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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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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도 동의한 ‘우주방사선 실측’ 실현될까

<한겨레21> 보도 뒤 항공 승무원 피폭 관련 토론회서 항공사 입장 밝혀

실측 조건으로 내건 ‘국제공동연구’에 “현실성 없다”는 비판도
등록 2018-11-10 07:24 수정 2020-05-02 19:29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가 11월8일 우주방사선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가 11월8일 우주방사선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쪽이 “우주방사선 피폭량 실측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11월8일 국회 토론회에서 밝혔다. 이 대한항공 승무원의 백혈병 발병을 보도(제1216호 ‘스튜어디스는 왜 백혈병에 걸렸나’)한 지 5개월 만에, 대한항공이 북극항로 운항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이뤄진 작은 진전이다. 하지만 항공사업자들이 내건 조건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어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

백혈병·유방암 발병에 “실측 필요하다” 목소리

항공 승무원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모든 직종에서 아주 높은 편이다. 원자력발전소 종사자보다도 평균 피폭량이 많다. 고위도·고고도를 비행하면서 높은 선량의 우주방사선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6년 열린 북극항로는 가장 방사선이 센 구간이다. 우주방사선 때문에 항공 승무원의 백혈병, 유방암, 피부암 발병률이 높을 수 있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모든 것은 예측에 불과하다. 국적기에서 우주방사선 피폭량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한 조사는 거의 없었다. 시범적으로 몇 차례 이뤄진 일회성 조사가 전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은 외국에서 개발한 우주방사선 예측 프로그램인 ‘캐리식스엠’(CARI-6M)으로 실측을 대신해왔다. 그런데 지난 7월 대한항공 조종사 새노조가 “캐리식스엠의 피폭량 예측값이 다른 프로그램이나 실제 측정값보다 낮다”고 의혹을 제기했다(제1223호 ‘대한항공 기장 “피폭량 직접 계산하니 75% 더 높았다”’).

우주방사선 전문가인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도 캐리식스엠의 예측값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측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북극항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우주방사선 연구를 하지 않는 드문 나라”라며 “지금이라도 실제 항로에서 실측 실험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제1219호 ‘알맹이 쏙 빼고 피폭량 쟀나’).

대한항공·아시아나 ‘조건부 실측 동의’
11월8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 국토부, 원안위 등 정부 부처 담당자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운수사업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11월8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 국토부, 원안위 등 정부 부처 담당자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운수사업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우주방사선은 이슈가 됐다. 10월10일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서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캐리식스엠의 문제점을 지적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항공기에 방사선 측정 장비를 탑재해서 실측할 필요가 있다”는 답변을 끌어냈다. 피해 당사자가 문제 제기를 시작해 과학자, 노조, 국회를 거쳐 정부의 동의까지 이른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실측조사를 반대하거나 미온적이었던 항공운수사업자도 가만있을 수 없게 됐다. 11월8일 우주방사선 실측 조사에 대한 항공운수사업자의 조건부 동의가 처음 나왔다. 국회에서 김철민·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린 ‘승무원 우주방사선 피폭 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였다. 이날 국토부, 원자력안전위원회, 국립전파연구원 등 우주방사선 관련 주요 부처 실무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대한항공 조종사 새노조에서도 정복에 노란 넥타이를 맨 항공 승무원 13명이 자리를 채우는 등 총 8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성호 대한항공 운항기술부 부장은 기존에 쓰던 캐리식스엠의 정확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측 조사를 벌여 프로그램의 신뢰성 논란을 끝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만 “국토부, 원안위가 캐리식스엠의 개발자인 미국연방항공국(FAA)과 공동 연구를 추진해달라”고 단서를 달았다. 김 부장은 “우주방사선 측정 장비 선정, 측정 방법 결정, 측정 결과 분석, 결론 도출 등에 FAA가 참여한다면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종하 아시아나항공 안전예방팀 부장도 “FAA와 이해관계자가 동의한 공정한 실측 조사 계획이 나오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대형 항공사가 우주방사선 실측 조사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황정아 박사는 “겉으로는 동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을 세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 박사는 “국토부, 원안위, FAA가 참여하는 국제공동연구는 현실적으로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조건을 내건 것”이라며 “시간과 비용과 절차 등을 생각했을 때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항공 승무원 역학조사 필요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항공 승무원에게 역학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실제 승무원들의 암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얼마나 높은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한 대한항공 부속의원 원장은 “승무원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나서서 통계 분석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승현 노무사도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발병 사건처럼 오래 끌지 말고 빨리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노무사는 백혈병에 걸려 산업재해를 신청한 전직 대한항공 승무원 K씨를 대리하고 있다.

이진경 한국원자력의학원 원자력병원 생활건강증진부장은 “피폭량을 조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발병을 줄이는 것”이라며 더욱 세밀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항공 승무원처럼 높은 방사선량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혈구 수치나 염색체 손상 검사를 해 개인별 피폭량을 역계산할 수 있다며 맞춤화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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