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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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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 2t을 이고, 지고, 나르고

경기 고양 편
호연지기로 주문한 퇴비 100포…봄 농사 시작 한 달 만에 충만해진 밭
등록 2024-04-19 12:28 수정 2024-04-22 02:50
성질 급한 루콜라가 파종 일주일 만에 우르르 싹을 틔웠다.

성질 급한 루콜라가 파종 일주일 만에 우르르 싹을 틔웠다.


산수를 못하면 몸이 고생이다. 2024년 3월23일 밭장 차를 얻어 타고 밭으로 향하는데 텃밭 동무한테 전화가 왔다. 경기 능곡시장 모종가게에 모종 사러 들렀는데 뭐 필요한 거 없느냔다. 냉큼 퇴비 배달을 주문했다. 20포 이상 사면 배달해주는데, 입에서 튀어나온 숫자는 가히 호연지기였다. “한 100포 하지 뭐.”

동무가 사온 잎채소 모종을 퇴비 부어 미리 만들어둔 밭에 정성껏 넣었다. 잎채소 모종은 통상 4월 중순쯤 냈는데, 올해는 비닐 터널을 만들어주기로 하고 시기를 보름쯤 앞당겼다. 모종 내고 남은 땅에는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온 동무가 ‘물 건너’ 데려온 당근 씨앗을 뿌렸다. 모종과 씨앗이 벌써 세 고랑이나 들어갔다. 봄이 오긴 왔구나 싶다.

“퇴비 벌써 왔다네요.” 동무의 말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텃밭 들머리 주차장으로 나갔다. 퇴비 50포씩 쌓은 팰릿(화물을 쌓는 틀이나 받침대) 2개가 트럭에 실려 있다. 일단 트럭에서 내려 주차장에 쌓은 뒤 밭으로 옮기기로 했다. 100포를 다 내리니 숨이 가빠졌다. 문득 깨달았다. 퇴비 1포는 20㎏이다. 10포는 200㎏, 그럼 100포는? 2000㎏, 다섯이서 2t 무게를 주차장에서 밭까지 날라야 한다는 뜻이다. 주차장과 밭 사이엔 밭장의 고향 친구인 땅 주인의 집이 있다. 야트막한 계단을 올라 대문을 지나 뒷문을 거쳐 퇴비를 쌓을 밭 끄트머리까지 거리는 얼마나 될까? 뒤늦은 깨달음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텃밭 동무 다섯이서 이고, 지고, 메고, 퇴비 100포를 날랐다. 다 나르고 나니 ‘어휴, 어휴’ 소리와 함께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래도 쌓아올린 초록색 퇴비 포대를 보니 실없이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서둘러 끓인 라면에 막걸리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좀 살 만해졌는지 삽을 들고 퇴비 포대 위에 올라선 밭장이 덩실덩실 춤춘다. 이튿날 모두 전신 근육통으로 앓아누웠다.

잠깐 다시 날이 차졌지만, 비닐 터널을 만들어준 잎채소는 무탈하게 자리를 잡았다. 3월30일 밭 세 고랑에 씨감자를 넣었다. 씨감자는 본격적인 봄 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전령이다. 모둠쌈채와 시금치 씨앗도 한 고랑씩 뿌렸다. 밭이 빠르게 채워진다. 4월6일엔 밭에서 불을 피우고 올해 처음 고기를 구웠다. 싸구려 타프를 하나 쳤더니 근사한 실내가 만들어졌다. 밭장이 구운 영롱한 빛깔의 삼겹살에 어른 엄지손가락만큼 자란 상춧잎 한 장을 올렸다. ‘이것은 고기쌈인가 상추쌈인가’, 다들 신이 났다.

뽑아온 풋마늘과 야생 두릅을 곁들이니 상차림이 더욱 풍성해졌다. 갓 캔 생쑥을 넣고 끓인 라면에 모두 엄지척 했다. 루콜라, 고수, 공심채, 아욱 씨를 새로 뿌렸다. 밭으로 들어간 작물이 많아질수록 뭘 어디에 심었는지 헛갈린다. 씨앗이 발아해봐야 알 거 같다. 4월13일엔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갔다. 잠깐 쪼그리고 앉았는데 금세 이마에 땀이 맺혔다. 물이 부족했는지 잎채소 밭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호미로 톡톡 쳐 굳은 겉흙을 깨뜨린 뒤 촉촉한 속흙과 섞어줬다. 성질 급한 루콜라는 파종 일주일 만에 우르르 고개를 내밀었다. 2주 전 대차게 심은 ‘대찬시금치’도 군데군데 새싹을 올렸다. 다음주엔 또 어떤 새싹을 만나게 될까? 봄 농사 시작 한 달 만에 밭이 충만해진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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