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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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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감사로 알았던 것 평택시는 몰랐다?

제1351호 표지이야기 ‘사랑의집 지적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 첫 변론기일 열려
“책임 없다”는 평택시 주장과 달리, 경기도 감사로 관련 공무원 ‘불문경고’ 처분
등록 2021-08-31 15:05 수정 2021-09-01 02:13
지적장애인 폭행 사망사건이 일어난 경기도 평택시 사랑의집 전경. 피해자 김성진(가명)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폭행당해 2020년 3월19일 숨졌다. 이정우 선임기자

지적장애인 폭행 사망사건이 일어난 경기도 평택시 사랑의집 전경. 피해자 김성진(가명)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폭행당해 2020년 3월19일 숨졌다. 이정우 선임기자

“대한민국 평택시는 공무원의 잘못은 없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우발적인 범행이고 (공무원의 직무수행과 피해자 사망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지요.”(재판장)

“그런데 저희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평택시 공무원이 관리·감독에 소홀해 징계 요구당한 기록이 있습니다.”(김남희 변호사)

2021년 7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565호 법정.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 사망 사건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사랑의집에서 활동지원사에게 맞아 숨진 지적장애인 김성진(사망 당시 38살·이하 모두 가명)씨 유족이 사랑의집 원장, 경기도 평택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지 5개월 만이다. 담당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가 피고 평택시의 답변서 요지를 정리하던 중 유족 쪽 김남희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평택시 주장과 달리, 평택시 공무원이 사랑의집 관리·감독이 소홀해 상위 지자체인 경기도로부터 ‘징계 요구’ 당한 기록이 발견됐다는 설명이다.

사망 전까지 시설 존재조차 모른 감독기관

2020년 3월19일 경기도 평택시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에서 지적장애인 김성진씨는 활동지원사 정민수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활동지원사에 대한 수사·재판 등 1천여 쪽 기록을 살펴본 <한겨레21>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그 뒤에 숨은 미신고시설 원장, 지방자치단체, 정부까지 4단계 폭력이 김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지적했다(제1351호 표지이야기 ‘피가 나도록 때려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원장은 신고시설과 미신고시설을 하나의 시설처럼 운영하면서 미신고시설(일반 주소지)에 파견된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직원처럼 부리고 활동지원급여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런 거주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자체와 정부는 사망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미신고시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김씨 유족은 2021년 2월22일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조력을 받아 사랑의집 원장뿐 아니라 국가, 평택시까지 포함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시설의 문제를 파악해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국가와 지자체가 번번이 놓쳤다는 점을 소송으로 밝혀 책임을 물으려 한 것이다.

평택시 쪽은 첫 변론기일 전날(7월21일)이 돼서야 재판부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평택시는 답변서에서 담당 공무원은 관련 규정에 따른 의무를 다했고, 직무수행 과정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9년 두 차례 현장점검을 했으나 원장 개인이 미신고시설을 개인주거시설로 가장해 은폐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평택시 주장과 달리, 상위 지자체인 경기도가 해당 공무원의 잘못을 적발하고 징계를 요구한 기록이 이미 공개돼 있다. 2020년 10월27일 경기도 누리집에 공개된 ‘2020년 평택시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 경기도는 평택시 사회복지국 담당 공무원 2명에 대해서 경징계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평택시에 요구했다.1 3년마다 진행하는 시·군 종합감사로 평택시의 장애인거주시설 점검 계획, 실시 현황 등을 따져본 결과다.

경기도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 평택시의 관리·감독 소홀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보건복지부 지침(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과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지도·점검을 ‘반기별’(6개월마다)로 시행해 인권침해 사례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그러나 평택시 담당 공무원은 2017년과 2019년 관할 장애인거주시설 8곳에 대한 지도·점검을 ‘반기별’이 아닌 ‘연 1회’로 축소해 운영했고 심지어 2018년은 한 번도 점검을 실시하지 않았다.

사랑의집에 남아있던 김성진씨의 유품. 유족 제공

사랑의집에 남아있던 김성진씨의 유품. 유족 제공

경기도 “지도·점검 연 1회 축소… 인권 사각지대”

특히 사랑의집에 시설운영위원회와 인권지킴이단이 설치되지 않은 사실을 파악하고서도 ‘지적없음’(문제없음)으로 표기해 점검을 마무리지었다. 시설운영위원회와 인권지킴이단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외부 감시 체계다. 이를 설치하지 않으면 지자체는 시설 개선, 사업 정지, 시설장 교체와 폐쇄까지 명령할 수 있다. 이런 법 위반은 지자체의 관리·감독 공백을 틈타 4년여 동안 방치됐다. 경기도는 “행정청의 지도·점검 공백과 장애인 인권 사각지대를 만들어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지속적인 학대 피해 및 사망 사건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하면서 담당 공무원 2명에 대해 경징계, 1명에 대해 훈계 처분을 요구했다.

감사 대상인 평택시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경기도에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평택시 인사위원회는 경징계 요구당한 2명의 징계 수위를 감경해 ‘불문경고’하는 데 그쳤다. 1명은 그대로 훈계 처분이 내려졌다. 평택시 관계자는 “‘견책(경징계)으로 결정했으나, 다만 감경해서 불문경고’로 의결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외부위원이 포함된 평택시 인사위원회의 결정이기 때문에 평택시가 따로 내놓을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관련 법(지방공무원 징계규칙 등)에 따르면, 인사위원회는 징계 의결이 요구된 사람에게 포상을 받은 공적 등이 있으면 징계를 감경할 수 있다.

가해 활동지원사는 징역 5년 확정

한편, 시설 원장은 대형 로펌 대륙아주를 선임해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시설 원장은 재판부에 미신고시설을 운영하지 않았고 수용 인원을 초과하는 장애인을 위해 자립체험홈을 구해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장애인들을 대리해 장애인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하고 활동지원사의 ‘케어’를 받도록 중간에서 다리를 놔줬을 뿐, 피해자를 때려 숨지게 한 정민수를 직원처럼 부리지도 않았고 가혹행위를 지시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정민수는 “(원장이) 활동지원사들의 급여 계좌와 카드를 받아간 뒤 고정급여로 200만원을 주겠다고 따로 이면계약서를 작성했다”며 자신은 시설 원장에 고용돼 일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바 있다.2

정민수는 2021년 4월 항소심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미신고시설에 그를 파견한 경기도 시흥시의 장애인 활동지원사 파견기관 두 곳은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 관할 지자체인 시흥시로부터 벌금 5천만원과 영업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흥시 관계자는 “4월 판결이 확정됐는데 검찰이나 법원에서 판결문을 지자체에 공유할 법률이 없다고 해서 (판결문을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가) 행정처분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1. ‘2020년 평택시 종합감사 결과’, 경기도청 누리집, 2020년 10월27일

2. 가해 장애인 활동지원사 경기도 평택경찰서 5회 피의자신문, 2020년 5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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