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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되겠다는 용기

등록 2024-03-16 05:21 수정 2024-03-23 02:07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24년 3월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선거사무소 개소식. 다양한 시민의 발언이 끝나고 후보가 등장할 차례. 사회를 맡은 마포녹색당 운영위원 김소라씨는 한동안 소셜미디어를 뒤덮었던 빵 테스트 얘기를 꺼냈다.

짭짤한 피자빵? 달콤한 크림빵?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말했을 때, ‘왜 우울한데?’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고 ‘무슨 빵 샀는데?’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죠. 무슨 빵을 샀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보통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질타받기도 하는데요. 김혜미 후보는 ‘무슨 빵?’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짠 빵? 단 빵?’ 짭짤한 피자빵이 당신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지, 달콤한 크림빵이 당신을 달래는지 묻고, 이후에 친구가 힘들어할 때 그 빵을 사다주려는 것이라 하더라고요. 이 시대에는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정치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담하게 물어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는 정치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합니다.”

이 소개의 주인공은 ‘대문자 티’(T, 성격유형검사에서 사고형을 의미) 김혜미 후보다. 100년 만의 폭염이 찾아온 1994년 여름에 태어나 경제위기와 함께 성장해 사회복지사가 됐고,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이후 부대표로 활동했다. 그리고 2024년 총선에 녹색정의당 마포구(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시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무책임한 정치를 함락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절실한 안전망과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미래를 짓기 위해서.

내가 김혜미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녹색당 여성 출마 프로젝트에서였다. 나는 출마 경험 없는 여성 시민이 자신의 경험을 정치적으로 의제화하고 전달하도록 훈련하는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표면적으로는 선거에 나설 준비를 돕는 것이지만, 근본적 목표는 참여자들이 자신과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고 후보를 넘어 ‘정치인’이 되겠다는 용기를 품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치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어떤 현장을 만나왔는가? 내 곁에는 누가 있는가? 내 안에는 어떤 질문이 있는가?’

나를 바라보던 참여자들 눈빛 위로 나도 잘 모르고 정답도 없는 질문을 켜켜이 쌓았다. 그 가운데 설레는 꿈을 품은 얼굴로 앉아 있던 그가 기억난다.

워크숍이 끝나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 대부분의 참가자와 달리, 김혜미는 ‘정치인’으로 살아갔다. 한국의 승자독식 선거제도처럼 개인의 역량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건 모욕을 견디는 일 같다.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에 던져질 뿐 아니라 내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과도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정치를 제대로 하는 건 너무 어렵지만, 그 일을 통과해야 성장할 수 있기도 하다. 나의 인간됨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하고 오래 곱씹을 배움을 준다. 복합적인 위기 앞에 마음은 초조하지만 교육에는 시간이 드는 법이다.

동료들과 함께 스스로를 치열하게 교육해온 김혜미는 이번 선거 목표가 “5% 득표”라고 말했다. 왜 ‘당선’이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안 될 거라며 패배주의적으로 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다. 그의 야심은 크고, 시야는 넓다. 제3정당을 만들겠다는 세력이 결국 양당제에 포섭되고 말던 유구한 정치사를 흔들려는 시도다. 지금 있는 곳에서 포기 않고 집요하게 가보겠다는 정직하고 현실적인 선언이다.

선거의 구체적 장면들

또한 ‘5%’는 선거가 당선이란 소실점 외에 다양한 의미로 이뤄졌음을 아는 사람의 목표이기도 하다. 선거라는 장 안에는 수많은 만남과 판단, 작은 성취로 이뤄진 구체적인 장면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김혜미 후보와 그의 캠프가 남길 역사가 기대된다. 동시에 곳곳에서 기후위기에 맞설 정치인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희망찬 마음으로 투표장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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