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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덜 불편하면 내가 기뻐요”

10여 년째 동물용 휠체어와 보행보조기 만드는 ‘휠체어 아저씨’ 이철 워크앤런 대표
등록 2021-09-11 11:20 수정 2021-09-14 01:07
2021년 9월3일 서울 송파구 워크앤런 작업장에서 이철 대표가 보행보조기를 찬 반려견을 안아주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1년 9월3일 서울 송파구 워크앤런 작업장에서 이철 대표가 보행보조기를 찬 반려견을 안아주고 있다. 류우종 기자

소변이 급했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길가에 차를 아무렇게나 대놓고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자세히 들어보니 바스락이 아니고 ‘깽깽’ 소리였다. 발로 툭 차니 주먹만 한 시추 한 마리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안 돼 보였다.

0.3㎜ 오차를 줄이기 위한 시행착오

이철(63) 워크앤런 대표가 집에 데려가 돌보기 시작했다. 새벽이슬을 맞고 있었다고 해서 이름을 ‘이슬이’라고 붙였다. 발견 때부터 이슬이는 뒷다리를 제대로 못 썼다. 이런 이유로 버린 건지는 버린 사람을 찾아가 따져 묻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이 대표의 집에서 원래 키우던 다른 강아지 두 마리는 마구 뛰어다니는데, 이슬이는 그나마 성한 앞다리에 의지해 몸을 바닥에 끌고 다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이슬이가 다섯 살쯤 됐을 무렵, 이 대표는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지인 소개로 반려동물 전람회에 갔다. 거기서 동물을 위한 휠체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국돈으로 60만원이 조금 안 되는 적잖은 가격이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사왔다. “애기(이슬이)한테 조립해 끼워주니 너무 잘 다니더라고요. ‘와, 이렇게 좋은 게 있었구나. 왜 한국엔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날 너무 많이 울었어요.”

과거 건축·부동산 분야에서 오래 일한 이 대표가 10여 년째 동물용 휠체어와 보행보조기 등 재활 기구를 만들게 된 결정적 순간이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이슬이는 자유롭게 걷게 된 지 1년쯤 지나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어렵게 구한 휠체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아이가 없을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아픈 반려견과 지내던 이들이 서로 사겠다고 연락했다. 국내시장이 없던 이유가 적어도 ‘수요가 없어서’는 아니란 뜻이었다.

“연락 온 곳 가운데 경기도 포천의 보호소가 있었어요. 우리 애한테 꼭 필요한데 여유가 없다고, 부끄럽지만 좀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하는데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찾아가서 휠체어를 태워줬더니 그 친구가 엄청나게 잘 다니더라고요. 보호소 관계자가 기뻐하며 ‘얘 태우고 쟤 태우고 하면 되겠다’고 했어요.”

이후 일본에 드나들 때마다 휠체어를 사다가 하나둘 기부했다. 횟수가 잦아지자 당연히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일본 나고야의 한 공장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자 반값에 휠체어를 내줬다. 그래도 비용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렵게 해외에서 공수하는 대신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 노인용 ‘실버카’(보행보조차) 공장을 하는 학교 후배를 찾아갔다. 후배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때부터 이 대표는 주말마다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서 알루미늄 자재 구부리는 것부터 하나씩 배워갔다. 이전에 목공이나 용접을 배워본 적은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동물 휠체어를 공수해 가장 가볍고 편리하고 유용한 모양을 궁리했다. 수정을 거듭해 다듬은 휠체어를 마음껏 기부했다. 뒤이어 휠체어뿐 아니라 사람으로 치면 의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보행보조기로도 제품군을 넓혔다.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은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말을 못해요. 단 0.3㎜라도 길거나 짧게 만들면 보조기가 흘러내리거나 끼여서 제대로 걷기 어려워요. 그 디테일한 부분을 파악하기까지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어요.”

가장 먼저 품에 안아봐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대표는 ‘휠체어 아저씨’란 닉네임으로 유명해졌다. ‘비용을 치를 테니 우리 아이 것도 만들어달라’는 연락이 쇄도했다.

“이걸로 사업하려는 생각은 지금도 없어요. 그런데 돈을 조금이나마 받으면 유기견을 도울 자잿값이라도 생기겠다 싶더라고요.” 처음 휠체어를 만든 지 4년쯤 지나서야 정식으로 회사를 차렸다. “이젠 너희도 마음껏 걷고 달리라는 의미로 회사 이름도 ‘워크앤런’(Walk and Run)이라고 지었어요.” 지금은 이 대표와 아들, 조카 그리고 과거 유기견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된 ‘사람용’ 의료기기 제작자 2명까지 총 5명이 동물 보행보조기를 만들고 유통한다.

도움이 필요한 동물 고객이 찾아오면 이 대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품에 한번 안아보는 거다. 안은 채로 한참을 놀아주고 난 뒤 바닥에 내려두고 편하게 돌아다니게 한다.

“처음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병원인 줄 알고 긴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긴장한 채 걷는 걸음과 안도한 채 걷는 걸음은 달라요. 아이 몸에 잘 맞는 보행보조기를 만들려면, 아이들이 ‘여긴 무서운 곳이 아니구나’ 마음 놓고 평소 모양대로 걸을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해요.”

그는 “국내에선 아직 장애견에 대한 편견이 심하지만, 실은 우리가 원인 제공자”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휠체어 타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고 ‘사람 살기도 팍팍한데 강아지한테 뭘 휠체어씩이나 해줘야 하냐’고 대놓고 말한다. 처음 휠체어를 만들기 시작한 때보다는 덜하지만 이 대표를 찾는 고객들이 여전히 산책하며 듣는 이야기다.

“알다보면 더욱 미안해져요.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인간이 지능과 힘이 가장 강하잖아요. 그 덕에 지구가 처음부터 우리 거였던 것처럼 땅에 선을 그어 동물을 모두 뒷전으로 몰아내고 차지한 거고요. 동물은 원래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야 하는 애들이에요. 그랬다면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는 친구도 없었겠죠. 동물에게 발생하는 사고의 대부분이 인간이 만든 현대적 시스템에서 나는 거예요. 직업 혹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오래 못했을 거예요. 얘들을 그나마 덜 아프고 덜 불편하게 해주는 데서 오는 기쁨으로 일하는 거죠.”

무관심하게 지나쳐주기를

이 대표는 장애를 지닌 반려견이 아직 낯선 이들에게 당부했다.

“파이팅, 장하다, 이런 말도 할 필요 없어요. 혹시라도 휠체어 탄 강아지를 길에서 마주친다면,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쳐주세요.”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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