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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불안을 다스리는 세 가지 방식

등록 2024-03-08 12:17 수정 2024-03-14 13:01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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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감기로 뜻하지 않게 ‘의료 쇼핑’을 하게 됐다. 명절 연휴 첫날 오한이 들고 코가 꽉 막히는 것이 심상치 않은 감기에 걸린 듯한데 평소에 가던 병원은 문을 닫았다. 연휴에 진료하는 병원을 검색해 옆 동네 가정의학과에 방문했다. 의사가 증상을 물어보는데 목이 쉬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내 고통을 이해한다는 듯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한 장비들을 꺼내 들었다.

고작 감기로 세 의사를 만나다

의사는 내 목구멍에 불빛을 비추며 육안으로 살피고 확대경이 달린 길쭉한 기구로 콧속을 확인하고는 요즘 유행하는 후두염이라고 했다. 항생제까지는 필요 없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소염진통제, 콧물을 마르게 하는 약, 가래를 묽게 해주는 약, 기침을 막아주는 약, 그리고 이 약들이 위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는 약을 며칠 먹어보고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약의 기능을 일일이 설명해준 의사의 친절함에 감탄하며 받아온 약을 열심히 먹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갖가지 증상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평소에 가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곳은 감기를 ‘보여준다’. 의사 혼자 내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귀나 코, 목이 지금 어떤지를 사진 찍어 보여주면서 설명해준다. 이번에도 여러 영상을 모니터에 띄우고 몇몇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심한 후두염으로 보인다고 했다. 후두내시경 비용을 추가로 내고 이전과 비슷한 약물들로 구성된 처방전, 후두염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생활 습관이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내가 직접 본 후두염이 빨리 깨끗이 낫길 바라면서.

그런데 열흘 가까이 약을 먹고도 미열이 계속되고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증상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감기가 이렇게나 오래 낫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불안해졌다. 혹시 염증이 다른 부위로 번진 것은 아닐까. 앞서 의사들이 발견하지 못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는 각종 검진 장비를 갖춘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의사는 감기가 2주째 이어져 걱정이라는 나의 병력을 잠깐 듣고는 목과 콧속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열이 오래가는 원인을 찾아보자며 여러 검사를 권했다. 항바이러스제를 먹기에는 이미 늦었다면서도 독감과 코로나19 여부를 검사해보자고 했고, 기관지나 폐에 이상이 없는지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염증 수치가 궁금하다면 피검사를 하면 된다고 했다. 진단키트의 결과는 음성이었고, 엑스레이와 피검사에서도 눈에 띄는 문제는 없었다. 마지막 병원에서도 후두염 진단을 받았고 이번에는 다른 약들과 함께 항생제 일주일치가 추가됐다. 그 후로도 며칠 열이 나고 목이 아팠지만 약이 약이었는지 시간이 약이었는지 증세는 점차 나아졌다.

오래가는 염증에 불안을 참지 못하고

세 군데 병원을 순회하고 나서야 처음 만난 의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떠올랐다. 요즘 유행하는 후두염은 워낙 오래간다며, 자신도 걸려서 한참 고생했다는 것이다. 세 번 내리 후두염 진단을 받았으니 이번 감기는 꽤 오래 앓을 수밖에 없는 후두부의 염증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각 의사가 같은 병을 앓는 나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의사는 환자에게 병의 경과와 약물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다른 의사는 병의 상태를 보여주며 진단에 대한 확신을 주는가 하면, 또 다른 의사는 병의 원인을 찾는 검사로 환자의 불안에 대응한다. 돌이켜보면, 후두염이라는 같은 이름표를 들고도 내가 세 병원에서 치료받은 것은 다 달랐던 셈이다.

장하원 과학기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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