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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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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호기심, 내 글쓰기의 힘

‘워킹푸어’ ‘암환자’ 경험한 저널리스트의 <지지 않기 위해 쓴다>
등록 2021-06-12 11:35 수정 2021-06-15 01:44

질투는 글쓰기의 힘이다. 좋은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부럽다. 부럽다 못해 가끔은 질투가 난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진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기자들이 질투하는 탐사 전문 작가다.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등으로 3년간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워킹푸어의 삶에 밀착한 <노동의 배신>(2001년 출간·2012년 국내 출간)은 손꼽히는 체험형 글쓰기다. 그는 열 달간의 구직 체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중산층의 희망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희망의 배신>), 유방암을 앓으면서 느낀 극도의 긍정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긍정의 배신>)를 계속해 고발한다.

그가 글 쓰도록 만드는 힘은 두 가지다. “나는 두 가지에 이끌려 글을 쓴다. 하나는 불의에 대한 분노, 다른 하나는 호기심이다.” 1998년 최저임금인 시급 5.15달러를 받고 일하면서 “변기에 앉으면 샤워대에 무릎이 닿는” 트레일러에 살던 이야기도 그렇게 쓰게 됐다. 한부모가정 여성들에게 복지수당 지급을 중단하면 정말 이들을 일자리로 끌어내 빈곤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또는 과학적 탐구심, 그리고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복지수당을 끊어버린 정부의 결정에 대한 분노. 에런라이크는 “매우 높은 보수를 받으며” 우아하게 책상에 앉아 게으른 빈곤층을 나무라는 칼럼을 쓰는 대신, 직접 “그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펄떡펄떡 살아 숨쉰다. 노동, 빈곤, 계층, 페미니즘 등의 문제를 “먼 산 보듯 무심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지지 않기 위해 쓴다>(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에는 에런라이크가 뛰어들었던 세계의 뒷이야기가 가득하다. 에런라이크가 1984년부터 2018년까지 <뉴욕타임스> <가디언> <타임> 등에 기고한 칼럼 등 37편의 글을 묶었다. 분명 날카로운 사회비평인데, 유쾌하다. 재치 있는 글쓰기 덕분이다. 이를테면 유방암 진단 뒤 직접 현미경으로 암세포를 보고 나서 써내려간 이런 문장들(에런라이크는 세포생물학 박사 출신이다). ‘그것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일렬종대로 서서 행군하는 일단의 세포들이었다. 나는 이 세포들을 ‘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세포들이 콩가 춤을 추듯 일렬로 행진하면서 보여주는 에너지에 탄복하고 말았다. 후미진 유방 한구석에서 나와 림프샘과 골수, 폐, 뇌를 잠식하겠다는 그들의 결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에런라이크는 여든 살이다. 처음 위장취업했을 때, 이미 57살이었다.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빈곤에 관한 뉴스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시되는” 저널리즘 세계를 바꾸기 위해 그는 또 다른 행동에 나섰다. 빈곤, 피부색, 성별 때문에 글을 발표할 수 없는 저널리스트들을 돕는 프로젝트다. 부럽다고 질투만 하고 있기엔, 부끄러워진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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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토마 피케티 지음, 이민주 옮김, 은행나무 펴냄, 2만원
불평등 연구로 일약 ‘스타’가 된 토마 피케티가 2016년부터 6년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기고한 칼럼을 엮은 책이다. 단지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말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기본소득, 공공부채, 여성과 인종 차별 문제 등을 살핀다.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김영옥 지음, 교양인 펴냄, 1만7천원
60대 중반에 들어선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인 지은이가 돌봄, 사랑과 이별, 갱년기, 치매, 몸 등 나이 들면서 품는 질문에 답한다. 시, 소설, 영화, 공연 등에 비친 노년과 여성성을 세심하게 읽어낸 글들을 읽다보면 따듯한 위로를 받는 듯하다.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준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6천원
<코스모스> 책과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든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과학저술가 앤 드루얀의 딸이 써내려간 에세이다. 태어남과 성장, 결혼, 죽음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상에서 경이로운 우주를 발견해내는 법을 본인의 ‘반짝이는 추억’과 함께 풀어낸다. 이를테면 <코스모스>의 가족 버전.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

박제원 지음, EBS 북스 펴냄, 1만6천원
고등학교 사회 교사인 지은이가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힌 ‘미래교육’의 허상을 파헤친다. 교육 당국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 등 이른바 ‘역량 교육’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학력 격차는 더 벌어졌고, 진정한 배움은 학습과학 원리를 따를 때 가능하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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