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매일 먹는 ‘쌀’로 기사를 쓴다면, 몇 가지?

표지이야기 공모제를 ‘공모’한 전 편집장의 가이드…
손님이 먹고 싶은, 독자가 읽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등록 2023-06-13 07:45 수정 2023-06-23 06:26
제1345호, 제1433호, 제1401호, 제1393호.

제1345호, 제1433호, 제1401호, 제1393호.

차(茶), 한우, 디저트… 초밥뿐만 아니라 요즘 각종 ‘오마카세’가 인기라고 합니다. 오마카세 식당에선 주방장이 그날그날 적당한 재료로 맞춤 요리를 제공합니다. 항상 같은 차림판을 내놓고 손님이 음식을 선택하도록 하는 일반 식당과 다르죠.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는 ‘오마카세’와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식당(한겨레21)의 대표 메뉴(표지이야기)는 매주 주방장(편집장)이 결정합니다. 신선한 재료(따끈따끈한 글감), 창의적인 조리법(기획력), 능수능란한 칼질(취재력), 맛깔나게 보이도록 그릇에 담는 플레이팅(매력적인 글쓰기) 등을 바탕으로 ‘그 주의 대표 메뉴’(표지이야기)가 정해집니다. 주방장(편집장)은 어떤 메뉴를 고를지 판단할 뿐, 이 메뉴를 맛있게 만들어내는 건 요리사(기자)들의 몫입니다.

매일 먹는 쌀로도 다채로운 요리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전날 잡지 제작을 끝낸 <한겨레21> 기자들이 하나둘 화상회의에 얼굴을 내밉니다. 다음주 제작할 잡지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길게는 몇 달 동안 기자들이 공들여 기획하고 취재한 내용이 메뉴판에 올라옵니다. 편집장은 바로 지금 독자가 관심 있을 만한, 신선한 기삿감이 무엇인지 판단합니다. 그로부터 열흘쯤 뒤에야 독자가 받아볼 잡지가 이미 지나간 이야기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요. 보통은 한두 주 전에 어떤 기획을 표지이야기로 쓸지 정해두지만, 기사 마감 하루이틀을 앞두고 갑자기 뒤엎는 일도 가끔 생깁니다. 편집장일 때 총 74권의 잡지를 만들었는데 그중 두어 차례 그랬습니다. ‘고발장-검찰 니가 왜 거기서 나와’(제1380호)와 ‘미안해요 베트남’(제1450호) 표지이야기를 썼던 기자들은 2~3일 취재해 200자 원고지 30~40장짜리 기사를 뚝딱 만들어냈습니다. 시의적절한 기사가 되려면 반드시 ‘그 주’에 써야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면(제1437호) 미리 준비했던 표지이야기를 미루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뉴스룸에 한정된 표지이야기 선택 기준입니다.

‘표지이야기 공모제’에 응모하려는 여러분은 ‘시의성’보다는 ‘차별성’에 초점을 맞춰주세요. 힌트는 그동안 제작된 <한겨레21> 표지이야기에 숨어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매일 먹는 ‘쌀’로도 다채로운 요리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뻔해 보이는 주제, 이미 지나간 이야기처럼 보이는 재료도 제법 훌륭한 기획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 유행이 1년 가까이 이어지던 2021년 1월 펴낸 제1345호 ‘코로나 사투 48시간’은 취재하는 공간과 기사 형식을 달리해 새로워 보이는 기획 기사를 뽑아낸 예입니다. 코로나19 관련 기사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졌지만, 코로나19 중환자가 가장 많이 입원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음압병동과 장례식장, 상황실 등을 48시간 동안 꼼꼼하게 기록하고 전달하는 기사는 처음이었습니다. 때론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쌀값 폭락과 기후위기를 함께 다룬 표지이야기 ‘갈아엎은 논에도 봄은 오는가’(제1433호)는 전북 김제에서 만난 농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그 답을 찾았기에, 그동안 다른 언론에서 다룬 ‘쌀값’ 기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했습니다. 경남 거창의 ‘1학년이 없어진’ 초등학교 이야기(제1387호), 청년이 떠난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운 전남 영암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도시’ 이야기(제1389호) 등은 기자들이 일주일에서 열흘씩 현장에 머물렀던 기록입니다.

지금 가장 절박한 현장은

2022년 제1회 표지이야기 공모에 가장 많이 등장한 주제는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의 삶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표지이야기가 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2023년 현재 청년이 처한 모순된 현실을 보여주는, 가장 절박한 ‘현장’은 어디일까요? 남들과는 ‘다른’ 취재 현장에 접근하기 어렵다면, 시각을 달리해보세요. 제1회 공모제 당선자인 정혜빈씨의 기획안에서는 ‘다른 시선’이 엿보였습니다. 그동안 신체장애가 있는 대학생의 학습권과 이동권에 대한 기사는 많았지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불안장애 등 정신장애가 있는 대학생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거든요.

현장도 시각도 달리하기 어렵다면, 취재 형식을 바꿔보세요. 부부 사이에 가사분담을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독자 부부 9쌍이 직접 참여해 48시간 가사노동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제1401호 ‘돌봄의 무게’), 기초생활수급자 25가구가 두 달간 기록한 가계부를 입수해 심층 분석하는 것만으로도(제1420호 ‘치솟는 물가, 깊어진 빈곤’)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지이야기가 탄생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 ‘자료’라면 더 좋습니다. 모아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어떤 단면이 보이거든요. 2016~2021년 여성 살해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제1393호), 아동학대 신고가 됐는데도 숨진 20명을 처음으로 전수조사한 ‘살릴 수 있었던 아이’(제1386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에 대한 리포트 ‘투명인간의 죽음’(제1384호)과 같은 표지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여성 살해, 아동학대, 무연고 사망 등 모두가 문제임을 아는 주제일수록, 많은 데이터를 통해 일정한 유형을 읽어내고 동시에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봐야 하기 때문이죠.

모아보면 다르다

자, 이제 어떤 표지이야기를 써야 할지 대략 감이 잡히셨나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손님이 찾지 않는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주방장 맞춤 차림인 ‘오마카세’ 식당이라 할지라도 손님이 먹고 싶을, 좋아할 만한 요리를 내놔야 합니다. 표지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을, 궁금해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시죠.

황예랑 전 <한겨레21> 편집장 yrcomm@hani.co.kr

제2회 표지이야기 공모제

공모 부문
다음의 예시를 참고하되, 형식은 자유. 디지털 스토리텔링도 가능.
1. 현장 부문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일을 적은 르포 형식의 기사
2. 시대 진단·고발 부문 시대의 모순과 문제를 의제(어젠다) 형식으로 드러내거나 고발하는 기사
3. 기획 부문 새로운 발상으로 문제에 접근한 기사
■ 제출사항 ① 지원자 이름, 연락처
② 기획 의도 A4용지 1쪽 분량 (200자 원고지 5~10장 내외) (한글문서 또는 워드문서로 첨부)
③ 원고 A4용지 4쪽 분량 (200자 원고지 30장 내외) (한글문서 또는 워드문서로 첨부)
④ 기획을 수행할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 3편 (링크나 첨부파일 형태)
■ 보낼 곳 reportage21@hani.co.kr
■ 접수 기간 2023년 6월19일(월)~6월30일(금) 오후 5시
■ 선정작 발표 7월 말
■ 상금 총 3개 지원작에 각각 100만원 지급, 이에 더해 <한겨레21> 표지이야기로 실린 뒤 규정에 준하는 원고료 지급
*선정 이후 기획안이나 취재 내용의 도작·표절이 밝혀지면 수상이 취소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