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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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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야 나도 담글 수 있다

모종만 한 배추와 방울토마토만 한 무로 담근 ‘강원도식’ 김치
등록 2024-03-01 07:01 수정 2024-03-04 02:26
지난가을 수확한 배추로 담근 새콤하고 달달한 김장김치.

지난가을 수확한 배추로 담근 새콤하고 달달한 김장김치.


주부들의 ‘스몰 토크’ 주제 중에 ‘김치 토크’가 있다. 올해 김장이 잘됐네, 안됐네 하는 자기 집 김치 근황부터 남편은 묵은지만 찾는데 아이는 생김치만 먹는다든가 하는 가족 이야기, 어떻게 담그면 맛있네 하는 자기만의 레시피, 배추와 고춧가루 값이 올랐네 하는 경제 문제, 날씨가 더워서 농사가 망했네 하는 기후변화 걱정까지. 김치 토크에는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가 담긴다. 친밀한 사람과도 모르는 사람과도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토크의 보물 창고, 김치는 더는 스몰하지 않은 토크 주제다.

양가 어머니가 철마다 김치를 공급해주셔서 오십이 다 되도록 김치 담가본 적이 없던 나는 그동안 김치 토크에 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야, 나도’ 할 수 있다, 김치 토크. 지난가을 수확한 배추(비슷한 것)로 김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서 배추 모종을 심었다. 고랭지여서 8월15일 전에는 심어야 한다는데, 우리는 거의 8월 말이 돼서야 심었다. 이웃들이 너무 늦었다고 걱정했는데, 뭐가 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비료도 주고 벌레도 잡아줬다. 그렇게 정성을 들였더니 배추 모종에서 아주 조금 더 큰 배추를 수확할 수 있었다. 무 씨앗도 심었는데 방울토마토만 한 것을 몇 개 뽑았다. 배추가 생긴 건 부실해도 연하고 고소했다. 그냥 쌈 싸먹고 끝내기엔 양이 좀 많아서 생애 최초로 김장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농사짓는 진부면의 김치는 가볍고 산뜻하다. 여러 식당을 다녀봐도, 이웃이 나눠준 김치를 먹어봐도 다른 지역 김치에 견줘 젓갈 맛이 별로 안 나고 적당히 달고 시원하다.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이 상큼한 김치 맛을 내고 싶어 아랫집 B언니와 막국숫집 사장님께 물어봤다. 두 분의 비법은 뉴슈가. 양파와 과일을 갈아 즙을 넣고 부족한 단맛은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로 더한다고 한다. 두 분 피셜, 설탕을 넣으면 배추가 무르고 오래되면 군내가 난다고 한다. 젓갈은 까나리 또는 멸치 액젓에 새우젓을 추가한다.

핵심은 파악했으니 유튜브에서 배추 절이는 법을 찾아봤다. 한 아름은 될 법한 튼실한 배추 한 통을 기준으로 소금양을 얘기해주니 손바닥만 한 우리 배추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결국 수십 년 김치 먹어본 ‘감’으로 절여야 했다. 배추 몇 통은 그래도 배추처럼 생겨 반으로 쪼개 절이고, 얼갈이 수준의 배추는 그대로 절였다.

이웃에서 얻어온 무 한 개 채 썰고 무청과 쪽파에 고춧가루를 섞어 빨간 물을 들여두었다. 원래는 찹쌀풀을 쑤어야 하지만, 풀 대신 밥 한 덩어리 넣고 액젓, 마늘, 생강, 사과, 배, 양파 넣고 갈아서 빨갛게 된 무채에 부어 섞었다. 새우젓을 추가하고 고춧가루를 더 넣어도 왠지 양념이 걸쭉해지지 않고 흥건하다. 맛은 적당히 김치 양념 맛이 나기에 화룡점정으로 뉴슈가를 넣고 마무리. 절인 배추를 흥건한 양념에 덤벙덤벙 담그다시피 해서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조그만 무도 절여 듬성듬성 같이 넣었다. 얼마 안 돼 보여도 다 하고 나니 10리터 김치통이 꽉 찼다.

사나흘 맛을 들여 그나마 배추 모양인 김치를 골라 양쪽 어머니께 한 통씩 드렸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 여쭤보니 국물까지 다 드셨단다. 맛 평가는 안 하시고 “우리 애들이 농사지어 담근 김치인데 다 먹어야지!” 하신다.

사진을 찍으려 김치를 꺼내 맛봤다. 새콤하고 달달하니 입맛이 돈다. 얼른 원고 보내고 국수 삶을 물 얹어야겠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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