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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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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신령이 지핀다, 마늘 양파에게도 인사를 해야지

경기 고양 편
텃밭은 지금 봄으로 가는 중… 들풀이 벌이는 초록잔치에 웃음 나고 겨울 이겨낸 마늘·양파가 싱그러워
등록 2024-02-16 12:04 수정 2024-02-22 05:17
지난해 봄 텃밭에서 겨울을 이겨낸 당귀잎이 초록으로 반짝이고 있다.

지난해 봄 텃밭에서 겨울을 이겨낸 당귀잎이 초록으로 반짝이고 있다.


2024년 2월14일 서울에선 해가 오전 7시22분에 떴다. 기상청은 “오전 7시30분 현재 기온은 10.8℃로, 전날보다 7℃ 높다”고 발표했다. 따뜻한 남서풍이 유입되면서 평년보다 기온이 높아졌는데, 전국적으로 낮 최고기온은 13~19℃까지 오른단다. 봄 내음이 진해지는 평년 4월 초 수준이다.

기상청은 ‘이상 기후’를 “30년치(1991~2020년) 평균에 견줘 기후 요소가 현저히 높거나 낮은 수치를 나타내는 극한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최저·최고 기온이 하위 10%면 이상 저온, 상위 10%면 이상 고온이다. 2월 중순 서울의 이상 저온 기준은 -5.3℃ 이상 고온 기준은 11.4℃다. 2월14일은 기온이 ‘이상’하게 높은 날이다.

주말농장을 시작한 뒤 날씨에 민감해졌다. 긴 겨울 농한기의 기다림을 지나 다시 밭에 나갈 궁리를 하는 이 무렵엔 특히 그렇다. 3개월 장기예보(2월5일 기준)를 찾아봤다. 2월과 4월은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확률이 40%다. 3월엔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50%다. 예상 강수량은 2월과 4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40%, 3월엔 평년과 비슷할 확률이 50%다.

겨울엔 눈이 많이 오고 추워야 좋다. 눈은 녹아 봄 농사를 앞둔 밭을 촉촉하게 해준다. 추위는 땅속 해충을 줄여준다. 지난겨울은 평년 수준으로 느껴졌는데, 눈과 비가 제법 온 모양이다. 최근 6개월(2023년 8월6일~2024년 2월5일) 전국 누적 강수량을 보니 평년(562㎜)보다 130.1% 많은 730.3㎜를 기록했단다. 봄 농사를 앞두고 가뭄 걱정은 덜었다.

11월에 김장농사를 마무리한 뒤부터 봄이 오기를 지루하게 기다렸다. 아득한 그리움의 시간이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을 지나면 입춘(2월4일)이다. 눈이 녹기 시작한다는 우수(2월19일)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3월5일)에도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곧잘 찾아온다.

날씨가 어떻든 춘분(3월20일) 즈음이 되면 밭에 퇴비를 넣고 씨감자를 넣는 것으로 봄 농사를 시작한다. 곧 쌈채소 씨앗도 뿌리고 청명(4월4일) 전후로는 쌈채소 모종을 낸다. 열매채소 모종은 곡우(4월19일)에서 입하(5월5일) 사이에 심는다. 그 무렵이면 밭에서 씩씩하게 겨울을 난 마늘과 양파가 푸릇푸릇한 빛깔을 뽐내며 상큼하고 알싸한 맛으로 기쁨을 주리다.

설 연휴 직전 잠시 짬을 내 밭에 들렀다. 군데군데 녹다 만 눈이 남아 있을 뿐 휑한 게 쓸쓸했다. 지난가을 농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명맥을 유지한 잎채소가 기특해 덮어줬던 비닐을 걷어봤다. 상추는 간데없고 이런저런 들풀이 봄처럼 초록초록 잔치를 벌이고 있다. 픽 웃음이 새나왔다.

밭 끝자락에 길게 한 고랑씩 자리를 잡은 마늘과 양파를 둘러봤다. 낙엽을 덮고 그 위에 수확한 뒤 남은 고구마 줄기를 얹어준 마늘밭은 무탈해 보였다. 비닐 터널까지 만들어주며 공을 들인 양파도 겨울을 잘 이겨낸 것 같다. 뻗은 줄기가 제법 싱그럽게 느껴졌다. 가는 겨울 아쉽지 않고, 오는 봄 반갑기 그지없다. 2월이 가기 전 동무들과 텃밭에 모여 올해 첫 ‘불멍’이라도 해야겠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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