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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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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조 경력 연차가 아니다

판사 임용 기준 ‘법조 경력’ 기간 단축을 포함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부결에 부쳐
법조일원화 취지 살리고 판사 수 확보하는 사법시스템 변화 동반해야
등록 2021-09-04 10:27 수정 2021-09-06 01:57
2021년 8월31일 국회에서 개의한 본회의에서 판사 임용 조건을 경력 10년에서 5년으로 조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법원조직법이 부결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8월31일 국회에서 개의한 본회의에서 판사 임용 조건을 경력 10년에서 5년으로 조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법원조직법이 부결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판사 임용 절차를 이원화해 지방법원 판사 임용을 위한 최소 법조 재직연수(이하 법조 경력)를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8월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 4표 차이로 부결됐다.

관료화·동질화 낳은 즉시임용제도

판사 임용을 위한 최소 법조 경력 축소 필요성을 먼저 주장한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판사 증원과 우수 인력 유치를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법조 경력 축소는 그 자체로 법조일원화의 심각한 후퇴이자 법원의 순혈주의·엘리트주의·관료화를 유지하는 개악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어느 주장이 옳을까. 개인적으로는 두 주장 모두 타당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 합의로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심사를 통과하고도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이례적인 결과가 생긴 이유도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좋은 재판’을 위해서는, 판사 증원과 우수 인력 유치가 절실한 것도 사실이고 법원의 순혈주의·엘리트주의·관료화를 해체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동일한 목표를 위해 필요한 두 입장이 왜 ‘지방법원 판사 임용을 위한 최소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됐을까.

기존의 판사 임용 절차는 사법연수생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합격한 사법연수생은 사법연수원 수료 뒤 즉시 판사로 임용돼 근무했다. 이것을 ‘즉시임용제도’라고 한다. 판사 즉시임용제도는 성적 중심으로 운용됐다. 이런 임용 방식은 공정성 시비가 붙을 여지가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단점으로는 지원자들의 다양성, 적성, 사회 경험, 사법 철학, 소명의식, 인품 등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성적 우수자로만 법관을 구성하다보니 다양성이 떨어지고 사회가 원하는 법관상과 실제 법관 임용 기준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즉시 임용된 판사들은 합의부 구성원 판사로 업무를 시작해서 몇 년간 재판장인 부장판사를 ‘모시며’ ‘도제식으로’ 교육받은 뒤 단독 재판을 맡고 부장판사가 돼 단독 재판 내지 합의부 재판장을 맡다가, 그중 일부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일부는 사직하고 일부는 남아서 일하다 정년퇴직하는 경로를 거쳤다. 연수원 수료 뒤 판사로 즉시 임용돼 동기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연차가 높아지는 각 단계마다 선발 보직을 놓고 경쟁하는 시스템 아래에서 판사들은 점점 동질화되고 관료화됐다.

판사 즉시임용제도로 인한 문제점, 즉 판사의 동질화·관료화 문제와 사회 경험이 전무한 판사가 재판을 맡는 것에 대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해법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오랜 경력의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른바 ‘법조일원화’ 제도다.

2015년 7월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임명장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가운데 3년 이상 다양한 법조 경력의 법관 37명이 처음 임용됐다. 연합뉴스

2015년 7월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임명장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가운데 3년 이상 다양한 법조 경력의 법관 37명이 처음 임용됐다. 연합뉴스

입법 10년, 무엇이 달라졌나

법조일원화는 1993년부터 2011년 입법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논의됐다. 특이한 점은, 정치 지형이 바뀌어도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논의가 지속됐다는 점(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본격적으로 논의됐고, 입법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에 한나라당 주도로 이뤄졌다)이다. 속내는 달랐을지언정 표면적으로는 거대 양당이 공통적으로, ①사회 경험 없는 판사가 재판함으로써 사법 신뢰 하락 ②법관 구성의 동질화와 사법 관료화의 병폐 ③전관예우 폐해를 우리 사법의 문제라고 진단해, 그 대책으로 법조일원화를 제안했다. 나아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주도로 설치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설치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산하 특별소위원회에서 공통적으로 법조일원화의 현실적 정착을 위해, ①1심 단독화와 사실심 강화 ②법관 전보인사 축소 ③법관 처우 개선과 정년 연장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법관 임용을 위한 독립기구 설치까지 제안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약 18년간 논의 주체가 누구이든 간에 이례적으로 이견 없이 도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수렴됐던 법조일원화. 법조일원화가 입법된 지 10년이 흘렀다. 10년간 법조일원화는 어떻게 정착됐을까.

법원은 2013년부터 법조일원화를 전면 실시하면서 법조 경력자 법관 임용 절차를 신설했다. 필기시험을 도입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편, 법조일원화 도입을 제안한 기구(2003년 사개특위, 2009년 국회 특별소위)들이 법조일원화 정착에 필요하다고 지적한 조건은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우선 1심 단독화 및 항소심 사후심화(1심 단독화란 1심은 원칙적으로 단독재판부에서 맡는다는 의미이고, 항소심 사후심화란 1심에서 원칙적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심리를 완료하고 항소심에서는 보충적인 법률 판단을 한다는 의미이다)가 실현되지 않았다. 민사재판에서 1심 합의부 물적 관할이 축소(소가 1억원→2억원)됐지만 여전히 지방법원의 합의부 개수는 380여 개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법관의 전보인사 축소 내지 권역법관제도 또한 실현되지 않았다. 이른바 ‘황제 노역’ 사건으로 불거진 지역법관제에 대한 선입견(지역 유착, 실력 저하)이 여전히 강해 전보인사 축소를 반대하는 여론이 세다. 법관 처우 개선 논의는 전관예우 방지 차원에서 원로법관제가 실시된 것 외에 다른 법조일원화 정착 조건은 찾아보기 힘들다. 법관 임용을 위한 독립기구 설치는 국회에서 논의한 바도 없다.

10년 법조 경력자, 신임 판사 하려고 할까?

법원의 재판 방식이나 합의부 구성 및 운영 방식이 유의미하게 변화하지도 않았다. 사회는 여전히 모든 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기를 선호하고, 판사가 재판에 깊이 관여하길 바라고, 합의부에서 재판받고 싶어 하고, 판결문은 상세하고 완성도 있게 작성되길 원하고, 동시에 재판은 신속하길 요청한다. 이러한 요구 중 정량적 판단이 가능하면서 비교적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양과 속도다. 재판의 양과 속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판사가 많아야 하지만, 판사를 증원하지 않은 상태에선 현재처럼 변론(공판)에 시간을 최소한으로 투입하고 심리 외 업무 시간을 기록 검토에 할애해 정확성을 높이는 서면 중심의 재판을 할 수밖에 없다. 합의부도 지금처럼 연차가 높은 판사와 적은 판사들을 함께 배치한 후 재판 과정을 분업해 운영하며 구성원 판사(배석판사)의 과로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즉, 사법연수원 수료 내지 로스쿨 졸업 및 변호사시험 합격 후 법조인으로 10년 이상 일해서 자리잡은 법조인이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본업을 하면서 시험공부를 병행해야 하고, 판사로 임용된 이후에는 일정 기간 합의부 구성원 판사가 돼 과로하면서 재판장을 ‘모시고’ ‘도제식’으로 재판 업무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법조 경력 10년 이상이면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일 텐데, 법관의 전보인사가 축소되지 않았으므로 지방을 옮겨다니며 근무해야 한다. 그렇다고 10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에 비해 법관의 처우가 좋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현재의 시험 중심 임용 절차와 강도 높은 업무환경 아래에서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에게 판사는 매력적인 이직처가 아니다. 법조일원화를 예정대로 도입하면 판사 증원은커녕 현상유지할 정도의 신규 판사 임용도 어렵다는 법원의 우려는 이런 측면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법원의 주장을 따르면 단순히 법관 지원자의 자격을 넓히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몰각하게 된다. 법조일원화의 취지는 사법 신뢰 제고와 법관의 동질화 및 관료화 방지를 위해 ‘최소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라는 것이지, 10년의 법조 경력자로 신규 법관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법원은 10년의 법조 경력자로 신규 법관을 채우기도 어려우니 법조 경력 5년 이상 10년 미만의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임용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조일원화의 취지와 반대되는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법원이 법조일원화를 후퇴시키고 법관의 동질화 및 관료화를 유지하는 개악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타당하다.

법조일원화, 발등에 불 떨어졌다

다만 ‘법조일원화 시행에서 적절한 최소 법조 경력이 몇 년인지’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사법시스템과 법조일원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은 신속성과 효율성을 극도로 추구하는 기형적인 재판 형태와 판사들의 강도 높은 노동에 기대어 돌아간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충분히 많은 장기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번 법원조직법 개정안의 부결로 법원은 좋든 싫든 2022년부터 최소 7년 이상 법조 경력자를 대상으로 법관 임용 절차를 실시하게 됐다(판사 최소 법조 경력은 2022년 7년, 2026년 10년으로 순차 확대).

법원만 발등에 불 떨어졌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판사 수가 적어지면 가장 큰 피해는 당사자들이 입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간 법조일원화 도입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살리면서 판사 수도 확보하기 위해 판사 임용 절차와 사법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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