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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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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낸 10년, 살아갈 세월

세월호 참사 이후 시간을 책, 영화, 그림으로 기록하는 이들
등록 2024-04-19 09:23 수정 2024-04-23 04:44
2024년 3월26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27)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곽진산 기자

2024년 3월26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27)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곽진산 기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기록하는 일은 긴 세월을 지나며 변해갔다. 그사이 누군가는 기록을 그만두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아직도 잊지 않고 세월호의 기록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어떤 이는 책을 써냈고, 어떤 이는 영화를 만들었으며, 또 어떤 이는 그림을 그렸다. <한겨레21>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세월호의 기록을 남긴 이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앞으로의 10년’을 물었다.

책으로 써낸 생존자의 고백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이던 유가영(27)씨는 2023년 4월 세월호 9주기에 맞춰 자신의 경험을 담은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다른)라는 책을 써냈다. 그는 이 책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살아남은 뒤 그간 쉽지 않게 지내온 날들을 덤덤히 풀어나갔다. 어느 곳에서도 언급한 적 없는 얘기였다. “출판사 제안으로 사실 큰 생각 없이 쓰기 시작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유씨는 책을 낸 이후 여러 학교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10주기를 맞아 10여 쪽 분량의 ‘작가의 말’을 덧붙여 리뉴얼해 재출간됐다.

아직도 몸에 세월호 참사의 고통이 새겨져 있는 그에게 ‘4월16일’은 별다른 감상이 없다고 했다. “그날엔 특별히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평소에도 그냥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까 굳이 그날을 그렇게 슬퍼하고 추모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거예요.” 유씨가 말했다. “어쨌든 제가 그 후로 10년이나 더 살아 있던 거니까…. 사실 그때는 제가 몇 년을 살아 있을지 잘 몰랐거든요. 많이 힘든 상태였고. 이렇게 10년을 살아왔음을 조금 기념하려는 그런 저를 위한 선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유씨는 그 선물로 여행을 생각 중이다. 별을 수놓았던 2015년 몽골의 밤하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간다면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10년 이후에 대해 유씨는 “치열하게 살아야죠”라고 덤덤하게 답했다. “책에도 과거의 10년이 아니라 앞으로의 10년을 살아나갈 우리가 다짐을 준비해야 한다고 썼거든요. 10년 뒤에는 내가 어떻게 돼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도 이제 그다음 1년을 어떻게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갈지 그리고 어떻게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다들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죠.” 유씨는 생애주기별로 ‘생존자의 기록’을 계속해서 써내는 것이 목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자기가 늙을 때까지 계속 한 권씩 책을 냈다고 해요. 저도 그렇게 제 활동을 책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그의 기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왜곡에 맞서 찍은 유가족
세월호 참사 유족 문종택(62)씨는 최근 <바람의 세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2014년 8월께부터 지금까지 약 10년을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했다. 2023년 초 문 감독은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과 작업을 시작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세월호 참사 유족 문종택(62)씨는 최근 <바람의 세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2014년 8월께부터 지금까지 약 10년을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했다. 2023년 초 문 감독은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과 작업을 시작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세월호 참사 유족 문종택(62)씨는 최근 <바람의 세월>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감독이 됐다. 이 영화는 문 감독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의 ‘폭식 투쟁’ 등 세월호 참사 유족을 향한 혐오가 공고화하기 시작한 2014년 8월께부터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했다.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의 말대로 미디어의 왜곡에 맞서 시작한 촬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세월호 관련한 왜곡 보도는 계속 나오는데 정작 우리 쪽에서 촬영하는 카메라는 하나도 없었어요. 카메라가 근본적인 힘이 있잖아요. 그동안 언론 보도에 시달렸던 부모들은 나를 보면서 ‘우리 카메라가 왔네’라고 반기기도 했죠.” 문 감독이 말했다.

‘기록은 습관’이었다던 문 감독도 10년을 촬영해온 시간이 쉽지 않았다. 촬영하고, 편집하고, 유튜브에 올리는 일은 겉으로는 수월해 보여도 매일 하기엔 벅찬 일이었다. 촬영에 함께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엔 혼자 남았다. 영화로 만드는 일에도 고민이 없진 않았다. 돈벌이 수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상업적인 것들을 하기엔 험악한 세상이었잖아요. 그런데 고민 끝에 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어떤 사람은 이런 기록이 있는 거 자체를 모르니까요.” 2023년 초 문 감독은 미디어 활동가 김환태 감독과 작업을 시작했다. 5천 개 넘는 영상, 7테라바이트(TB)에 이르는 분량이었다.

감독들은 영화의 중요한 지점을 ‘당사자성’으로 꼽았다. 문 감독이 세월호 유족이면서 동시에 영화 제작자가 된 이유다. <바람의 세월>이 여느 세월호 영상물과 다른 지점이라면 맨 처음에 세월호 선박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벚꽃이 핀 봄의 어느 날, 단원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부분은 많이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좋은 방식이 아니었어요. 담담한 걸음들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감독인 김환태 감독의 말이다.

문 감독은 추모를 위해 제작한 영화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재미, 감동, 눈물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결국 세월호 참사, 즉 재난을 다룬 영상이에요. 이 재난은 인재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데 목적이 있고, 이를 추모하는 건 차후의 문제라고 봐요. 이 영화는 다음 세대를 위한 거죠. 세월호를 잘 모르는 세대가 이 영화를 검색해서 본 뒤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역할이었으면 합니다.”

문 감독은 10년 이후로도 기록하고, 다른 기록을 꺼내볼 계획이다. “앞으로 10년은 더 끌고 가고 싶어요. 그 후에 세월호는 어떻게? 내 삶은 또 어떻고, 이 동력을 끌고 가야겠다는 스스로의 지침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기록으로 다큐멘터리가 나왔듯이 권력기관이 가진 기록을 꺼내놓는 작업도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차후 문제지만요. 앞으론 진상규명이 되지 않더라도 기록물만이라도 꺼내놓는 일을 하려고요.”

마음속 숙제를 그려낸 작가
2024년 3월22일 강원도 원주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최힘찬(29)씨가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만든 자신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다. 곽진산 기자

2024년 3월22일 강원도 원주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최힘찬(29)씨가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만든 자신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다. 곽진산 기자


작가 최힘찬(29)씨는 2024년 4월13일부터 강원 원주의 한 카페에서 <463의 영혼 하나의 침묵>이란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463’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304명)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159명)를 합친 숫자다. “참사에서 비롯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로하고 싶다”던 그는 2024년 세월호 10주기에 맞춰 전국을 도는 순회전시를 진행 중이다. 2월 전북 전주에서 시작해 3월에는 경남 밀양을, 4월에는 강원 원주를 찾았다.

이번 전시는 최 작가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계획 중 하나다. 정치나 역사에 전혀 무관심했던 디자인 전공자인 최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본 뒤 2주기 ‘걷기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민활동에 참여했다. 개인적 이유로 2020년 7주기 이후부터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때 “전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2022년 10월 이태원에서 또 다른 참사가 벌어지자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부랴부랴 작업에 나섰다. “죄책감이 있었어요. (작품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고 미뤄왔으니까요. 그러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죠.” 최 작가는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예술은 막연하게 그런 게 있잖아요. ‘내가 이때 이 그림을 봤지, 그리고 이런 마음을 품었지’ 하는 반응들. 그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주고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작품을 통한 기록은 고통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고통스러워요. 전시할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왜 고통스러운 일을 하냐’란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괴롭지 않은 선택은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조금 덜 괴로울 순 있겠죠. 세월호 참사를 두고선 제게 선택은 없었어요. 관성처럼 하는 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제겐 이게 그 역할인 것 같아요.”

최 작가는 10년 이후의 세월호를 묻는 말에는 “한참 더 길게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는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잖아요. 10년 이후에도 저는 하기 싫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있어요. 이젠 삶이 된 거죠.” 최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2024년 3월22일 강원도 원주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최힘찬(29)씨가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만든 자신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다. 곽진산 기자

2024년 3월22일 강원도 원주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최힘찬(29)씨가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만든 자신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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