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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마을의 생활권 vs. 집회·시위의 자유 [뉴스큐레이터]

등록 2022-06-05 15:05 수정 2022-06-08 01:12
한겨레 김영동 기자

한겨레 김영동 기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졌다. 논과 밭 너머로 난 길에는 시위차량이 가득했다. ‘자유진리정의혁명당’이라는 펼침막을 건 차에는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사진) ‘역적’ ‘총살’ 등 문구가 적힌 팻말도 보였다. 외부에서 온 이들은 태극기와 펼침막을 들고 마을 어귀를 거닐었다.

‘농성 소음으로 인하여 농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성장이 되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사람들을 향해 이런 펼침막을 내걸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의 2022년 5월31일 풍경이다.

문 전 대통령의 가족뿐만 아니라 평산마을 주민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답게 살 ‘생활권’을 침해받고 있다. 헌법 제34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평산마을 주민 가운데 70~90대 노인 10여 명은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무작정 제한하기는 쉽지 않다. 이곳을 찾는 보수단체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허용 범위 안에서 집회를 진행해서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21조 1항) 이런 이유로 경찰은 처벌에 나서지는 못하고, 시위대한테 밤에는 확성기 사용을 제한하고 욕설을 자제해달라고 경고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 쪽은 5월30일 보도자료를 내어 “집회·시위의 외피를 쓰고 매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반이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림으로써,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정면으로 다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이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이런 반이성적 행위를 원천적으로 규제할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실천적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도 밝혔다. 이어서 욕설 시위를 이어온 보수단체 회원을 모욕 및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5월31일 경찰에 고소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의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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