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본 장면을 우크라이나에서 마주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봤던 검문초소가 내 눈앞에 있다니. 도로를 막은 커다란 시멘트 블록을 버스가 굽이굽이 돌아가야 했기에 검문초소와 좀더 오래 마주할 수 있었다. 검문초소를 향해 카메라를 들면 앞자리에 앉은 여성이 말렸다. 그러다간 체포될 수 있으니 찍지 말란다. 전쟁 중인 나라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수도 키이우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서 창문이 다 깨지고 지붕이 가라앉은 대형 쇼핑몰과 물류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불이 난 물류센터를 취재한 적이 있지만 차원이 달랐다. 차원이 다른 건 키이우 외곽 지역에서 마주한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먼저 찾은 부차에는 창문이 깨진 건물이 많았다. 다른 곳은 멀쩡한데 왜 창문만 깨졌는지 궁금해 키이우에 사는 코디네이터 디마에게 물었다. 탱크가 지나가면서 생긴 진동으로 건물 창문이 다 깨진 거라 했다.
여러 지역을 다녀보니 이젠 ‘창문만 깨진 건 다행’이라 여겨진다. 러시아군이 침공 초기인 2022년 2월28일 점령했던 보로댠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을 만났다. 그나마 대문 기둥과 뼈대가 남은 자신의 집을 둘러보던 옆집 주민이, “여기에 한 여성이 살던 집이 있었다”고 알려줬다.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냥 건축물 잔해가 쌓인 빈터로 여겼을 것이다. 이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두 동강 난 아파트는 흔적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로댠카는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진입하는 중 만난 첫 도시로, 다른 곳보다 피해가 컸다. 러시아군은 군사기지가 없는 이 도시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폭탄을 마구 떨어뜨렸다. 무너진 건물 아래서 발견한 주검만 현재까지 41구다. 전쟁의 흔적은 상상 그 이상이다. 주검도 이젠 ‘사지 멀쩡한 상태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증언에 나선 주민들이 보여준 영상 속 주검들은 불타서 옷을 입었던 건지 가늠되지 않거나, 뒤엉킨 채 불에 태워져 하나가 되었거나, 길에 고인 물에 불어 있는 상태다. 신원확인이 어려운 이유도 다양하다. 이 사람 다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옆에 죽은 사람의 다리이거나, 재만 남아서 아예 유전자 검출이 불가능하거나, 주검 일부만 발견되거나. 피해 상황을 들을수록 러시아군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의문만 가득해진다. 내 안에 가득한 물음표가 사라지긴 할까?
부차·이르핀·보로댠카(우크라이나)=사진·글 김혜윤 <한겨레>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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