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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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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생물학] 코로나19 백신, 과학 넘으니 ‘신뢰’의 벽이

짧은 시간에 개발된 낯선 방식의 백신들, 무조건적 의혹보다는 근거에 따른 접근이 앞서야
등록 2020-12-05 01:58 수정 2020-12-07 23:48
2020년 12월2일 러시아에서 의료진이 3단계 임상시험 중인 코로나19 백신 ‘에피박코로나’를 자원자에게 주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2월2일 러시아에서 의료진이 3단계 임상시험 중인 코로나19 백신 ‘에피박코로나’를 자원자에게 주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보통 어떤 일이 생긴 뒤 시도하는 때늦은 대응, 나아가 의미 없는 행위라는 뜻이 담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필요한 대응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를 잃은 뒤라도 외양간을 고쳐둬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당장 지금은 소를 잃어 손해가 좀 있겠지만, 어쩌면 이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방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기 위하여

우리 몸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면역력 핵심을 담당하는 항체의 형성이 그렇습니다. 우리 몸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몸에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항체를 만들어냅니다. 몇몇 항체는 태어나기 전 모체로부터 받거나 출생 뒤 모유를 통해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 항체는 아기의 면역계가 외부 침입자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이처럼 병원체에 직접 노출되는 것, 다시 말해 어떤 감염성 질환에 걸리는 것은 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에 대항하는 항체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매번 병에 걸려서 항체를 만드는 것은 무리입니다. 일단 병에 걸리고 회복되는 과정이 인체의 가용 자원을 너무 많이 끌어다 써야 하는데다 자칫 목숨을 잃을 위험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종두법을 찾아낸 에드워드 제너 이후 과학자들은 항체를 만드는 B세포를 속여서 실제로는 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병에 걸린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방법인 백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즉, 아직 소를 잃지는 않았지만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해 미리 외양간을 손봐두도록 하는 경고등 구실을 하는 게 바로 백신입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할 때만 해도 이 사태가 연말까지 지속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태가 진정되고 우리는 곧 다시 원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봄과 여름이 지나 점점 증폭되는 코로나19 확산세에 놀란 사람들의 관심사는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로 쏠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연내에 백신이 개발되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여론이 대세였는데, 이를 뒤엎고 최근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옵니다.

11월9일,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공동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임상 3상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임상 3상에서 4만3538명에게 실험한 결과, 90% 이상 효과를 보였다는 거죠.

보통 사람에게 신약 성능을 테스트하는 임상시험은 3단계로 이뤄집니다. 독성·부작용 유무, 체내 흡수와 잔존 시간 등 약물 자체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주로 시험하는 것이 임상 1상이라면, 적은 수의 피험자에게 약물의 실제 효능을 확인하는 것이 임상 2상입니다. 인류 집단의 다양성을 고려한 다수의 다양한 피험자를 대상으로 약물의 보편적 효능을 검증하는 것이 임상 3상입니다. 임상 3상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한 약물은 일단 약효가 있다고 보증받은 것이기에 현실 적용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 임상 3상에서 코로나19 백신 효과가 입증됐다는 건 곧 시판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 효과도 기대 이상이라고 하니 관심을 끌 수밖에요.

48종 임상시험 중, 164종 준비 중

바로 뒤이어 11월16일 미국의 바이오테크놀로지 그룹인 모더나 역시 효과 있는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11월23일에는 영국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이 세 번째로 성공적인 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코로나19 종식의 기대감을 부풀렸습니다. 사실 전세계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뛰어든 연구진 수는 엄청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 전세계에서 총 48종의 백신이 임상시험 중이고 임상시험을 준비 중인 백신도 164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조만간 또 다른 백신의 성공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이 큽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에서 들려오는 백신 소식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단어는 두 백신이 ‘mRNA’ 백신이라는 것입니다. mRNA가 주는 어색함이 백신이 주는 반가움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듯합니다. 도대체 mRNA 백신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백신은 B세포를 속여 항체를 미리 만들도록 하는 물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세포를 속이는 데 이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물질이 바로 그 병원체 자체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어떤 대상의 본질을 가장 잘 가진 게 바로 그 자체일 테니까요. 물론 병원체를 그대로 쓰지는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병을 막기는커녕 되레 병에 걸릴 테니까요. 이런 종류의 백신은 병원체가 질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아주 약화하거나 중화해서 만들기에 ‘약독화백신’이라고 합니다. BCG, 로타바이러스장염, 홍역, 수두, 풍진 등이 대표적인 약독화백신입니다. 이 방법은 면역계를 효과적으로 자극해 항체 생성률이 매우 높지만(홍역 백신의 효능은 95~99%), 아주 드물게 이 중 완전히 기능을 잃지 않은 병원체가 섞이면 오히려 백신에 의해 병에 걸리는 끔찍한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1955년에 있었던 소아마비 백신 사건입니다. 당시 제조사의 실수로 약독화 처리가 되지 않은 미량의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백신에 혼입됐고, 이 때문에 소아마비 발병과 2차 감염으로 총 164명이 소아마비에 걸려 이 중 10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참고로, 지금 접종되는 모든 소아마비 백신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 안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이후 좀더 안전한 백신 제조법 연구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2세대, 3세대 백신 개발을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세대 백신이 병원체 자체를 이용했다면, 2세대 백신은 주로 그 병원체의 특징적인 단백질만을 분리해 쓰고, 3세대 백신은 그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은 유전자(DNA)만을 넣어 우리 몸에서 이 정보를 이용해 병원체의 단백질을 직접 만들어 면역세포를 자극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직접적인 면역계 자극 정도는 1세대>2세대>3세대 순이지만, 안전성과 부작용의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1세대<2세대<3세대 순입니다.

이번에 만든 mRNA 백신은 굳이 말하자면 ‘3.5세대’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원체 유전정보를 담은 DNA가 체내에서 항체를 만들려면 먼저 사람의 세포핵 속에 들어가 자리잡고, 이 정보가 mRNA 형태로 복제돼 다시 세포핵을 빠져나와 세포 내 단백질 제조 공장인 리보솜으로 가서 단백질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mRNA를 직접 이용하면 세포핵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이 생략되니 단계가 줄어들어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영하 70도 이하에 보관해야 하는 이유

그런데 왜 기존에는 이런 방식으로 백신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건 RNA가 가진 불안정성 때문입니다. RNA는 대개 단일 가닥이므로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는 DNA보다 훨씬 불안정하며 변이성도 높고 열이나 효소에 의해 변성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DNA가 튼튼하게 꼬인 빨랫줄이라면, RNA는 변형되기 쉬운 국수 가락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mRNA 백신은 효과를 보장하기 위해 영하 70도 이하 초저온에서 유통·보관해야 하고 접종 직전에 녹일 것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냉장고는 냉동실 온도가 대부분 영하 30도 선입니다. 이 백신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먼저 영하 70도 이하로 유지되는 초저온 냉장고를 각 병원에 공급해야 합니다. 이를 운반하는 것 역시 유통 과정에서 자칫 온도 때문에 변질될 우려가 있어 초저온 냉동시설을 갖춘 특수차량을 써야 해서 유통비가 많이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백신 제조사는 굳이 초저온 냉장고를 보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흔히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보는 드라이아이스의 끓는점이 영하 79도이므로, 백신을 드라이아이스에 묻어서 유통하면 되고, 백신을 몇 개월씩 저장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 매번 공급하면 된다며 맞섭니다.

이러한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파고든 것이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의 백신입니다. 이들이 개발한 백신은 RNA 조각을 그대로 넣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다른 바이러스와 결합해서 넣어주는 것이므로 훨씬 더 안정적이어서, 냉동실도 필요 없고 냉장실에만 보관해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백신의 효율을 안정적으로 보고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의 백신에 비해,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두 번의 임상시험에서 결과값 차이가 있어 의문을 남깁니다. 그러나 효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이 밖에 미국의 노바백스, 중국의 시노팜 등에서도 임상 3상 결과가 곧 보고될 예정이라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는 문제의 1차 고비는 간신히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전세계 연구진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 백신이 정말 지긋지긋한 ‘코로나 블루’(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우울)에서 헤어나게 해줄 확실한 동아줄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동아줄이 튼튼한지를 넘어서서, 썩었을지 모른다고 의심해서 동아줄을 잡지 않을 사람이 많아 보인다는 게 한 이유입니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기관이 내놓은 결과를 보면, 백신의 개발과 충분한 양의 생산 같은 기술적 문제만큼이나, 백신과 그 접종 방식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성 확보라는 난제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9%만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시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접종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의혹을 해소해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언론조차 오히려 불확실한 근거로 의심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 여기에 동조합니다. 백신은 이제 기술과 과학의 문제라기보다 그 국가의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 문제로 넘어간 듯 보입니다.

불충분한 시간을 넘어서는 방법

혹자는 말합니다. 진실은 최고의 무기가 될 거라고요. 그러니 백신이 정말 안전한지, 확실한 효과를 보장해주는지 명확하게 증명한다면 누가 백신을 거부하겠냐고 말이죠. 지금 우리가 가진 과학 정보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신의 예방 효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지, 추가 접종 필요성은 없는지, 연령대(아직 어린이를 임상시험한 결과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가 달라져도 안정적인 효능을 보이는지,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었으니까요. 이는 과학자들이 못나거나 시험이 잘못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모든 문제를 검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럼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제도와 과정에 대한 신뢰입니다. 백신 개발 과정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이뤄졌는지, 그 백신을 시험하는 과정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백신의 생산·유통·확산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질지에 대한 신뢰가 아직은 낯선 백신을 기꺼이 접종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비판해야 할 지점은, 평균적으로 개발까지 수년이 걸린다는 백신을 10개월 만에 만들어냈으니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무논리적 비판이 아니라, 백신을 어떤 과정으로 제조했고 어떤 방식으로 시험했는지, 어떤 근거로 백신 접종 순서를 정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실질적 절차, 합리적 정당성에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비판의 칼날 역시 이 지점을 집중 해부해야 합니다.

모든 과학자는 의심 많은 회의주의자이며, 과학적 사고의 기본 역시 의심하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합리적 근거로 인한 정당한 의심이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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