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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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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재미난 농막 생활

무심코 쓰던 전기·물·보일러는 엄청난 문명의 산물
세숫물 2ℓ로 머리까지 감고, 발전기로 전등 켜
등록 2022-01-01 15:37 수정 2022-01-02 01:01
고양이에서 인간으로 진화시켜준 화장실과 변기.

고양이에서 인간으로 진화시켜준 화장실과 변기.

4평짜리 집(실은 창고)을 짓고 보니 느끼는 게 많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것. 무심히 쓰는 전기와 상하수도, 가스보일러, 온수, 정화조 모두 엄청난 문명의 산물이더라는 것.

농막은 최대 20㎡를 넘지 않아야 하고, 땅을 파고 기반공사를 할 수 없으며, 최소의 지지대 위에 가설물로 설치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정화조 설치를 허가하기도, 허가하지 않기도 한다. 상하수도는 신청하면 설치되는데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든다. 우리의 기조는 가성비. 봄이 되면 2t짜리 물통을 놓아 이웃의 지하수를 조달해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상하수도 신청을 하지 않았다. 겨울 동안에는 식수와 씻을 물을 물통에 담아 가져가고, 오수는 받아와 집에서 버리기로 했다.

세상에는 불편을 개선해 발전을 이루는 인간이 있고, 견디다 끝내 익숙해지는 인간이 있다. 나는 후자이다. 결혼 전 겨울에 수도가 동파됐을 때 일주일간 페트병으로 물을 길어다 생활한 적도 있다. 불편에는 재미도 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됫박질하는 건 소꿉놀이하는 것 같고, 또 생존에 필요한 게 그리 많지 않음을 느끼면 앞날에 대한 불안이 덜해지기도 한다.

1박2일 동안 두 명이 먹는 물은 7ℓ면 되고, 사람과 그릇을 씻는 물은 18ℓ면 된다. 충분한 건 아니라서 아껴 써야 한다. 설거지 요령은 우선 그릇을 최소한으로 쓰는 거다. 사용한 그릇은 주방타월로 닦고 설거지통에 담근다. 수세미에 친환경 비누를 조금 묻혀 닦은 뒤 담근 물에 씻고 졸졸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구면 끝. 머리도 감을 수 있다. 물을 받아 세수 먼저 하고, 그 물에 머리를 적신 뒤 샴푸비누로 거품을 내고, 역시 같은 물에 꼼꼼하게 헹군다. 주전자로 부어주는 물에 한 번 헹군다. 이렇게 하면 물 2ℓ 정도가 든다.

화장실은 4평 집 뒤에 0.8평짜리 창고를 설치하고 그 안에 캠핑용 변기를 넣었다. 20ℓ들이 오수통에 미생물을 넣어 충분히 분해되면 변기에 버리는 방식이다. 사용은 일반 변기와 크게 다르지 않고, 의외로 냄새도 나지 않는다. 화장실용 창고 조립이 완성될 때까지 나무 밑에서 고양이 스타일로 파고 싸고 덮다가 변기를 사용하니 일약 인간으로 진화한 느낌이 들더라.

한국전력에 전기를 신청한 지 3주차, 밭에 전신주 2대를 심어줬다. 전깃줄이 연결되는 데 또 한 달은 걸린다고 했다. 내가 불편을 견디는 인간이라면 남편은 발전을 도모하는 인간. 한국전력의 전기가 도착하는 걸 못 기다리고 발전기를 샀다. 80만원! (몇 번 쓰고 중고거래로 팔아도 남는 장사라는 기적의 계산법.)

아무튼 발전기 덕분에 시끄럽긴 하지만 수상한 보일러도 돌리고, 전등도 켜고, 휴대전화 충전도 하며 불편하고 재미난 농막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다 문명 세계로 돌아오면 예쁠 것도 없는 20년 된 낡은 집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농막에선 보일러가 2.5㎾를 잡아먹기 때문에 전기쿡탑을 사용하려면 보일러를 꺼야 하는데, 집에선 계산 없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동시에 돌릴 수도 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멍때리기도 가능. TV에 인터넷까지, 말해 뭐 하리.

여기서 잠깐. 농막에서 잠을 자도 되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귀농귀촌 커뮤니티에서도 명확히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인데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편에 계속….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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