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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에게 한국 국적 준다고요?’… 오해와 진실

영주권자 자녀가 국적 획득하는 국적법 개정안 반대 청원, 한 달 만에 31만 명이 동의
등록 2021-06-05 07:34 수정 2021-06-07 02:04
2021년 4월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적법 개정안 입법 반대’ 청원글이 올라왔다. 5월28일까지 31만7013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2021년 4월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적법 개정안 입법 반대’ 청원글이 올라왔다. 5월28일까지 31만7013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국경이 막힌 코로나19 시대에도 해외 뉴스가 남 일 같지 않을 때가 있다.
2021년 5월20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아시아계 증오범죄 방지법’에 서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그 뒤로도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일어나는 증오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5월26일과 31일, 미국 뉴욕 길거리에서 각각 70대와 50대 아시아계 여성이 지나가던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쓰러진 사건이 전해졌다.
국내에선 중국 국적 외국인 특혜 논란과 중국인 혐오 정서가 번지고 있다. 법무부가 4월26일 입법예고한 국적법 개정안 내용 때문이다. 개정안은 국내 출생 영주권자(국내 체류 기간과 활동 범위에 제한이 없는 외국인)나 외국 국적 동포(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이나 그 직계비속)인 영주권자가 국내에서 아이를 낳고 신고하면, 그 자녀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요건에 해당하는 영주권자 대부분이 중국 국적 외국인이라는 점이 반대 여론에 불을 붙였다. 정치권에서도 “매국 행위”와 “중국 사대 정권”이란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판을 퍼붓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아동의 정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에 불과”한 내용이라며 확대해석과 혐오 시각을 경계했다.
국내 이주민은 현재 약 200만 명, 다문화가족은 약 35만 가구에 이른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짧게는 5년, 길게는 22년 국내에서 생활한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활동가 자격 체류자, 귀화자를 만났다. 서울시청에서 10년 넘게 다문화가족 지원 업무를 수행한 베트남인 영주권자 팜튀퀸화(39),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를 20년 가까이 알리며 ‘나눔의집’에서 일하는 일본인 활동가 야지마 츠카사(48), 무용 공연 무대에 서며 외국인 예술가 대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인 결혼이민자 엠마누엘 사누(40), 서울 마포구 다누리콜센터에서 몽골어 상담원으로 14년째 이주민을 상담하는 몽골 출신 귀화자 이다와(49)가 그들이다. _편집자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적법 개정안 입법을 결사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매년 700명이 넘는 외국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여 한국인으로 만들겠다고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용납 가능하지 않습니다.’ ‘영주권 주 대상인 화교들 포함 많은 외국인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권리를 갖는지 압니다. (…) 우리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융화되어 자국의 문화를 흐리고 그들이 한국인으로서 함께 살아갈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한 달 만에 31만7013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영주권자 16만 명, 국적법 개정안 적용 대상 약 3930명

법무부가 2021년 4월26일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외국인을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대한민국 국민 요건을 정하는 국적법은 기본적으로 혈통주의를 따른다. 출생 당시 어머니나 아버지가 한국인이면 자녀도 한국인이 된다. 예외적으로 출생지주의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모두 분명하지 않거나 모두 국적이 없는데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인이 된다. 이번 개정안은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의 자녀(특정 요건을 갖춘 영주권자 자녀)가 신고만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국적법상 영주권자(용어설명 참조) 자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성인이 된 뒤 귀화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적법을 개정하면 누가 국적 취득이 쉬워질까(간이 국적 취득 신고). 개정안은 5가지 정도의 요건을 달았다. ①대한민국 출생 ②미성년 ③국내 주소가 있을 것(7살 이후엔 5년 이상 국내 주소가 있을 것) ④출생 당시 어머니나 아버지가 영주권자일 것 ⑤아버지나 어머니가 국내 사회와의 유대를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일 것. 법무부 관계자는 6월1일 ‘국내 사회와의 유대를 고려하여’라는 단서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으로 정하겠지만 현재로선 부모가 국내에서 출생한 영주권자인 경우, 부모가 외국 국적 동포인 영주권자인 경우를 상정한다”고 밝혔다. 외국 국적 동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이나 그 직계비속인 외국인을 뜻한다.

국내 이주민(체류 외국인) 수는 2021년 4월30일 기준 199만228명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 체류 외국인)와 난민 등을 모두 포함한 규모다. 이 가운데 영주권자는 16만3384명(약 8.2%)이다. 2016년(13만237명)부터 2020년(16만947명)까지 해마다 늘고 있다.

영주 자격이 있는 외국 국적 동포는 총 10만9507명이다. 중국 국적 동포가 10만7543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법무부는 국적법 개정안 적용 대상(간이 국적 취득 신고를 할 수 있는 영주권자 자녀)을 3930명으로 추산한다. 그중 중국 국적 동포인 영주권자 자녀는 3725명이다. 법무부는 “우리 사회와 유대가 깊은 영주자 자녀에게 조기에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부여해 정체성 함양과 안정적 정착에 도움을 주고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미래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다.

황교안 “매국 행위” 안철수 “예속”

그러나 중국인 특혜 시비로 논란이 번졌다. 결과적으로 중국 국적 동포인 영주권자 자녀들을 위한 정책 아니냐는 의심이다. 정치권도 나섰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5월31일 페이스북에 “의도적으로 문턱을 낮춰가면서까지 대한민국 정부보다 중국 정부를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셔올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라고 썼다. 6월1일에도 페이스북에 ‘국적법 개정, 문(재인) 정권의 21세기 매국 행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같은 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적법 개정까지 이루어진다면, 문재인 정권은 한-중 관계를 갑신정변 직후의 예속관계로 되돌린 굴욕적인 ‘중국 사대 정권’이라는 역사의 평가와 비판을 결코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6월7일까지 국민참여입법센터 누리집(opinion.lawmaking.go.kr)에서 이번 개정안에 대한 개인과 단체, 기관의 의견을 받고 개정안을 정비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국적법 개정안의 의미를 정치권에서 확대해석하거나 중국인 혐오 여론을 조장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국적법 전문가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영주하는 중국인이 아이를 낳고 신고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 중국 국적은 취득하지 못한다. 중국 국적을 포기할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중국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면 한국인으로 영구히 살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법 적용 대상 범위를 대한민국에 기여도가 높은 영주권자의 자녀 등으로 넓혔다면 더 명분이 섰을 텐데 국민적 공감대를 고려해 동포 영주권자 자녀 등으로 범위를 좁힌 게 오히려 중국인을 위한 정책으로 비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외국인 인권 존중 방향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국적법 개정안 논란에 대해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는 “마치 중국인이 국내에서 지나친 혜택을 받아 내국인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가 확대재생산되는데 이번 개정안의 취지는 사실상 한국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아동의 정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정부도 앞으로 이주민 정책을 외국인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국민이 정책을 이해할 때 혼란을 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영주권자란

국내에 영주할 체류 자격을 얻은 외국인을 뜻한다. 이들은 국내 활동 범위와 체류 기간에 제한받지 않는다. 외국인 체류 자격은 단기 체류 자격(90일 이하 체류 자격)과 장기 체류 자격(90일 초과 체류 자격)으로 구분한다. 2021년 4월30일 기준 국내 장기 체류 외국인 157만2345명, 단기 체류 외국인 41만7883명이다, 영주권자는 16만3384명이다.

외국인이 영주 체류 자격을 얻으려면 여러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먼저 27개 세부 영주 자격 범주에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주(F-2) 체류 자격으로 국내에 5년 이상 체류하고 있는 사람’ ‘50만달러 이상 투자자로 국민 5인 이상 고용한 사람(고액투자자)’ ‘대한민국 출생 재한화교’ ‘외국 국적 동포로서 국적 취득 요건을 갖춘 사람’ ‘난민 거주 자격으로 2년 이상 대한민국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 등이다.

이 요건을 갖춘 외국인은 다시 크게 3가지 요건을 입증해야 한다. 대한민국 법령 준수 등 품행 단정 요건(국내 벌금형 선고 이후 납부일부터 3년이 지났을 것 등), 생계유지 요건(전년도 소득이 1인당 국민총소득(GNI) 이상 등), 기본 소양 요건(영주용 또는 귀화용 종합평가에서 100점 만점 기준 60점 이상 득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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