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릭은 대한민국의 래퍼다. 하지만 <쇼미더머니>보단 인권행사에 더 자주 등장했다. 아무도 해치지 않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여긴 아직도 기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 아직도 게이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 아직도 아무도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모른다면서, 그게 힙합이라고 하면 나는 오늘부터 힙합 관둠.”(SLEEQ’s MIC SWAGGER)
2016년만 해도 한국 힙합에서 ‘여혐’은 주류 단어였다. 여성 래퍼의 사진을 보고 자위해본 적 있다는 내용을 가사로 써서 인기를 얻고, ‘따먹는다’ ‘다리 좀 벌려보라’는 성적 표현이 넘쳐났다. 그 속에서 슬릭은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
시간이 흘러, 2020년이 되었다. 문제의 가사를 적은 뮤지션들은 사과하거나 모욕죄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리고 슬릭도 소녀시대 멤버와 같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다.
엠넷(Mnet)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1화가 방영되는 날, 슬릭의 팬들은 조마조마했다. 탈코르셋을 하고,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 말하고, 비건인 사람이 쟁쟁한 연예인들과의 단체 생활(?)에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시청자 마음에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나를 지키면서도 내 갈 길 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방송이 끝나고, 슬릭은 <걸어가>라는 곡을 냈다. “더 나은 길로 걸어가/ 더 나의 길로 걸어가”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 그 부분의 가사는 ‘더 곧은 길로/ 더 좋은 길로/ 더 옳은 길로/ 더 뻗은 길로’ 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성향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서, 이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로 느껴질까봐 고민 끝에 수정했다고.
어찌 됐든 신념은 자신만의 것이고 이에 동의한다면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공존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슬릭. 그 생각마저 고마울 따름이다. 최근에는 소속사도 옮겼다. 가을방학, 김사월, 오지은 등 훌륭한 뮤지션이 대거 포함된 ‘유어썸머’에서 더 나은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길 응원한다.
정성은 콘텐츠 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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