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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 나머지’ 정치 구도가 부상한다

민주당 보고서에서 드러난 9.3%의 ‘반권위·포퓰리즘’은 어디로 기울게 될 것인가
등록 2022-10-11 08:11 수정 2022-10-14 07:16

더불어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가 2022년 8월 말 발간한 보고서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는 한국 정치에서 서울 대 지방의 균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 대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에는 혁신, 친환경, 여성에게 우호적인 잘 교육받고 번듯한 직업을 가진 중산층이 산다. 낙후되고 퇴락해 경우에 따라 1990년과 별 차이 없는 모습의 지방에는 경제 발전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분노와 냉소를 쌓아간다. 이들의 세계관이 양쪽으로 벌어지면서 정치 구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유권자 집단을 6개로 나눴다(제1430호 표지이야기 ‘이대로라면 민주당은 계속 진다’ 참조). 주목해야 할 집단은 응답자의 9.3%를 차지한 ‘반권위·포퓰리즘’ 그룹이다. 20~40대 남성 비중이 높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동시에 정부의 재분배 정책에도 호의적이다. 소득이 낮고, 비정규직일 확률이 높으며, 부산·울산·경남을 비롯한 지방 거주자가 많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즐겨 호명하는, 시험과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청년’과 사뭇 다른 집단이다.

여자 100명에 남자는 서울 90.1명, 경남 126.6명

대척점에 선 이들이라면 ‘개혁 우선’ 그룹(응답자의 6.3%)이다. 이들은 유독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부동산 등의 재산세율 인하에 찬성하고, 복지 확대에 부정적이다. 부국강병 노선에 호감을 보이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수도권 고소득자 비중이 높다. 보고서는 이 두 집단과 여성·비정규직·지방 거주자 중심으로 기성 정치 구도에 냉소적인 ‘민생 우선’ 그룹이 20~30대에 많다고 지적한다.

최근 용접공 출신 작가인 천현우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둘러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논쟁도 서울과 지방이 발 딛고 선 현실의 현격한 격차를 보여준다. 천씨는 칼럼에서 “계급 이동 사다리가 사라진 지난한 현실 속에서도 지방 총각들은 가정을 꿈꾼다. 내 차를 타고 퇴근해, 내 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를 맞이할 아내와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서”라고 썼다.

실제 지방 청년들에게 평범한 가족을 꾸리는 일이 여간해서 쉽지 않게 됐다. 20~39살 시도별 성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은 여자 100명당 남자 96.2명(2021년 주민등록인구 기준)이다. 반면 경남의 성비는 여자 100명당 남자 117.8명에 이른다. 경북(122.7명), 울산(121.3명), 강원(120.2명), 충북(120.3명)뿐만 아니라 대구(112.2명), 대전(110.0명), 광주(107.2명) 등 광역시도 남성이 훨씬 많다. 20~24살의 경우 서울은 여자 100명당 남자 90.1명인데 경남은 126.6명에 이른다. 젊은 여성들이 일자리와 삶의 기회를 찾아 서울로 가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대기업 정규직 등 번듯한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이들은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다. 천씨 주변의 ‘지방 총각’들이 민주당 보고서의 ‘반권위·포퓰리즘’ 집단으로 기울게 되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서울·경기는 머리, 부울경은 손발

한국 경제의 공간 구조는 서울이 ‘머리’를, 부산·울산·경남 등 지방 제조업 중심지가 ‘손발’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 고도화와 탈공업화로 제조업 일자리가 꾸준히 줄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이다. 2010년 35만 명에서 2017년 40만1천 명까지 늘었다가 2021년 38만1천 명으로 줄었다. 2017년까지 자동차산업의 고용 증가는 주로 부품 제조업에서 왔다. 국내 일자리 감소는 현대·기아자동차가 국외 공장 건설에 매진한 결과다. 2018년 이후 고용 감소는 자동차산업의 양적 성장이 멈추고 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 산업의 성장으로 기존 자동차부품 산업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전자·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 비중이 늘어나지만 국내 업체가 설 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산업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첨단기술 기업의 수도권 쏠림이 심화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기업 동향에 따르면, 2021년 기술 기반 업종에서 창업기업은 24만 개로 2016년과 비교해 4만9천 개 늘었다. 경기도(3만2천 개)와 서울(9천 개)이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기도의 기술 기반 창업기업의 비중은 2016년 32.6%에서 2021년 40.1%로 뛰었다. 같은 기간 부산·울산·경남은 14.9%에서 11.2%로, 광주·전북·전남은 7.3%에서 6.5%로 쪼그라들었다.

지역에서 연구개발을 비롯한 지식산업의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경북 구미시의 고용구조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도시의 제조업 종사자(고용보험 가입자 기준)는 2013년 6만2300명에서 2021년 5만5600명으로 줄었다. 연구개발이나 전문서비스 종사자는 3500명에서 4천 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신 중장년 여성이 대부분인 공공행정·보건·사회복지 일자리만 5900명 늘었다.

부유한 대도시와 지역의 대립은 상수

선진국 정치에서 첨단기업이 밀집한 부유한 대도시와 쇠락하고 뒤처진 나머지 지역의 대립은 상수가 됐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던 조지아주가 민주당으로 넘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2016년 대선에서 쇠락한 공업지대와 농촌의 백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한 것의 거울상처럼, 빠르게 발전한 도시 중산층의 표가 몰렸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투표에 대해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데이비드 굿하트는 ‘세계화와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는 런던의 애니웨어(anywhere·어디에서나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정적인 일자리와 공동체를 빼앗긴 런던 섬웨어(somewhere·특정 장소에 붙박여 살고 싶은 사람들)’의 반격이라 설명한다. 프랑스 극우파 마린 르펜에 대한 지지도 파리 밖 저발전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최근 변화는 한국에서도 ‘서울 대 나머지’의 구도가 부상할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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