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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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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앞선 진보당 후보…‘이변’의 비결은?

여론조사에서 진보당 노정현 후보가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 앞서는 ‘이변’ 일어난 부산 연제구 르포… 주민 소통으로 색깔론 깬 진보정치
등록 2024-04-06 09:20 수정 2024-04-06 14:40
노정현 진보당 후보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왼쪽),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오른쪽)와 함께 2023년 4월2일 부산 연제구 노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진보당 제공

노정현 진보당 후보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왼쪽),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오른쪽)와 함께 2023년 4월2일 부산 연제구 노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진보당 제공


“노정현 이 사람이 갑자기 나온 사람이 아니에요. 옛날엔 당을 보고 뽑았는데 이제 달라졌지. (보통 정치인이) 지역에서 봉사한다 그러면 많은 당원들 데리고 와서 한번 (봉사)하고 출마하잖아. 그런데 이 사람은 여러 사람한테 와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를 일단 들어. 듣는 게 중요해. 그게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면서) ‘한 번은 돼야 안 되겠나’ 한 거야.”

2024년 3월31일 오전 부산 연제구 거제동성당 앞. 부활절 미사를 마치고 나온 최베드로(65)씨가 던진 말이다. 연제구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김희정 국민의힘 후보, 노정현 진보당 후보가 한창 선거유세를 펼치던 현장이었다. 평생 연제구 연산동·거제동 일대에 거주하며 자영업을 해왔다는 최씨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김희정이가 서울로 가가 대통령실로 가고 했는데, 그런 일 하는 거로는 우리 지역 주민들이 이제 안 뽑는다는 거야.”

부산에서도 보수세 강한 동네인데…

4·10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부산 ‘낙동강 벨트’ 등을 두고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지만, 부산 연제구의 경쟁은 독특하다. 국민의힘 김희정 후보의 카운터파트가 민주당이 아니라 진보당 노정현 후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산일보>와 부산엠비시(MBC)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4월1~2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56.7%를 얻어 김 후보(37.5%)를 19.2%포인트 앞선다는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4.4%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까지 나왔다.

김 후보는 연제구에서 이미 두 차례(2004년,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기도 해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반면 노 후보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해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제구 의원(연산8·9동)을 두 차례 지내는 동안 지역 언론에 ‘네 아이 아빠 구의원’ 정도로만 알려진, 전국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게다가 연제구는 부산에서도 보수세가 강한 동네다. 시청·법원·검찰청·언론사 등이 위치하고 신흥 부촌인 해운대구, 전통적 부촌인 동래구와 맞닿아 있다. 이에 통일민주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한 뒤 치른 1992년 제14대 총선 이후 8번의 선거에서 국민의힘 계통 의원들이 7번이나 이겼다. 2016년 치러진 제20대 총선(김해영 민주당 의원)만 예외였다.

사실 진보당 후보가 연제구 구청장을 지낸 이성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이긴 것부터가 의외의 결과였다. 이에 연제구 현장에서 노 후보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저분이 동네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8년 전쯤 어디서 봤는데 뭔가 믿음이 가고 신뢰가 가서.” -온천천 시민공원에서 만난 전순정(60)씨

“전 그렇게 정치에 깊이는 없고 왔다 갔다 해요. 근데 후보를 예전에 봤거든요. 소탈하고 서민적이고.” -지하철 종합운동장역에서 만난 60대 초반 김아무개씨

“젊은 사람들은 보통 정치 얘기 잘 안 해서 주변 민심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 후보는 그전에도 나왔는데 떠났다가 다시 왔거든요. 노 후보는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진정성 측면을 보고 있어요.” -거제동성당 앞에서 만난 40대 중반 김현주씨

인터뷰에 응한 유권자들은 대체로 노 후보의 ‘지역 일꾼’으로서 면모를 첫손으로 꼽았다. 이런 이미지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었을까. 당사자인 노 후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희가 한분 한분 정성스럽게 만나서 의견 듣는 걸 했어요. 구청에 주민 의견을 수렴해 요구안을 보내려면 5천 명 규모로 받아야 해요. 연제구 주민이 18만 명인데, 5천 명한테 설문을 받아서 연제구의 세금이 어디에 쓰이면 좋겠는지 의견을 모으고 요구안을 만들었어요. (요구안을) 추리는 것도 주민과 함께 추리고 우선순위 투표도 주민 3만 명 정도 투표(연제주민대회)를 받고, 스킨십이 엄청 많았죠. 돌아다니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선거 때는 지역 사람이라 얘기해놓고 선거 끝나면 서울 사람 되더라’는 얘기예요. 물론 의정 활동이 바빠 서울에서 못 오는 경우가 있겠지만 저는 2 대 8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서울이 2, 지역이 8. 골목골목 주민들의 목소리 속에 정치와 정책이 있고 현안이 있는 건데, 그것과 떨어진 정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정현 진보당 후보가 2024년 3월3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성당 앞에서 미사를 보고 나오는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노정현 진보당 후보가 2024년 3월3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성당 앞에서 미사를 보고 나오는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연제구, 윤석열 정부 ‘부정평가’ 부산에서 가장 높아

노 후보가 말한 연제주민대회는 2023년 10월22일 열린 행사다. 이때 나온 주민요구안에는 투표 결과에 따라 △전 세대 전기·수도·가스 공공요금 지원금 △도시공원 대폭 조성 △달빛어린이병원 지정 확대 등의 생활 공약이 담겼고, 요구안은 구와 구의회에 전달됐다. 연제구는 이후 주민요구안 내용 가운데 전월세 안심계약 도움서비스, 1인가구 방범을 위한 안심홈세트 등을 현실화했다.

노 후보는 앞선 2021년 1회 주민대회 때와 2022년 2회 주민대회 때도 같은 방식으로 ‘연제구 재난지원금’을 실현해내거나 청년생활체육시설인 ‘철봉공원’ 등을 만들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정치 효능감’을 체감케 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유권자, 선거운동원, 선거대책위 관계자들은 선거 구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는 국민의힘 당원이라. 근데 이상하게 예감이 안 좋아. 진보당이 이 동네를 엄청 설치고 다녔어.” -거제동성당 앞에서 만난 최아무개(77)씨

“선거운동할 때 어르신들이 많이 말씀하시는 건 ‘중앙 정치 말고 연제구 정치 해달라’고. 중앙에서 일한 이미지가 강한 거예요. 그런데 저는 결과가 나와봐야 알 거 같아요. 여론조사엔 진보 유권자가 많이 포함된 거 같은데요? 그 결과 때문에 오히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더 단합하는 분위기예요.” -거제동성당 앞에서 만난 50대 중반 국민의힘 선거운동원 최행숙씨

“노 후보가 현수막을 꾸준히 구석구석 걸어서 인지도를 높였어. 구의원일 때 평가가 나쁘지 않았고. 여론조사 결과는 진보당 자체의 역량이라기보다 후보 개인기와 단일화, 그리고 김 후보가 연제구에서 다섯 번째 공천받은 피로감, 현역인 이주환 의원과의 당내 경선 후유증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봐야지.”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관계자

여기에 더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언급한 <부산일보>·부산엠비시 여론조사에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에 대한 문항도 있었는데, 연제구 주민의 긍정평가는 36.2%, 부정평가는 60.3%였다. 부산 8개 지역구 평균은 긍정평가 43.7%, 부정평가 53.1%였다.

 

김희정 국민의힘 후보가 2024년 3월3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성당 앞에서 미사를 보러 들어가는 시민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다. 손고운 기자

김희정 국민의힘 후보가 2024년 3월31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성당 앞에서 미사를 보러 들어가는 시민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다. 손고운 기자


유세 현장 분위기는 국민의힘 우세… 박빙 승부

그럼에도 보수세가 강한 연제구 특성상 막판까지 ‘알 수 없다’는 분위기가 크다. 주민 개개인에게 다가가 물어보면 ‘노 후보의 진정성을 봤다’는 유권자가 꽤 있었지만, 유세 현장 분위기만 보면 국민의힘이 우세해 보였다. 분위기 차이는 노 후보와 김 후보가 거제동성당 앞에서 차례로 연이어 유세를 벌였기에 더 한눈에 들어왔다. 김 후보가 주민들을 향해 90도로 인사하고 손을 내밀면 “보고 싶었다”, “보니까 눈물이 난다”, “자주 온나” 등 덕담을 건네고 껴안는 어르신이 많았다. 반면 노 후보가 유세할 땐 차분히 악수하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유권자가 많았다.

특히 노 후보가 지하철 종합운동장역에서 저녁 유세를 할 땐 자신을 태극기부대로 소개한 80대 연제구 주민이 “공산주의를 막아야 합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인 거 알죠? 절대 뽑아주면 안 됩니다”라고 주변 시민들에게 외치기도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일 선거유세 지원을 위해 부산을 찾아 “이 선거가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의 발전을 위한 것인가”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색깔론 프레임이다.

선거운동을 돕던 이은영 진보당 양산시당 공동위원장은 일부 보수 성향 유권자의 이런 시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잖아요. 지금 새로 만들어진 진보당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고 ‘이석기’란 이름도 모르는 분이 절반을 넘어요. 진보정당에 대한 색안경이 그 이후로 강해졌는데, 프레임을 깰 수 있었던 것도 주민대회 덕분이에요. 끝없이 주민들과 접촉해 소통하면서. 저희 당 목표는 정치인에게 다 맡기는 위임정치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자는 거예요.”

김 후보는 3월29일 부산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학세권 연제, 역세권 연제”를 강조했다. 방과후 학부모들의 자녀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늘봄타운 조성, 여름방학·겨울방학 중학생 계절학교, 고등학생 야간자율학습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 교육 공약, 제2 센텀선 신설, 황령 3터널 조기 개통 등의 교통 공약이 주를 이룬다. 이에 더해 부산을 찾은 한동훈 위원장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 ‘가덕신공항 조기 완공’을 약속했다.

노 후보는 지역순환경제 3법, 초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바람길 숲’ 조성, 지하철 3호선 지선 신설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선 국민의힘과 입장이 같다. 다만 쇠락해가는 부산 경제를 일으키려면, ‘공공기관 이전’만으론 안 되고 ‘지역순환경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역에서 발생한 이익이 역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서 돌게 하기 위해 지역에서 일정액을 벌어들인 기업들이 지역에 재투자할 수 있게 하는 ‘지역 재투자법’, 소상공인을 위한 ‘동백전 지원 확대’, 미국 노스다코타주 공공은행을 모델로 한 ‘부산 공공은행’ 등이 골자다.

‘지역구 정치’는 양날의 검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낸 차재권 국립부경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지역 이슈에 천착해 시민과 신뢰를 쌓는 정치를 긍정하면서도 이런 정치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인구가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면서, 수도권 입장이 국회를 통해 법체계 내에서 대변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높아진 상황입니다. 국가 예산 배분 등이 수도권에 유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대표성 관점에서 ‘지역구 정치’는 필요합니다. 다만 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지역에 관한 작은 일들은 구의원이나 시의원이 대의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지역구, 나아가 부산 전체, 나아가 전국적인 상황, 당 전체에 대한 정책적인 자세가 다 중첩돼서 발현돼야 한다는 점을 국회의원 후보는 생각해야 합니다.”

차 교수는 특히 진보당과 후보를 단일화한 더불어민주당이 앞으로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고 전망했다.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진보당에 졌다는 건 그만큼 이 지역 조직이 무너져 있었다는 의미가 될 텐데,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번엔 연합 정치를 해나갔지만,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조직력이 약화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보수 쪽에서 다시 ‘통진당’ 주홍글씨에 가두기 위한 ‘종북 프레임’을 제기할 텐데 민주당도 이 프레임에 같이 갇히는 효과도 있을 수 있고요. 대북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의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제약하면서, 장기적으론 민주당에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부산=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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