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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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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스포츠권’을 위하여

등록 2023-12-30 05:21 수정 2024-01-03 13:50


“너 그러다가 ‘근돼’(근육돼지) 된다. 살을 빼고 싶으면 유산소운동만 해.” 십수 년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트레드밀 위에서 걷거나 뛰기도 했지만, 돌아가며 여러 기구를 사용하는 근력운동이 덜 지루해서 좋았습니다. 친구들은 등·하체처럼 큰 근육 운동을 하는 저를 놀리곤 했습니다. 그때는 ‘여성이 근육운동을 하면 몸이 울퉁불퉁해져서 보기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근육이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요즘 저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젊은 여성뿐 아니라 중장년 여성들이 여러 기구를 익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회사 동료도 “휴무일 오전에 피트니스센터에 가면 할머니들이 개인운동지도(PT)를 받는 모습을 본다”고 했습니다. 특히 노년기 건강과 근육량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니,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운동하는 여성이 많아지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꼭 건강과 미용 목적만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취미로 팀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점도 그렇습니다.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취재하면서 우리가 ‘운동할 자격’을 따져 묻는 사회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뒀을 때 운동은 사치였습니다. 그 시간에 글자 하나라도 더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취재 영역으로 한정하자면, 저 역시 배구 같은 종목은 엘리트 선수들의 운동으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중장년 여성이 충분히 즐길 만한 스포츠라고 인식한 적도 없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댄스스포츠를 하는 시각장애인도, 낯선 타지에서 축구를 즐기는 아프리카 이주민·난민의 이야기도 낯설었습니다. 새삼 걷기를 제외한 격렬한 운동에 대해 제 안의 고정관념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 ‘스포츠권’은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의 권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큽니다. 학생 선수들이 운동하느라 수업에 빠지거나,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동료와 감독에게 폭력을 당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킬 때에야 나오는 단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렇게 협소한 의미의 스포츠권은 성별·연령·장애·국적·성적지향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바라보는 스포츠권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둘 다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겠으나, 국제사회에는 스포츠를 인권으로 보는 분위기가 수십 년 전부터 형성됐습니다.

다른 선진국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스포츠 인권헌장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이 기본권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 살피겠습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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