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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사이, 한국과 미얀마

등록 2021-09-20 11:35 수정 2021-09-21 02:57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디아스포라(Diaspora). 생소할 수 있는 이 단어는 그리스 어원으로 ‘널리(dia) 흩뿌리다(speiro)’라는 데서 유래한다. 본디 바빌론유수(기원전 6세기) 이후 뿔뿔이 흩어진 유대민족을 지칭했지만, 현재는 더 포괄적으로 고국을 떠나 살아가는 민족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 많은 디아스포라는 두 문화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혼란’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몸부림을 통해 두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대하는 ‘가교’ 역할로 승화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도 미국에 적을 두고 한국을 오가는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늘 끼어 있는 나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산다. 그러던 중 최근 한 디아스포라 그룹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에 대한 힌트를 얻고 희망을 품게 됐다. 바로 세계 각지에서 고국을 위해 투쟁하는 재외 미얀마인들을 보며 말이다.

37개국 100만 명 미얀마인의 민주화운동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는 총선 결과에 불복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국민은 시민불복종운동 등을 통해 저항했지만, 뻔뻔하고 잔혹한 군부의 폭력 대응으로 지금까지 1100명에 가까운 생명이 희생됐다. 무력을 앞세운 군부의 폭거 앞에 시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해외에 흩어진 100만여 명의 미얀마 디아스포라는 각자의 환경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역할을 찾아 37개국 이상에서 장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노력은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2021년 4월 군부에 대항해 출범한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는 디아스포라 활동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하나로 뭉치는 구심이다. 이들은 활동국과 NUG 사이에 가교 구실을 하며, NUG가 미얀마의 공식 정부로 인정받도록 목소리를 낸다. 9월9일 NUG의 진마아웅 외교장관은 일본 <니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체코,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가 우리가 임명한 정부 대표(특사)를 인정했다. 영국과 일본에도 대표를 임명하고 상호 협력과 관계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얀마 민주화를 바라는 세계 시민들의 염원이 타오르는 가운데 미얀마인들의 진심 어린 호소는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낸다. 미얀마 디아스포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NUG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라’는 국민청원 서명을 한국 국민에게 공유하고 독려했고, 약 27만 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로부터 의미 있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그뿐 아니라 뉴질랜드 의회의 온라인 청원에서도 52만 명의 서명을 받아냈는데, 이는 종전 최고 기록을 무려 5배나 뛰어넘는 수치였다. 재한 미얀마 활동가들은 국회를 오가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등 광범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국의 역사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헌법이 계승하는 임시정부가 바로 망명정부였기 때문이다. 비록 10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해외에서 투쟁했던 우리의 디아스포라 선조들이나, 군부독재를 규탄하며 해외에서 목소리를 높인 1970~80년대 해외 한인 동포들이나, 현재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미얀마 디아스포라들이나 그 결의의 성격은 분명 맞닿는 것이리라.

한국의 디아스포라 선조와 해외 한인 동포

모든 디아스포라의 고국을 향한 마음은 매한가지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마음을 결연하게 한 문제가 100년 전에는 독립, 40년 전에는 민주화였다면, 현재의 그것은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염원이 모여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만들어냈듯, 미얀마 디아스포라의 염원이 미얀마의 진정한 민주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역할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갈 미래를 꿈꿔본다.

김종대 리제너레이션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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