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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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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부인 전성시대

진 펑리위안의 등장, ‘중국 굴기’라는 시대적 소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네
등록 2014-04-09 06:23 수정 2020-05-02 19:27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왼쪽에서 둘째)으로부터 ‘한-중 관계의 발전’을 뜻하는 시구가 담긴 서예작품과 법랑을 선물 받은 뒤 설명을 듣고 있다.  베이징/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왼쪽에서 둘째)으로부터 ‘한-중 관계의 발전’을 뜻하는 시구가 담긴 서예작품과 법랑을 선물 받은 뒤 설명을 듣고 있다. 베이징/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 소식을 들으면 아마 무덤에서 ‘잠자던’ 장칭(마오쩌둥의 셋째부인) 여사가 관 뚜껑을 박차고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1980년 12월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주범’으로 재판을 받던 장칭은 당시 법정에서 “나는 마오 주석의 개였다. 그가 누굴 물라고 하면 무는…”이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고, 1991년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중국 최초의 ‘일등부인’이었다. 장칭은 류샤오치 주석의 부인이자 장칭을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왕광메이를 극도로 질투해 문화대혁명 당시 그녀를 공개비판 무대에 세워서 아주 잔인하게 복수를 했다. 명문가의 후손이자 영어에도 능통했던 왕광메이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일등부인이었고 외교 무대에서도 중국의 위상을 한껏 빛냈던지라 당시 중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장칭은 그런 왕광메이를 질투해 문화대혁명 때 ‘미국 스파이’라는 죄명을 씌워 그녀를 감옥에서 12년간 ‘썩게’ 만들었다. 장칭은 살아생전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왕광메이처럼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일등부인 역할을 하지 못한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은 일등부인이 아니라 마오 주석의 ‘한 마리 개’였다는 울분에 서린 실토를 하고 말이다.

바야흐로 중국은 지금 ‘일등부인’ 전성시대다. 퍼스트레이디, 즉 우리말 ‘영부인’에 해당하는 중국어 ‘디이푸런’(第一夫人)을 좀 재밌게 번역하자면 ‘일등부인’이 된다. 지금 중국에서 일등부인은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이다. 평범한 집안과 인민해방군 소속 가수 출신인 그녀가 중국의 ‘국모’가 된 과정도 드라마틱하지만, 더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중국에서 ‘일등부인 신드롬’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 며칠 전 시 주석과 함께 펑리위안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일등부인 신드롬’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마치 유명 연예인을 취재하듯 중국 내 언론들은 펑리위안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고 텔레비전 뉴스를 틀면 시 주석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우아한 미모와 패션으로 치장한 펑리위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펑리위안이 착용한 옷과 가방, 신발 등은 곧바로 ‘일등부인 스타일’로 둔갑해 하루아침에 유명 브랜드가 되어 전 중국인들의 ‘인민 스타일’로 등극한다. 유럽 순방길에서 그녀가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던 중국산 휴대전화는 언론에 보도된 직후 바로 ‘일등부인 휴대전화’로 회자되면서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되었다. 주로 국산품으로 치장하고 외국 순방길에 나서는 그녀의 ‘전략적’ 스타일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간접 홍보뿐만 아니라 중국 내 국산품 애용이라는 이중삼중의 경제효과까지 창출하고 있다.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무시할 수 없는 일등부인 효과가 중국 내외에서 특수를 누리면서 중국 내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등부인 신드롬’ 현상을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 는 ‘펑리위안의 화려한 등장은 전세계에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고 있다’는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자화자찬식 분석글도 마다하지 않는다.

역대 어느 일등부인보다 우월한 미모와 쭉쭉 뻗은 몸매, 인민가수라는 친근한 대중성까지 지닌 펑리위안의 등장은 확실히 중국인들에게 뿌듯한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이전의 일등부인들은 대국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는 외적 기준으로 조금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애써 일등부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내조하는 ‘현모양처’ 스타일로 휘장 뒤에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세계 어느 일등부인들과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펑리위안의 등장은 ‘중국 굴기’라는 시대적 소명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펑리위안 신드롬이 불고 있는 지금, 중국 인터넷에는 이런 재밌는 사진들도 올라오고 있다. 꼬부랑 할머니 같은 모습을 한 장쩌민 전 주석의 부인, 150cm가 채 될까 말까 하는 왜소한 체격과 평범한 외모를 가진 후진타오 전 주석의 부인, 그리고 그 옆에 훤칠하게 빛나는 외모와 큰 키를 가진 펑리위안 등 일등부인 3명의 사진을 나란히 세워놓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중국 굴기”라고 풍자하고 있다.

어쨌거나, 장칭 여사가 이 소식을 들으면 무덤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질투로 통곡할지도 모르겠다.

박현숙 베이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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