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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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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사랑이 어지러운 세상을 비출 테니

듣는 이를 사랑에 잠기게 하는 음악 숨비 《투 마이 러버》
등록 2023-08-11 10:12 수정 2023-08-15 14:09
숨비 《투 마이 러버》(To. My Lover) 앨범 재킷.

숨비 《투 마이 러버》(To. My Lover) 앨범 재킷.

주말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우리 부부는 일하는 시간이 다르다. 그래서 휴일에는 웬만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가끔은 바람 쐬러 나가고 싶지만, 요새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바쁘다. 그럴 땐 아내도 덩달아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자주 편두통에 시달린다. 두통약을 사러 가는 김에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잔병치레가 잦은 아이였다. 미륵사로 소풍 가던 날에는 급하게 먹은 김밥이 얹혔는지 아이들이 뛰노는 동안 돗자리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만둣집에 가곤 했다. 이십 대이던 어머니는 언제나 쫄면을 시켰다. 굵고 질긴 면발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랐다. 어머니가 새콤한 맛이 좋다며 웃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언젠가 어머니께 쫄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당신은 그런 적 없다며 손사래 쳤다. 세월이 가고 입맛도 바뀌셨다.

우리 가족은 대화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별별 생각을 하며 혼잣말하고 놀았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는 장난기가 많으셨다. 아버지와 창가에 서서 어머니가 돌아오기 기다렸다가 장난치곤 했다. 삼십 대이던 아버지는 나라가 어려워지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일했다. 자연스레 나는 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는 조용한 분이었다. 연속극에 푹 빠진 어머니와 긴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잠들지 않으려 애쓰던 어린 내가 생각난다.

열여섯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그전에도 집안 사정으로 떨어져 있곤 했다. 따지고 보면 세 식구가 한지붕 아래서 지낸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그러다보니 내 가정을 이루고 문득 부모님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 전화해 무얼 하고 계시냐고 물으면 말을 돌리신다. 기운이 없으시다고, 네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신다고, 술이 웬수라고….

숨비의 첫 미니앨범 《투 마이 러버》(To. My Lover)를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사랑은 시간을 비껴간다. 그때 그 시절 모습으로 영영 남아 나를 이룬다. 오래된 소반 위에 시집이 펼쳐져 있었다. 어머니가 읽다 덮어둔 것이었다. 당신은 아들의 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당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까.

두 분은 내가 나기 전 대학가에서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의 카페를 했다. 아버지는 직장생활과 맞지 않는 분이었다. 건설회사에 들어가 몇 년 일한 게 전부였다. 남 밑에서 일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머니가 무대에서 춤추던 모습이 기억난다. 중학생이던 나는 무대 앞에서 어머니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숨비는 담담하게 사랑을 노래한다. “너의 잘못이 아냐”(<사랑하는 너에게>) 말하는 그는 듣는 이를 사랑에 잠기게 한다.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어지러운 세상을 비출 것이다.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질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깊고 어두운 심연 아래로 가라앉았다. 떠나지 않았다, 생각이.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감하겠지. 하지만 “네가 내 곁에 있을 때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너의 전체>) 되뇌었다.

약을 사들고 만둣집에 갔다. 모둠만두와 쫄면을 주문했다. 아내가 쫄면에서 오이를 골라냈다. 곧 괜찮아지겠지. 아내가 씩씩하게 웃는다.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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