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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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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심판

독재부터 무능까지, 정권 심판의 공감 요소들
이재명과 조국, 유권자 인정 받았지만 본격 시험대
등록 2024-04-12 13:15 수정 2024-04-13 00:36
2024년 4월3일 충북 제천시 제천중앙시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유권자들 모습. 한겨레 김봉규 기자

2024년 4월3일 충북 제천시 제천중앙시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는 유권자들 모습. 한겨레 김봉규 기자


윤석열 정권은 심판당했다. 총선은 이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왜, 어떻게 심판했는가?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 다시 한번 찬찬히 돌아볼 문제다.

보수적 논자로 잘 알려진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투표 당일인 2024년 4월10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리더십을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로 지칭했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정권의 통치 방식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윤 교수는 이번 총선을 ‘자유민주주의’에 속하지 않는 양쪽의 대결 구도로 봤다.

그런데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란 조어는 ‘독재’와 일맥상통한다. 윤 교수와 같은 보수적 논자도 윤석열식 통치에 독재적 요소가 있다고 보는 거다. 말끝마다 ‘자유’를 말하지만 ‘자유 대 공산’ 식의 반공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가진 자의 자유’만을 우선시하는 자유지상주의를 추구했던 과거 독재 정권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는 시각이다.

지인은 감싸고 경제엔 무능

이번 총선의 특징은 정권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투표율은 67%로 32년 만에 최고치였는데, 이는 양당 지지층이 모두 강하게 결집했다는 거다. 그런데 범야권 의석 합계가 190석에 이를 정도의 일방적 결과가 나온 건 왜일까? 보수적 유권자층 일부에서도 정권심판론에 공감하는 흐름이 형성된 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 공감은 어디서 왔을까? 윤석열 정권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거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은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민생을 돌보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한다.

다수의 전문가는 총선 국면에서 정권심판론이 폭발적으로 재점화한 계기를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종섭 전 대사는 이른바 채 상병 사망 사건 관련 의혹의 주요 관계자다. 이건 대통령실이 채 상병 사망 사건에 책임이 있는 군내 인사를 구명하기 위해 부적절한 수사 개입을 한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이종섭 전 장관은 그 연결고리가 된 것으로 의심받는 상태였다. 그러한 인사에게 직책을 줘 국외로 내보내려 했다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누구를 구명하고 수사를 뭉개는 건 법치를 우롱하는 거다. ‘적법절차(due process)’는 자유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이다. 적법절차를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우회하는 게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고, 권력이 임의적·편의적으로 훼손하는 게 ‘독재’다.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을 감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배우자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태도는 어땠는가? 권력자라면 가까운 사람을 더욱 엄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상식은 산산조각 났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점에 분노한 것이다.

독재적 면모가 있더라도 대통령이 경제 운용에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면 상황은 또 달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파 875원” 발언에 대한 대중적 분노에서 보듯, 대통령이 민생고 해결을 위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한다고 보는 유권자는 많지 않았다. 이를 포함해 다양한 문제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이 간언하고 경고했으나, 정권은 귀담아듣지 않고 이들을 오히려 적으로 몰고 배제하고 장악했다. 대통령이 스스로 알아서 변하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러니 유권자들이 표심으로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당장 선거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여당 입장에선 대통령의 태도를 바꾸기 위한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같은 것들뿐이었다. 만일 한 전 위원장이 일각의 전망처럼 선거 이후에도 비대위원장직을 유지하려 했다면 용산과 여당은 책임론 공방 국면으로 돌입했을 거다. 실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종섭·황상무 두 사람에 대한 처분, 의사와 정부의 갈등 해소 등에 대한 당 입장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선거 패배의 책임은 당 지도부가 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 전 위원장 시각에서 보면 적반하장이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은 “선거 패배는 내 책임”이라며 사퇴를 선택했다. 대통령실도 쇄신 메시지를 냈고 용산 참모들과 국무총리도 사의를 표명했다. 총선 대패에 ‘집안싸움’까지 벌이는 일은 피하자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을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024년 4월11일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024년 4월11일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윤석열답게, 더 ‘해도 해도 너무한’ 이들과 손잡을까

문제는 누가 책임지고 그만두는 것에서 사태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빈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인가? 일각에선 거국 내각 구성까지 언급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5년 임기 내내 여소야대를 감당해야 할 대통령이 된 탓에 인사권도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당장 새 총리를 임명하려 해도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 총선 결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윤석열 스타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윤석열 스타일’을 계속 고수한다면 당장 여당이 더는 버티지 못한다. 탈당 요구를 포함한 다양한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보수 정치의 개편이 가시화할 수도 있고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밝힌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포지션의 캐릭터로 재등장할 수도 있다. 오로지 개인기로 살아남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존재도 여당을 포함한 보수진영 전반과 대통령의 사이를 벌릴 만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해, 윤석열은 드디어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자로 변모할 것인가? 아니면 그야말로 ‘윤석열답게’ 더 ‘해도 해도 너무한’ 사람들과 더 강하게 치고 나올 것인가?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고민에 견주면 당분간 야당은 행복한 시기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의 ‘180석’이 그랬듯 ‘범야권 190석’도 가볍게 여길 무게는 아니다. 당장 김건희 특검, 채 상병 특검, 50억 클럽 특검, 한동훈 특검 등 ‘특검 정국’을 예상하는 기대도 있지만, 아직 이번 총선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이 기간에 유권자가 어떤 생각으로 범야권 190석을 안겨줬는지 돌아보고 좀더 멀리 전망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건 이번 총선 결과의 수혜자로 볼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너무 마음에 쏙 들어서 한 표를 던졌다고 말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현대의 대의정치에서 경쟁이란 유감스럽게 각자의 매력을 호소하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반대를 조직하고 동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좋아서 찍게 하는 게 아니라, 싫어서 찍게 하는’ 게 오늘날 선거의 현실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 편’의 ‘흠’은 종종 주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흠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상대방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 편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사법리스크를 넘어 유권자에게 인정받은 이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모두 사법리스크라는 공통된 흠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가령 “2심에서 유죄 판결받은 사람이 선거를 통해 명예 회복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이재명·조국 두 대표는 범야권을 대표하는 인사로서 유권자로부터 인정받았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선거 전반을 지배했던 정권심판론이 ‘윤석열 정권을 반대하는 유권자’를 조직하는, 즉 전형적인 ‘싫어서 찍게 하는’ 조직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편’의 흠을 따지기보다 상대방을 응징하는 게 먼저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공간인 거다. 이런 이유로 범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큰 거부감 없이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에 표를 던질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조국 대표는 이제 범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해 이재명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 조건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규정하는 중요 요인이 될 것이다. 두 당은 필연적으로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면서도 견제하며 균형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그리고 이의 구체적 양태는 양쪽의 구심인 이재명·조국 대표의 각종 정치적 제스처로 표현될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조국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조국 대표의 정치적 역할이 이런 일로 인해 사라진다면, 조국혁신당의 정치적 동력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비슷한 질문이 마찬가지로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도 던져질 수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비명횡사’의 파장을 딛고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다보니 언론은 ‘완벽한 이재명당’이 드디어 완성됐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낸다. 이재명 대표가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도전해 전례 없는 ‘당대표 연임’의 사례를 만들지, 아니면 대선 준비 모드로 전환할지에 대한 관측은 엇갈린다. 그러나 사법리스크 문제가 상존하는 한 이재명 대표 역시 범야권 내 구심이라는 면에서 장기적으로는 ‘약한 리더’로 비칠 수밖에 없다. 범야권 190석이라는 성과에도 이재명·조국 대표의 리더십이 각자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한 건 이 때문이다.

제22대 총선에서 가장 한국적이었던 순간

범야권의 구심력에 대한 더 풍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이번 선거에서 양당의 ‘위성정당 전략’이 조국혁신당으로 인해 사실상 깨지는 선례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을 때, 많은 사람은 이 제도가 원내의 정치적 다양성 제고를 위한 다당제 구현에 기여하리라 기대했다. 주지하다시피 위성정당의 등장은 이런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조국혁신당의 등장과 성공은 ‘양당제에 종속된 다당제’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일 ‘제2의 조국혁신당’을 꿈꾸는 진영 내 세력이 대선 이후에 있을 다음 총선 일정을 상정하고 각자의 방향을 보며 창당하는 것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하며 움직인다면? 진영 유지엔 문제없지만 구심력은 약화할 거다. 범야권의 미래를 기다리는 건 단일대오가 아닐 수 있다. 사족을 달자면, 이게 이번 총선의 가장 한국적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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