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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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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초과세수가 진짜 가리키는 것

불황에도 폭증한 세수 견인한 건 초거대기업과 고소득층
등록 2022-04-27 17:41 수정 2022-04-28 03:03

문재인 정부 5년간 경제정책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초과세수다. 얼핏 보면 세금이 훨씬 더 걷혔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실상은 정부가 한 해 예산을 편성할 때 내놓았던 세입 전망치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2021년 예산안에서 기획재정부(기재부)는 중앙정부 몫인 국세 수입이 282조7천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수가 폭증하자 그해 7월 314조3천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실제 걷힌 국세는 344조1천억원에 이르렀다. 사상 최대 규모(29조8천억원)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정부는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결정하는 ‘양입제출’ 방식으로 재정을 운용하는데, 그만큼 돈을 덜 쓰는 결과를 낳 았다.

양도세·법인세·근로소득세, 초과세수 3대장

이번 정부에서 유독 초과세수가 뜨거운 감자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 규모가 크고 여러 해 반복돼서다. 2017년(13조4천억원)과 2018년(25조5천억원)의 초과세수는 각각 국내총생산의 0.7%와 1.3%였다. 2021년은 1.4%였다. 적극적 재정 투입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겠다는 정책 기조와 단단히 엇박자가 난 셈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진보 진영은 보수적 재정 운용이 몸에 밴 기재부가 문제라는 시각을 내비쳤다. 조영철 청와대 재정기획관이 2018년 한 토론회에서 “기재부가 대규모 초과세수를 전망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세입 전망을 낮게 잡은 것은 대통령과 국회, 국민을 기만하고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초과세수는 대규모 추경예산 편성의 명분으로 즐겨 활용됐다. 윤석열 차기 정부가 추진하는 약 30조원 규모의 추경도 초과세수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까지 시야를 넓히면 예측 실패보다 세수 변동성 확대가 더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 보인다. 당시에는 예상치보다 세수가 밑돈 것이 화두였다.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던 2014년 10조9천억원 규모의 사상 최대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2012~2016년 경상국내총생산(물가 변화를 조정하지 않은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연평균 4.6%였고, 국세 수입 증가율은 연 4.7%였다. 그런데 2017~2021년에는 경상성장률이 3.4%로 낮아졌는데, 국세 수입 증가율은 7.2%로 껑충 뛰었다.

심혜정 국회 예산정책처 조세정책심의관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세수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이 비슷하게 등락했지만, 2000년대부터 동행성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거시경제 여건과 세수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황에 진입한 2018년이 대표적이다. 경상성장률(3.4%)은 2%포인트 내려갔는데, 국세 수입 증가율은 10.6% 였다.

문재인 정부(2017~2021년) 세수를 원천별로 나눠보면 부가가치세 비중이 23.2%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법인세(22.1%), 근로소득세(13.5%), 양도소득세(7.4%), 종합소득세(5.6%)이다. 그런데 2021년 초과세수는 양도소득세(37.7%)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그다음은 법인세(16.3%), 근로소득세(12.4%), 상속증여세(10.3%), 증권거래세(6.6%)였다. 2018년 초과세수는 법인세(30.1%)와 양도세(29.4%)의 비중이 엇비슷하게 컸다.

대기업 업황 따라 변동 커진 나라 곳간

몇몇 자료는 초과세수의 근본적 원인이 극소수 수출 대기업과 나머지 경제 부문 간 격차 심화에 있음을 보여준다. 키스밸류(KIS Value)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상장사 중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낸 10개 기업이 전체 법인세수에서 차지한 비중을 추산했다. 손익계산서의 계속사업손익법인세비용 수치를 사용했다. 2021년 10대 기업은 전체 법인세의 40.5%를 냈다. 특히 삼성전자는 19.1%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비중은 2000년대 7.0%였는데, 2011년 이후 16.0%로 뛰었다. 거대 기업의 비중은 경제가 호황이거나, 호황에서 불황으로 진입하는 시점에 늘었다.

근로소득세도 대기업 실적에 좌우된다. 기재부 장관 후보자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합계) 100분위 자료에 따르면, 2017~2020년 소득 상위 5%가 근로소득세·종합소득세의 65.8%를 냈다. 홍민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1~2014년 소득 상위 5%의 직업 구성을 분석했다. ‘사무직’이 28.6%로 가장 많고 ‘과학·공학’(16.3%), ‘장치조작 조립’(11.6%), ‘관리자’(6.5%) 순이었다. 전문직이나 대기업의 화이트칼라·블루칼라 노동자인 셈이다. 부동산 거래에 따른 양도세 증가도 수출 대기업과 첨단산업의 호황과 그에 따른 고소득자 증가가 구조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거액의 성과급을 받은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서울이나 경기도 성남시 분당, 화성시 동탄 등의 아파트 구매에 돈을 썼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심혜정 조세정책심의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세수 증가율과 경상성장률 간의 격차가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수 의존도가 증가하고 자산 가격이 상승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결국 초거대기업의 성장에 따른 소득 격차 심화가 초과세수의 본질인 셈이다.

방치된 재정, 문제는 정치야!

초과세수 문제의 본질은 몇몇 대기업 업황에 세수가 좌우되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가깝다. 재정 기반이 협소했던 신흥국 시절에 만들어진 양입제출식 재정 운용을 선진국에 걸맞게 바꿀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세제와 예산을 아우르는 대규모 개혁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2008년 이후 한 차례도 소득세 과표가 바뀌지 않은 데서 드러나듯 정치권은 재정 문제를 방치한다. 경제관료가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도 없다. 정치권력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나쁜 관료를 벌하고 착한 관료를 발탁해 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재정을 둘러싼 기이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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