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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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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가치연대가 절박하다

윤석열 정부 외교가 성공하려면 전 정부 ‘가치외교’ 무시 말고 미얀마 군사정부 압박해야
등록 2022-08-17 11:19 수정 2022-08-18 01:17
2021년 4월2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얀 나잉 툰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 대표부 특사(앞줄 오른쪽)가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군부 쿠데타에 맞서 구성한 민족통합정부의 공식 인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2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얀 나잉 툰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 대표부 특사(앞줄 오른쪽)가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군부 쿠데타에 맞서 구성한 민족통합정부의 공식 인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국민의힘 정부는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부가 ‘적폐 청산’을 했듯이 이전 정권 ‘지우기’에 나섰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성공적인 보수 정부가 되려면 문재인 정부가 남긴 모든 정책을 부정하는 이른바 ‘ABM(Anything but Moon)’을 넘어서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3P, 즉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을 기조로 나름 ‘가치외교’의 지평을 확장하려 했던 신남방정책의 성과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2021년 2월1일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국회와 함께 미얀마 군부가 자행하는 인권유린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해 2월26일 국회는 여야가 하나가 되어 미얀마 군부 쿠데타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3월12일에는 외교사상 처음으로 우리 정부가 미얀마 군부와의 국방·치안 분야 교류협력과 군용물자 수출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일종의 독자적 제재를 선언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행정부가 입법부와 같이 보여준 가치외교는 한국에 체류하는 미얀마인뿐 아니라 ‘봄의 혁명’에 나선 미얀마 현지 국민에게도 지지받았다. 이는 쿠데타 이전 아웅산 수치 문민정부와도 두터운 외교관계를 가졌으나 쿠데타 이후 ‘내정불간섭’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버린 중국의 기회주의적 태도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세계시간-현지시간의 격차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축적한 민주주의의 성과는 보편적 자유권과 보편적 민주주의 개념이 실재하는 세계시간(World Time)과 이러한 국제규범의 수용 정도를 의미하는 현지시간(Local Time)의 격차를 상당한 정도로 줄였다. 반면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적잖은 반서방 국가들은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상황이기에 세계시간과 현지시간의 격차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싱크탱크가 각각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동아시아 외교의 전개와 세계시민의 의무를 제창한 것도 이 격차에 주목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윤석열 정부가 공표한 대로 가치외교를 실행하려 한다면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공동선언문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 회복을 위해 연대하고 지원할 것임을 공표한 약속부터 행동으로 옮기길 바란다.

미얀마는 2015년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총선 압승 이후 도도했던 정치적, 경제적 자유화의 흐름이 또다시 군부 쿠데타로 멈춰서면서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쿠데타에 항의하는 비폭력운동, 즉 시민불복종운동(CDM)이 군부에 유혈 진압되면서 무기를 손에 든 청년들이 등장했다. 시민방위군(PDF)의 출현이다. 그동안 평온을 유지했던 사가잉 같은 지역의 무력충돌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2022년 9월 쿠데타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반군부 임시정부 격인 민족통합정부(NUG)는 확대되는 시민방위군을 기반으로 이미 해방구를 확보한 소수민족 무장조직을 끌어들여 명실상부한 국민의 군대를 만들어내려 한다.

‘내정불간섭’ 중국, ‘혐오 자초’ 러시아

이처럼 긴박한 미얀마 내전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미얀마 군사정부에 제재 강도를 높여왔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와 우호관계를 유지·강화하고 있다. 그 보답으로 미얀마 군부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을 지지하면서 반서방 전선에 편승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와의 협상 창구 구실이 기대됐던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도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쿠데타의 주역 민 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이 이끄는 군 수뇌부는, ‘아세안이 내정불간섭이란 전통을 무시하고 미얀마 내정에 간섭하려 한다’는 구실을 들어 아세안 탈퇴까지 고려한다는 소문이 떠돈다. 2022년 7월 미얀마에서 열린 란찬강-메콩강협력회의(LMC) 같은 지역협력기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셈법이다. LMC 참석차 미얀마를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 부장은 현재 아세안 순회의장국인 캄보디아의 쁘락 소콘 외무장관을 만나 아세안의 내정불간섭을 압박했다. 민주 진영은 이런 중국의 입장이 미얀마 국민의 정서는 물론이고 아세안의 미얀마 유혈사태 해결 노력에도 배치된다고 비난했다. 역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복형 중국화’(Creeping Sinicization)에 대한 분노다.

비정상적 환율정책 등으로 경제도 죽이고 있어

러시아는 계속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미얀마 군사정부가 4명의 민주인사를 전격 처형하자 미얀마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황에서 미얀마를 찾아 군사정부의 운나 마웅 르윈 외교장관에게 연대와 지지를 약속했다. 러시아에 대한 혐오, 즉 ‘루소포비아’를 자초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학살하고 있는 미얀마 군사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긴급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무엇보다 ‘가치전쟁’을 하는 미얀마 민족통합정부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긴급행동은 미얀마에 투자하는 한국의 기업들과 대한민국의 가치외교를 선도한 한국 시민사회에도 요청된다. 현재 쿠데타 군부세력은 민주인사뿐 아니라 경제도 죽이고 있음을 현지 대한민국 기업들 역시 잘 알 것이다. 대표 사례로, 군사정부의 비정상적 환율정책 때문에 미얀마 투자 기업들의 환차손이 심각한 상황이다. 군부의 ‘비정상’에 맞서는 현지 우리 기업들의 결연한 파업을 기대한다.

한국 시민사회는 한국 정부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향해 미얀마 민족통합정부의 승인을 촉구하는 연대 행동에 나서기 바란다. 미얀마 군부의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도덕적 감수성은 8888 민주항쟁과 2007년 샤프론 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한 데 이어, 2021년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또다시 총구를 겨누면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미얀마의 모든 시민사회 세력이 연대해 민족통합정부의 가치전쟁을 지지하고 있음을 환기하기 바란다. 미얀마를 향한 대한민국의 더 많은 ‘가치연대’가 절박하다.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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