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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불신임’당한 윤석열 앞에 놓인 몇 갈래 길

여야 협의체 넘어 연정·동거정부·거국내각 가능성 있을까
등록 2024-04-19 11:11 수정 2024-04-22 08:10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0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0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상 불신임당했다. 2024년 4월10일 국회의원선거에서 시민들은 윤 대통령을 더는 신임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8석을 더 얻었다면 야당 전체는 언제라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고,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윤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야당 쪽에 8석을 더 주지 않은 것은 윤 대통령에겐 마지막으로 주어진 소중한 기회였다.

여전히 “국정운영 방향 옳다”는 인식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 실낱같은 기회마저 바로 걷어찼다. 총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힌 4월16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그는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모자랐다”고 말했다. 자신이 옳은 정책을, 최선을 다해 추진했는데, 국민이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이 발언엔 두 가지가 빠져 있었다. 하나는 ‘그동안 정부를 잘못 이끌어 이번 총선거에서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과거에 대한 반성, 다른 하나는 ‘앞으로 시민의 뜻에 따라 야당과 협치해서 정부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겸손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머리발언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이없게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다.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반성과 사과를 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시민을 향한 사과와 반성은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민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없는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시민을 향한 반성과 사과를 하는 것은 어느 나라 예법인가.

문재인 정부의 이철희 전 정무수석은 “정말 심각하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동안 검사로 일하면서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법을 집행한 것이다. 그런 검사들에게 우리가 엄청난 권한을 맡겨놓았다. 그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해온 것인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시민들은 윤 대통령이 지난 2년처럼 행정부를 운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불통과 일방통행으로 인한 행정부 운영의 문제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 본인의 권한 남용 혐의와 부인 김건희 여사의 부정부패 혐의도 심각하다고 느낀다. 윤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권한을 조금 내려놓고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여야 지도부, 국회와 나눠야 한다.

윤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와 함께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협치’다. 여야 사이에 이견이 크지 않은 문제를 여야 협의체를 구성해 함께 처리해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생경제나 국제경제, 의료개혁, 연금개혁, 저출산·고령화 대책, 균형발전정책 등 중대하고도 시급한 사안이다. 여야 협의 과정에 윤 대통령은 개입하지 말고, 여야의 협의 결과에 따라 집행하는 데 충실해야 할 것이다.

여야 간 협치가 이뤄져도 이견이 큰 문제들은 여야 협의체에서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채 상병 사망 사건 특검법이나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과 부인을 직접 수사 대상으로 겨누는 법안들이다. 이것은 여야 간 협의가 아니라, 여야 간 투쟁으로 결판이 날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가운데서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방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50억원 클럽 특검법 등은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

여야 간 협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징적 조처도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를 두루 만나야 한다. 이재명, 조국, 이준석 대표는 모두 윤 대통령과 큰 악연이 있다. 그러나 이 악연을 넘지 못하면 협치는 어려울 것이다.

1997년 11월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야권 대통령 후보의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장철규 기자

1997년 11월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야권 대통령 후보의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장철규 기자


일방통행 아닌 ‘여야 협치’로 전환해야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는 “이제 협치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먼저 하느냐, 여당에 밀려서 하느냐 둘 중 하나다. 만약 협치를 아예 안 하려 하면 결국 식물 대통령이 되고 말 것이다. 윤 대통령이 그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높은 협치 방안도 다양하게 제시된다. 연립정부(연정), 동거정부, 거국내각 등이다. 총선 직후인 4월13일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윤 대통령에겐 벼랑 끝 기회…’ 칼럼에서 ‘대연정’(대연립정부)을 제안했다. 대연정은 제1당인 민주당과 제2당인 국민의힘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부 형태다. 1당이나 2당이 작은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하는 ‘소연정’과 구별된다.

연정을 하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힘 단독정부에서 국민의힘-민주당 공동 정부로 바뀐다. 통상 의회중심제(의원내각제) 연정에선 의석수에 비례해 총리와 장관직을 나눈다. 그러면 민주당이 총리와 다수 장관직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라는 한국 정치 체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여야가 절반 정도씩 장관직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한국에서 ‘대연정’은 없었지만, ‘소연정’은 이미 한 번 있었다. 1998년 2월~2001년 9월 운영된 디제이피(DJP·김대중-김종필) 연정이다. 이 연정은 애초 김대중의 1997년 대선 전략으로 시작해 대선 승리, 외환 위기 극복 등 성과를 냈지만 의회제 개헌, 햇볕 정책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국 3년 반 만에 와해했다. 이상돈 전 의원(중앙대 명예교수, 법학)은 “여야가 연정을 하면 좋지만, 연정은 어려운 일이다. 디제이피 연정도 김대중, 김종필 같은 정치력이 있는 지도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윤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거정부’는 통상 프랑스와 같은 이원정부제에서 나타난다.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 다수당이 총리 등 내각 구성권을 갖는 정부 형태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장으로 외교, 국방 정도만 담당하고, 총리가 내정 전체를 담당한다. 프랑스에선 프랑수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기에 3차례 나타났다. 그러나 2000년부터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면서 사라졌다.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오른쪽)과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총리는 1986~1988년 동거정부를 구성해 함께 프랑스를 이끌었다. 1995년 5월6일 두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럭비 경기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REUTERS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오른쪽)과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총리는 1986~1988년 동거정부를 구성해 함께 프랑스를 이끌었다. 1995년 5월6일 두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럭비 경기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REUTERS


동거정부를 선택하면 이재명 대표가 총리가 돼서 외교, 국방, 통일 정도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장관을 임명하고 지휘한다. 연립정부는 정당들이 연합해서 내각을 구성하지만, 동거정부는 의회의 다수당이 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한다. 동거정부를 선택하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사실상 내정 권한을 민주당에 완전히 넘기게 된다. 한국에선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을 조건으로 야당에 ‘동거정부’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2005년 8월엔 선거법 개정을 조건으로 야당에 ‘대연정’도 제안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는 “중장기적으로 한국도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한국 사회가 동거정부를 선택한다면 의원내각제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의원내각제는 국가 권력을 대통령과 같은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4월15일 민주당 박지원 국회의원 당선자가 거론한 ‘거국내각’은 국회에 진출한 모든 정당이 함께 행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전쟁 같은 비상한 시국에 정치권을 통합하는 방안이다. 대표적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의 전시 내각이다. 영국은 양당제 국가여서 거국내각이 연정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협치와 연립정부, 동거정부, 거국내각은 모두 어려운 일이다. 참여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높은 인내와 관용을 가져야 구성, 운영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을 하려면 먼저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고 조금 비켜서야 한다. 동시에 국회 200석의 캐스팅보트(결정투표)를 쥔 여당 국민의힘의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윤 대통령이 협치도 거부하고 조금 비켜서는 것도 거부한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여당이 윤 대통령과 뜻을 함께해서 지난 2년처럼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충돌하는 일이다. 앞으로 3년 동안도 국회나 행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협치나 연정이 안 된다면 다수 야당인 민주당이 예산 편성이나 고환율·고물가 대응, 개혁 입법, 헌법 개정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입법권을 가졌다는 책임감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8일 독일 베를린의 총리실에서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 새 총리(왼쪽)가 전임자인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두 사람은 메르켈 총리의 마지막 임기 때 연정을 구성해 함께 독일을 이끌었다. REUTERS

2021년 12월8일 독일 베를린의 총리실에서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 새 총리(왼쪽)가 전임자인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두 사람은 메르켈 총리의 마지막 임기 때 연정을 구성해 함께 독일을 이끌었다. REUTERS


대통령이 협치를 거부한다면

다른 하나는 여당이 윤 대통령에게 탈당이나 비켜서기를 요구하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때는 여야가 윤 대통령의 탄핵이나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 등을 함께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협치나 연정을 하려면 정치적 상상력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난 2년처럼 검경을 동원해서 밀고 나가려 할 것이다. 결국 탄핵과 같은 파국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처럼 국민의힘 내부의 균열과 보수 언론들의 태도 변화가 결정적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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