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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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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온몸으로 냄새를 맡는다

후각을 둘러싼 세상의 모든 이야기 <코끝의 언어>
등록 2022-05-06 17:49 수정 2022-05-07 00:37

사람의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은 뭘까? 감각의 범위(거리)와 정보 수용량은 시각이 압도적이지만, 서로 다른 종류의 자극을 구별하는 능력은 단연 후각이다.

2014년 미국 록펠러대학의 안드레아스 켈러 교수는 인간의 코가 1조 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 26명을 대상으로 128개 화학물질을 최대 30개까지 다양하게 혼합한 시료를 구별하는 능력을 평가한 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가 1조 개 넘는다는 추산 결과를 얻었다. 시각 신경이 3색 광원의 조합으로 최대 1천만 개의 색깔을 구별하고, 청각이 약 500만 개의 소리를 식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도시화, 냉장 기술 발달, 위생 개선 같은 인위적 환경은 인간의 후각 능력을 퇴화시키는 주범이다.

<코끝의 언어>(김은영 옮김, 윌북 펴냄)는 미국 작가 주드 스튜어트가 우연한 계기로 경이로운 냄새와 향의 세계에 빠져든 뒤 후각을 둘러싼 과학과 문학, 살면서 경험한 푸근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신경과학자·화학자·역사가·심리학자는 물론, 원예사·조향사·주조가까지 수많은 이를 인터뷰하고, 고대 지중해 세계부터 과학이 만들어낸 인공합성향까지 동서고금의 냄새를 넘나든다.

서두에선 코가 냄새 분자를 포착하는 순간부터 후각 수용기가 그 정보를 전기신호로 바꿔 대뇌피질에 전달하고 뇌가 해석하는 과정을 간략히 설명한다. 통념과 달리 사람도 온몸으로 냄새를 맡는다. 약 600만 개의 후각 수용기는 코안의 점막뿐 아니라 피부와 골격근육, 주요 장기에도 분포한다. 백단향 향기를 쐬면 피부 상처의 재생이 빨라진다. 신장은 장내 박테리아의 냄새 신호를 감지해 과식했을 때 혈압을 조절한다. 환자의 몸은 질병 종류에 따라 갓 구운 빵, 김빠진 맥주, 너무 익어 발효된 사과 같은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갑자기 헛냄새를 맡는다면 편두통이나 뇌종양을 의심해야 한다. 자극적이거나 역한 냄새는 몸이 위협에 반응하는 신호다. 냄새만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있다.

냄새가 단지 감각 정보에 머무는 건 아니다. 사람이 맡고 기억하는 모든 냄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사회·문화적 상징도 다르다. 빗물에 피어오르는 흙내음은 “세상의 공기를 안도감으로 채운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뿜는 냄새는 눅눅한 텐트 냄새이거나 금속성 먼지 냄새 같다. 그윽한 장미 향은 “일순간의 황홀경,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관능과 활성”의 상징이었다. 중세 기독교 교회는 장미를 ‘관능을 자극하는 이단의 꽃’으로 지목했다. 반면 은은한 재스민 향은 상류층의 사치스러움이 아닌 친근함을 표현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갓난아기의 살내, 막 깎은 연필 냄새, 다양한 향수, 상큼한 솔숲 냄새 등 온갖 종류의 냄새로 가득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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