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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야기가 아니야”… 피할 수 없는 시련을 직시하는 법

철학 교수가 전하는 인생의 고난에 대한 통찰 <라이프 이즈 하드>
등록 2024-01-05 11:44 수정 2024-01-12 03:49
<라이프 이즈 하드>, 키어런 세티야 지음, 민음사 펴냄

<라이프 이즈 하드>, 키어런 세티야 지음, 민음사 펴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철학 교수인 키어런 세티야는 2020년 말 어느 평범한 저녁, 휴대전화로 기사를 훑다가 숨이 막혀온다. 코로나19로 수백만 명이 실업이나 위험한 노동환경에 내몰렸고, 흑인 남성은 경찰이 촌 쏭에 맞았고, 빙하는 너무 빨리 녹았다…. 그는 ‘둠서핑’을 하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타인의 고통만으로 힘겨운 건 아니었다. 저자는 27살 때부터 감각장애로 인한 만성통증을 겪었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허우적대기도 했다. 학자로서 성취하려 20년을 바쳤는데, 그 끝은 공허했다.

이 삶, 특별히 불행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흔히 ‘성공’이라 부르는 인생에 가깝다. 저자는 잉글랜드 북동부 산업도시에서 호시절에 태어났다. 잔혹행위나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고, 미국의 저명한 기관(MIT)이 제공하는 부와 안정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역시 시련은 피해갈 수 없었다. 아프고 외롭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불공정과 부조리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다.

저자는 애초에 ‘행복’과 ‘잘 산다’는 건 동의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건 영국인들만 하는 짓”(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사상가들을 두고 한 비판)이라고 비꼬았던 것을 인용하면서, 삶에선 감정이나 기분이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삶에서 소망할 가치가 있는 것’을 충분히 찾는 와중에 ‘삶은 고되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것이 ‘잘 산다’의 의미에 가깝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우리네 인생을 서사로 파악하려는 자세를 버리라는 조언이다. 저명한 작가, 전문가 등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이 대개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하며 스토리텔링해왔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삶을 하나의 통에 꼭꼭 눌러 담는 일은 자신을 최종적으로 실패하도록 준비시키는 셈’이라고 말한다. 삶을 서사로 보는 관점에는 필연적으로 ‘일관성과 연속성,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성취의 절정을 향해 점차 고조되는 사건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년간 학계에서 고군분투한 결과 철학이 자신에게 일련의 프로젝트가 돼버렸고 ‘철학적 사유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에 남는 말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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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야에게 토끼가 생겼어!

브라네 모제티치 지음,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김목인 옮김, 움직씨 펴냄, 1만8천원

슬로베니아 작가 브라네 모제티치와 일러스트레이터 마야 카스텔리츠가 만든 그림책. 어린이집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있는 알야가 등장한 뒤 아이들은 새 친구와 사는 법을 배워간다. 장애아동 알야는 실제 작가의 조카. 유전병 ‘리 증후군’을 가진 알야는 ‘모두를 위한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산책하고 놀면서 소중한 시간을 만든다. 4~6살용.


신유물론×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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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언어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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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36편 시의 언어를 살피면서 쓴 육아 교육 에세이. 언어 표현력, 감정 표현력, 말과 행동 표현력, 공감 표현력으로 주제를 나눠 시의 언어를 통해 아이가 자기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어른들의 표현력 증진에도 도움이 될 듯.


계절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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