구했다. 그 뒤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에 대한 의미와 장소화 과정을 연구한 박사논문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학술상 수상, 여성 독자를 이용 대상으로 만든 남성동성애 서사물인 ‘BL 장르 세계관 분석을 통한 가상적 섹슈얼리티 생산 가능성 연구’ 논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비평한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평론상 최우수상 수상.

부산에서 서울, 나주, 창원으로 이어진 민지의 이주 동선은 학교, 직장 등 경제적 조건에 따른 이주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좇은 여정이 분명했다. 최근 뮤지컬에 빠져 연구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대학로를 찾은 민지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콘텐츠에 미친 덕후’라 소개했다.

“저에게 이주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인은 경제적 조건이 맞아요. 직장을 버리고 어디론가 갈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저는 미래를 계획하거나 기획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게 이주는 물리적 공간 설정이 아니라, 지금 좋아하는 콘텐츠가 무엇이고 그에 따라 어디로 움직일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민지의 첫 이주는 스무 살, 대학 진학을 위한 서울행이었다. 부모님 양가 통틀어 첫 손주였던 그는 “네가 잘돼야 동생들도 잘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친척 한 명 없었다. 모두가 경상남도에 있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서울살이에서 그는 긴장과 불안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흔히 범죄 피해 공간이 돼버린 집에서 느끼는 공포로 늘 이중잠금 장치를 달고 살았고, 스무 살이 갓 지나 겪은 친구의 자살은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혼자가 된 뒤 정서적 기반 없이 나약해진 시절이었다.

다행히 민지에겐 항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있었다. 10대 때부터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으면 관련 커뮤니티나 누리집을 만들고, 웹소설 플랫폼이 생긴 이후에는 웹소설을 꾸준히 쓸 정도로 그는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에 적극적이었다. 게임, 드라마, 책, 웹툰, 웹소설 등에 늘 빠져 있었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연구를 이어가다 영상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덕질에 빠져 연구하다 박사 학위까지

“스트레스가 많았죠. 어찌 보면 33살까지 학생으로 살았으니. 다만 제 스트레스는 졸업 뒤 취업, 결혼 등으로 이어지는 친구들과 타임라인이 맞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어요. 제 덕질에 충분히 돈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조교나 아르바이트 등을 통한 수입으로는 부족했거든요.”

끊임없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개인 성향에 더해, 콘텐츠 덕후로서의 삶을 이어가려면 일자리가 필요했다. 2015년 8월 박사 졸업 뒤 6개월 넘게 구직 전선에 뛰어든 시간은 짐작보다 훨씬 고됐다. 대학교나 연구기관의 박사후연구원, 연구교수, 평론 일 등 여러 차례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느 영역에서든 남성 비율이 높음을 실감했다. 한번은 대학교수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강당에 모인 지원자 200여 명 가운데 여성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시간강사 모임에 가면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대학 정교수는 거의 남자인 교수사회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쯤, 지도교수로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 채용 소식을 들었다. 합격하면 전남 나주로 가야 하는데, 다른 기혼 연구자들에 견줘 1인가구인 민지에게 이주는 쉬운 결정이었다. 더욱이 사택이 제공되는 좋은 조건이었다. 합격 뒤 그는 바로 짐을 싸서 나주로 갔다.

“콘텐츠 중독자인 저에게 당시 비전이 있었어요. 웹소설·웹툰 같은 콘텐츠가 영상과 결합하면서 콘텐츠 사업이 엄청나게 커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넷플릭스 한국 론칭이 논의되고 있었고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로 여러 행사를 기획했을 때 반응이 터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어떤 콘텐츠에 빠져 분석하고 결국 그 콘텐츠가 트렌드가 되리라는 믿음이 제 연구의 원동력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일은 재밌었지만 ‘덕질’에 이상이 생겼다. 당시 그가 빠져 있던 남성중창단 포레스텔라 공연을 보려면 매주 서울에 가야 했는데, 공공기관 연구원 연봉으로 매번 케이티엑스(KTX) 타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체력도 받쳐주지 않았다.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도 계속 이어졌다. 근무하면서 ‘교수 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민지의 답은 한결같았다. “제 꿈은 연예인입니다.”

박사 공부할 때도 교수가 졸업 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으면 아프리카TV(1인 미디어 플랫폼)에서 방송하고 싶다고 답했다.

“연예인이 되면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교수사회가 초남성사회인데다 유학파가 아닌 저는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지 못했고, 내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거나 누군가 들어주려면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고요. 지도교수님은 제 대답이 재밌어서 한동안 동료들에게 특별한 제자가 있음을 자랑하며 다녔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여러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장민지 교수 연구실 풍경. 장민지 제공

여러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장민지 교수 연구실 풍경. 장민지 제공

사진과 일상 가득한 휴대전화가 바로 ‘집’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싶던 그는 연예인 꿈을 간직한 채 교수 임용에 도전했고, 2020년 36살에 경남대 조교수가 됐다. 경남대 사회과학대학에서 최초 정년 트랙(임용 뒤 정년보장 심사받을 권리가 주어짐) 여자 교수가 된 것이다. 경남 창원으로 이주한 뒤로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았던 서울과 나주, 지금 사는 창원 역시 민지에게는 ‘장소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대학, 단골 가게, 친구들과의 시간이 떠오를 뿐이다. 나주 역시 즐겁게 일하면서 대학로 공연에 미쳐 시간 날 때마다 서울을 오가던 기억만 남았다.

그는 사는 공간을 온전한 ‘내 집’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 집은 유동하는 형태이며, 정박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어디로 이사해도 결국 평생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집 안에 물건 하나를 들일 때도 늘 고민이다. 한곳에 영원히 정박할까봐 두렵지만, 동시에 영원히 정박하지 않아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는 아이러니에 빠져 산다.

오히려 민지에게 공간에 상관없이 늘 가장 가까이 둔 ‘집’은 미디어다. 어디에서 살든지 그는 음악·영상 등 문화콘텐츠를 접하고 소유하며 자신만의 장소성을 만들어왔다.

“어디에 살았는지 생각 안 하고 살아요. 그 공간에 다시 가지 않는 이상,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거든요. 전 앞으로도 계속 이주할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결국 기억이 소멸해 마지막 순간에 기억에 남는 ‘내 집’이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휴대전화 같은 모바일 기기가 집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기에 내 연락처, 사진, 일상 순간순간의 기록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물리적 공간이 아닌, 기억 저장 공간으로 보자면 훨씬 더 집 같아요.”

민지는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를 따라 계속 이동하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감각이 없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무언가에 꽂혀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태울 수 있기를, 그 태워지는 마음을 충당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을 단단하게 마련해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에게 ‘취향공동체’ 구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민지는 결국 자신과 같이 살아갈 사람들, 같은 궤도를 걸으면서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꾸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생활동반자로서 서로 존재하는 공동체를 꾸려보고 싶다. 지금까지 수많은 덕질 과정에 함께한 이들이 그가 꿈꾸는 취향공동체가 돼줬다.

교수 됐지만 연예인 꿈은 포기 안 해

민지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 물었다.

“교수가 된 뒤로, 연예인 꿈은 포기하셨나요?”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니요!”

그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마주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교수 장민지’의 개인사를 다룬 첫 인터뷰를 잘 마쳤으니, 언젠가 하게 될지 모를 ‘연예인 장민지’의 인터뷰도 놓치지 않으리.

채혜원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저자 chaelee.p@gmail.com

*바깥에 사는 사람: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떠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가서 지역살림을 꾸리고 공동체에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바깥에서, 길 위에서 그들이 전하는 희망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칼럼 제목은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2013년) 수록작에서 따왔습니다. 4주에 한 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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