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만두 말고 대선?

등록 2021-12-27 11:18 수정 2021-12-27 22:51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철 따라 떠오르는 할머니 음식이 있다. 새해엔 만두다. 두부를 듬뿍 넣은 만두를 빚어 저녁에는 찐만두를, 아침에는 포근하게 끓인 만둣국을 먹는다. 할머니의 계절별 가이드라인에 맞춰 지금도 입맛이 도는 나는 새해 아침 만둣국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뉴스를 보면 그냥 만두나 빚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대선을 앞두고 매일 새롭게 격정적인 언사가 전파를 타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이슈는 휘발된다. 여야 주요 후보들은 만나는 세력에 따라 교묘히 말을 비틀고, 남을 흠잡거나 흠잡히지 않으려는 말만 한다. 껍데기를 벗겨내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말의 홍수를 보고 있으면 이 모든 게임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든다. 만두도 아니고 왜 대선을 생각해야 하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그런데 내 친구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홀로 세상을 빠져나갈 방법 같은 건 없다고, 침묵하면 잘못된 의견이 너를 대표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 중 어떤 이는 노동조합에서 활동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일터의 민주주의를 일굴 때 세상도 나아진다며 좋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꿈을 꾼다. 어떤 친구는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라고 외친다. 정치인이 약속해도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면서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를 도입해 ‘세상의 기준을 이동시키자’고 한다. 어떤 친구는 지구를 지키자고 한다.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자는 거짓말에 속지 말고 기후위기에 맞서 지금 여기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하자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의 제안 대부분은 ‘꿈같은 소리’로 치부당하지만, 친구는 이 정도의 변화 없이 현실을 바꾼다는 것이야말로 꿈이라고 명랑하게 외친다.

친구들의 시도는 일상적으로는 패배하지만 역사적으로 승리해왔다. 연약한 사람들의 연대가 세상을 바꾸는 장면은 ‘사이다’라기보다 느리고 불현듯 찾아오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힘이 없나? 오히려 반대다. 다수의 의견을 대표한다는 소수는 자신의 결정을 앞세우기 쉽지만, 다수가 된 소수의견은 세상을 바꾼다. 소수의견이 다수가 돼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설득과 합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은 매끄럽기보다 좌충우돌하는 하루하루에 가깝지만 ‘나는 패배해도 우리는 승리하는’ 일은 때때로 정말 일어난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만드는 일은 늘 그렇게 시작했다. 어차피 모두 나쁘니 함께 나쁘자는 말이 부끄러움 없이 돌아다니지만 세상이 그래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매일을 견디는 보통의 사람들 덕분 아닌가. 이들 대부분이 세상이 망하기보다는 더 나은 곳이 되기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말해서 서로에게 거름이 되도록

그래서 나는 새해에 사랑과 연대, 평등, 평화 같은 것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좀더 확실하게 말하기로 다짐했다. 이 희귀해 보이는 것을 자꾸 말해야 서로의 마음에 거름이 될 것 같아서 그렇다. 이윤과 효율에 생명과 존엄을 내주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고, 패배하기로 정해진 사람은 없다고, 모두의 존엄을 존중하는 세상은 그렇게 살길 원하는 사람의 힘이 모일 때 가능하다고. 그리고 새해엔 이런 의지가 어디선가 모이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 그 자리를 만드는 지루하고 멋진 일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좋겠다.

더불어 만두도 꼭 먹어야겠다.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만두처럼 따뜻한 시간이 있기를 소망한다. 사느라 애쓴 우리 모두, 해피 뉴 이어.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