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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들의 패자부활전

경기도 고양시의 창고형 구제의류 매장, 옷 구경하다 ‘득템’해볼까요?
등록 2023-05-19 13:26 수정 2023-05-23 01:12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린 2023년 5월5일 구제의류 매장이 밀집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구제거리’에서 한 시민이 맵시를 뽐내는 마네킹을 보며 매장 앞을 지나고 있다. 매장 안에선 어버이날을 앞두고 고객들이 선물할 물건 등을 고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린 2023년 5월5일 구제의류 매장이 밀집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구제거리’에서 한 시민이 맵시를 뽐내는 마네킹을 보며 매장 앞을 지나고 있다. 매장 안에선 어버이날을 앞두고 고객들이 선물할 물건 등을 고르고 있다.

당신의 옷장은 아직 빈틈이 있습니까.

사계절이 있어 철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섬유 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수많은 상표를 단 새 옷들이 한 철 앞서 쏟아져 나온다. 소비 중심이 온라인으로 바뀌어, 퇴근길 직장인들은 택배상자를 집어든 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모니터로 보고 산 옷들은 색상이나 질감, 맵시 등을 이유로 몇 차례 걸치지 못하고 옷장을 가득 채운다. 본전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새 옷에 밀려난 옷들은 의류수거함으로 던져진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옷들이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외곽, 서울~문산 고속도로 사리현 나들목 주변 도로를 가운데 두고 46곳(2022년 12월 기준)의 창고형 구제의류 매장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선 옷뿐 아니라 모자, 신발, 허리띠, 핸드백, 지갑 등 각종 장신구도 새것보다 훨씬 싼 값에 살 수 있다. 매장 이름도 구제천국, 명품구제, 도깨비구제, 보물창고, 득템#, 대박이네 등 다채롭다.

취업에 성공한 26살 아들과 함께 2023년 5월12일 이곳을 찾은 60대 아버지는 꼼꼼히 양복을 고른다. 여러 패턴의 양복 윗옷을 입어보는 아들을 지켜보며 혼잣말을 되뇐다. “아래위 한 벌 정장이 많지 않은 게 아쉽네.” 매장 직원 이남일(38)씨는 손님이 사간 옷이 빠진 자리를 다른 옷으로 채워넣느라 다림질에 여념이 없다. “아무래도 절약 습관이 몸에 밴 50대 이상 손님이 많았죠. 유명 브랜드 코너가 생긴 뒤로 젊은 고객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라고 그가 귀띔한다.

패자부활전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옷들은 부피를 최소화하려 압축포장된다. 그리고 대형 컨테이너에 실려 세계 30여 나라로 수출된다. 이곳에서 가장 큰 업체인 기석무역은 한 해 1만5천t을 재활용 처리한다. 끝내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옷은 산업체에서 걸레로 쓰인다. 그마저도 어려운 옷들은 소각장에서 불살라져 열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소임을 마친다.

창고형 구제 물품 매장이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 구제거리.

창고형 구제 물품 매장이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 구제거리.

헌옷 집하장에서 매입한 옷들을 중장비를 동원해 보관장으로 옮기고 있다.

헌옷 집하장에서 매입한 옷들을 중장비를 동원해 보관장으로 옮기고 있다.

구제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이남일씨가 매대에 진열할 옷을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있다.

구제의류 매장에서 일하는 이남일씨가 매대에 진열할 옷을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있다.

액세서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모자를 써보고 있다.

액세서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모자를 써보고 있다.

취업에 성공한 아들(앞줄 왼쪽)이 양복 웃옷을 입어보는 동안 아버지(앞줄 오른쪽)가 다른 정장을 살피고 있다.

취업에 성공한 아들(앞줄 왼쪽)이 양복 웃옷을 입어보는 동안 아버지(앞줄 오른쪽)가 다른 정장을 살피고 있다.

40만원이 훌쩍 넘는 명품 구제의류가 전시된 매장. 새 제품의 10% 정도 가격에 명품 의류를 살 수 있다.

40만원이 훌쩍 넘는 명품 구제의류가 전시된 매장. 새 제품의 10% 정도 가격에 명품 의류를 살 수 있다.

지게차가 압축포장된 구제의류 더미를 수출용 컨테이너로 옮기고 있다.

지게차가 압축포장된 구제의류 더미를 수출용 컨테이너로 옮기고 있다.

고양=사진·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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