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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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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건드리지 마시고 헌화를 부탁드린다”

[이태원 참사 100일, 분향소는 어디로]
광화문광장 분향소 설치 거절하고 녹사평역 인근 지하 4층으로 가라는 서울시
등록 2023-02-11 05:23 수정 2023-02-12 04:40
2023년 2월6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서울시청 들머리에서 분향소를 철거를 예고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구하다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한 유가족이 탈진해 쓰러져 있다. 류우종 기자

2023년 2월6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서울시청 들머리에서 분향소를 철거를 예고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면담을 요구하다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한 유가족이 탈진해 쓰러져 있다. 류우종 기자

“비키세요!” 2023년 2월6일 정오, 서울시청 청사 입구를 막아선 경찰 앞에 주저앉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희생자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를 포함한 유가족 10여 명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참이었다. 30 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와 김덕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이 현장에 도착했다.

“용서 못해. 나와서 사과하라고 해!”(조미은씨)

이들이 시청 청사 앞 입구까지 오게 된 것은 작은 ‘난로'가 발단이었다. 이날 오전 한 유가족이 시청 앞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천막으로 난로를 가져오려다 경찰에 제지당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과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유가족 두 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를 본 다른 유가족들이 항의하기 위해 시청 앞으로 갔지만, 경찰과 서울시 직원들이 청사 입구를 막아섰다.

“지하에서 죽으라는 거냐”

조씨 등 일부 유가족이 주저앉아 사과를 요구하는 사이, 이정민 부대표와 김덕진 팀장이 조영창 서울시 총무과장을 만났다. 이 부대표는 “경찰이 교대하는 과정에서 (난로가) 반입될 수 있는 것을 모르고 그런 식으로 처리했고, (서울시에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며 분향소로 돌아가자고 다른 유가족들을 설득했다. 끝내 자리를 뜨지 못하는 조씨를 남편인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와서 부축해갔다.

이틀 전인 2월4일, 유가족들은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앞 구석에 천막을 치고 합동분향소를 차렸다. 이들은 애당초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맞아 광화문광장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이 막아서자 서울도서관 앞 구석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시는 당시 입장문을 내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한 것에 유감을 표시한다”며 “불특정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하는 광장에 고정 시설물을 허가 없이 설치하는 것은 관련 규정상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2월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는 1차 계고장을 보냈다.

2월6일 오후 1시. 합동분향소 앞에서 서울시의 행정대집행 예고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시가 1차 계고장에 제시한 자진 철거 기한이 막 지난 참이었다. 유가족 30여 명을 포함해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국회의원, 종교인들이 모였다. 혹시 충돌 상황이 벌어질까 취재진도 100여 명 몰렸다. 이종철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서울시 정무부시장(오신환)이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녹사평역 인근 지하 4층에 분향소 자리를 제공했는데 왜 유가족들이 오지 않느냐며 같이 가서 검토해보자는 전화였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이 (지하) 굴속에 들어가 죽으라는 거냐고 하면서 못 간다고 했는데,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일하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희생자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는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국가는 없었고 경찰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들이 죽어 영정 속에 있는데 국가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에 대기하는 경찰을 향해 “국화꽃 한 송이 드리겠다. 제발 불쌍한 아이들 건드리지 마시고 헌화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가 예고된 2월6일 오후 자신들이 둘렀던 붉은 목도리를 하나로 이어든 채 분향소 앞을 지키고 있다. 류우종 기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가 예고된 2월6일 오후 자신들이 둘렀던 붉은 목도리를 하나로 이어든 채 분향소 앞을 지키고 있다. 류우종 기자 

2차 계고장으로 화답한 서울시

유가족들의 호소는 서울시에 가닿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오후 5시30분. 서울시 직원이 한산해진 분향소로 2차 계고장을 들고 왔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덕진 팀장은 “수령 거부를 명확하게 얘기했는데도 서울시 쪽에서 전달해야 한다며 바닥에 놓고 갔다”며 “저희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2차 계고장엔 2월8일 오후 1시까지 자진 철거를 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으로 강제 철거를 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분향소를 지키겠다며 나선 자원봉사자들이 밤새 분향소 곁에 머물렀다. 2월7일 오전 9시30분, ‘분향소 지킴이' 교대를 위해 김혜영씨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녹사평역(시민분향소)에는 종종 갔는데 지킴이를 하기 위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다리를 다쳐 깁스했는데 풀자마자 나왔어요.” 김씨는 티브이엔(tvN) 드라마 <혼술남녀> 촬영 현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다. 그는 “한빛이도 (숨졌을 때) 스물일곱이었다”며 “정말 너무나 젊고 한창 예쁜 아이들을 보며 한빛이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그날 오전 11시23분,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서울시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2차 계고장에 적힌 자진 철거 기한을 2월15일까지 일주일 미루고, 2월12일 오후 1시까지 유가족들이 원하는 새로운 공간을 제시해달라고 했다. 아울러 2022년 12월부터 유가족들과 소통해왔는데 100일 추모제를 기점으로 갑자기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유가족협의회는 “후안무치 서울시와 더 이상의 직접 소통을 중단한다”며 “초라하고 서럽더라도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세운 시청 분향소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대치하던 유가족들의 시선이 2월8일 오후에는 국회로 향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됐다. 이종철 대표 등 유가족 10여 명은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본회의 표결 상황을 숨죽여 지켜봤다. 오후 3시34분,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재석의원 293명 중 찬성 179표, 반대 109표, 무효 5표였다. 이 대표는 가결 직후 “정부가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이제라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향후 (탄핵 심판을 맡을) 헌법재판소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지도 유가족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위기에 놓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월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날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의결서를 접수하고 심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탄핵 위기에 놓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월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날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의결서를 접수하고 심리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서울시청 앞 분향소 자진 철거 기한은 2월15일

탄핵소추안 가결의 기쁨도 잠시, 서울시와 유가족들 사이의 긴장감은 그대로다. 이 대표는 2월8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상황이 변한 것은 없다”며 “저희는 더 이상 서울시와 소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예고한 분향소 자진 철거 기한은 2월15일이다.

다만 서울시가 2월15일 행정대집행으로 분향소 철거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2019년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이 광화문광장에 무단으로 천막을 설치했을 때 서울시는 47일 만에 철거에 나섰다. 당시 서울시는 세 차례 계고장을 보냈는데, 마지막 계고장에 적시된 자진 철거 기한에서 12일 뒤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조영창 서울시 총무과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행정대집행법을 보면 요건을 갖춘 뒤엔 아무 때나 가능한 것이지, (계고장에 적시된) 시간에 맞춰서 할 필요는 없다”며 “자진 철거가 되지 않으면 시간을 정해서 어느 때라도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고경주·홍지희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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