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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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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인신매매’라는데 한국은 아니라고 한다

여권압수·임금체불·성접대 강요가 인신매매 아니라면… 필리핀 여성 성착취는 왜 반복되는가
등록 2024-03-01 06:59 수정 2024-03-05 01:39
2014년 촬영된 군산 미 공군기지 인근 아메리칸 타운. 근처 유흥업소에 근무했던 한국인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마다 호수가 있고 미군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 속 한 장면. 이고운 감독 제공

2014년 촬영된 군산 미 공군기지 인근 아메리칸 타운. 근처 유흥업소에 근무했던 한국인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마다 호수가 있고 미군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 속 한 장면. 이고운 감독 제공


2010년대 초 필리핀 출신인 마리(당시 20대·가명)가 경기도에 있는 한 외국인 전용 클럽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마리는 가수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해 브로커와 함께 이 클럽으로 왔다. 밤이 돼도 공연이 시작될 기미가 없자 자신보다 먼저 클럽에 와 있던 여성에게 “언제 노래를 시작하느냐”고 물었다. 그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우린 공연 안 해. 무대는 단속을 피하려고 있는 거야.” 그 대화를 보던 업주가 테킬라 한 잔을 내밀었다. “저기 있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 돼.”

여권 빼앗고 월 40만원 주며 ‘더 벌려면 성접대’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첫 4개월 일하고 받은 돈은 총 40만원. 고용계약서상의 월급(120만원)·노동조건(8시간 노동)과 달랐다. 비자 수수료, 항공료, 중개료 등 비용이 많이 들었다며, 초반 2∼3개월은 월급을 주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업주는 돈을 더 받으려면 ‘주스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고 했다. 주스 포인트는 손님에게 술을 사게 해 포인트를 쌓는 제도다. 성접대를 해야 할당량을 채울 수 있어 사실상 성매매 강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성매매 강요만 힘든 게 아니었다. “처녀도 아니지 않으냐” 등과 같은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브로커에게 “노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업주는 마리를 또 다른 클럽으로 보내버렸다.

상황은 더 악화했다. 클럽에선 주중 하루 3시간만 외출이 허용됐다. 감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상 감금이었다. 욕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이 따랐다. 동료 중 성폭행 피해자도 있었다.

마리만의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공익법센터 어필이 2020년 1월 한국에 온 5명의 공연 이주노동자를 인터뷰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성착취 패턴은 마리와 같다. 필리핀 현지 인력모집업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거나 부양가족이 있는 젊은 여성에게 ‘한국 레스토랑·주점·관광호텔 등에서 가수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하며 접근한다. 그러곤 실제 노동조건과 다른 노동계약을 맺는다. 필리핀에 있는 매니저가 여성에게 노래 연습을 시킨 뒤 영상을 만들어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내면, 위원회는 노래 영상을 보고 판단해 공연추천서를 발급한다. 공연기획사는 고용계약서, 공연추천서 등을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해 예술흥행(E-6) 비자를 발급받는다. 그렇게 한국에 온 뒤로는 모두 마리와 같은 경로를 겪게 된다.

‘인신매매 피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질문은 없었다

이런 인신매매 구조는 한국에서 20년 이상 지속됐다. 수법은 더 교묘해졌다. 업주는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오는 순간 발생한 부채를 미끼로 성매매를 강요한다. 여권을 빼앗고, 경찰과 법원에 자신들의 친인척이 있다고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 여성들이 탈출이나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겁박한다.

마리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매매 단속으로 처음 경찰에 붙잡혔을 때, 경찰 중 한 분이 우리가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건 좀 인지한 듯했어요. 우리를 돌려보내면서 ‘업소에서 도망치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업주가 ‘내가 저 경찰에게 큰 돈을 줘서 네가 풀려난 것’이라고 거짓말했어요. 경찰이 (업주와) 한편은 아닌지 혼란스러워서 업주에게 유리하게 허위진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업소로 돌아왔지만, 처음 만난 경찰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1년 뒤 마리와 동료들은 결국 업소에서 도망쳤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 숨었는데,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한 또 다른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하지만 이 경찰들은 더 이상 마리와 동료들이 ‘인신매매 피해자’일 가능성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수갑을 찼고 포승줄에 묶였다. 체포 사유는 E-6 비자를 소지한 필리핀 출신 공연 이주노동자의 근무지 이탈, 그리고 근무지에서 노래가 아닌 성매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45일 동안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되고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한 필리핀 목사가 이주여성 보호단체와 공익변호사를 만나게 도왔다. 마리는 “당시 구금 기간이 얼마인지조차 통보되지 않았다”며 “단체와 변호사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대체 얼마나 오래 구금돼 있어야 했을지 아득하다”고 말했다.

업주에게 유리한 진술 하도록 종용·협박당해

이들은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강제출국(퇴거)·구금(보호) 명령을 내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법적 소송을 시작했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2018년과 2020년 행정소송·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잇달아 제기했으나 최종 패소했다. 결국 유엔에 진정을 냈는데, 유엔의 판단은 한국 정부와 달랐다. 2023년 11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이 강제 성매매를 당한 3명의 필리핀 여성을 인신매매 피해자로 확인하고 보호하는 데 실패하고, 사법 및 충분한 구제방안 접근을 보장하지 않아 이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이 여성들에게 완전한 보상을 하고, 인신매매 행위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위원회 결정이 재심 대상 판결에 어떤 법적 구속력 내지 영향력을 미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종철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한국 정부가 인신매매 정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6 비자를 소지한 필리핀 출신 공연 이주노동자들이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도 출입국사무소는 이들이 강제퇴거 대상자인지를 조사할 때 깊이 심사하지 않았어요.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상 인신매매에 해당하거든요. (2000년 12월) 한국도 여기 가입하면서 국내법으로도 최근 인신매매방지법이 생겼어요. 여기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피해자가 착취에 대해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인신매매를 구성하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다’는 거예요. 당국에서는 ‘다 알고 온 것 아니냐’ 같은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다양해요. 다 알고 온 사람도 있고, 대충 알고 온 사람도 있고, 완전히 속아서 온 사람도 있고. 그런데 핵심은 그 착취에 자기가 동의했더라도 결국은 강제 성매매에 내몰리는 상황이 있었고, 자발적으론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잖아요.”

실제로 검찰은 ‘피해자들이 업무시간 외에 외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각자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었는데도 경찰 단속 전까지 외부에 항의 표시를 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피해자들에게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피해자들이 사장의 성매매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이를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원고들(피해자들) 역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사장의 성매매 요구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이 제기한 강제퇴거 명령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구금 기간 동안 필리핀 여성들이 업주나 업주 쪽 변호사와 접견하도록 방치했다. 이때 필리핀 여성들은 업주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도록 종용·협박하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마리 등 필리핀 여성 3명은 유엔의 배상 권고를 근거로 2023년 12월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한국 정부의 강제퇴거·보호 명령으로 인해 자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이 부당하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인신매매 피해자 권리 보장 제도 부재

현재 한국에는 인신매매 피해자의 취업 및 체류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없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가버리는 이유다. 실제로 마리와 함께 도망친 동료 중 일부는 빠르게 비행기표를 끊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필리핀 여성 성착취 문제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의 이고운 감독은 “이분들의 이야기가 끝까지 못 가는 게, 대부분 너무 젊은 분들이라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깊이 얘기하기엔 개인 신상정보가 알려지는 게 불안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우려해 자기 이야기를 빼달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여성들에게 성적·정신적 학대를 가하는 업주에 대한 범죄 규명은 어렵고, 당국은 이를 무관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김종철 변호사는 “마리 등을 괴롭혔던 업주는 지금도 업소를 운영하고 있고, 이제는 자신을 신고한 착취 피해자들을 무고죄, 사기죄로 고소하는 상황까지 나아갔다”고 전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존엄성 지키려고 소송했다” 마리씨 인터뷰

인신매매의 대표적 이용 수단은 ‘취약성’이다. 필리핀 성착취 피해 여성 대부분은 매우 가난하고 부양할 대가족이 있다. 특히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다. 성산업에 가담하는 가해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자기 행위를 합리화한다. <한겨레21>과 인터뷰한 마리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말하고 싶었지만, 수사·재판 과정에서 늘 자신을 ‘범죄자로 의심하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왜 가수가 되고 싶었나.
“필리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음악가였다. 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걸 좋아했고, 어머니는 다시 나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어른들은 내게 재능이 있다며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세계적인 필리핀 가수 레진 벨라스케스가 부른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겁니다’(You’ll never walk alone)였다. 이 곡으로 어렸을 때 어느 대도시의 노래경연대회에서 수상했다. 가족들은 노래를 다 잘해서 노인부, 성인부, 어린이부 각각 출전해 상을 휩쓸기도 했다. 가수의 꿈을 키우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더라도 레스토랑이나 주점에서 작은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삶은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왜 한국에 올 생각을 하게 됐나.
“가수를 꿈꿨지만 그 여정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은행에 취업해 돈을 벌면서 준비해야겠단 생각으로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대학 2년차에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 남자친구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회사원이었기에 월급이 너무 적었고 집도 매우 가난했다. 양육비를 청구할 상황도 되지 못했다. 아이를 갓 낳았을 무렵, 이모의 친구는 일본이나 한국의 식당·주점에서 노래하면 필리핀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거절했다. 하지만 아이가 두 살이 돼 말하기 시작했을 무렵, 에이전시 매니저라는 이모의 친구는 또다시 가수 활동을 권유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계약 사항을 확실히 들었나.
“에이전시는 계약하기로 한 당일 비행기표를 준비했다. 모든 절차는 너무나 모호하고 정신없이 진행됐다. 차가 기다리고 비행기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손에 가려 내용도 잘 보이지 않는데 빨리 사인하라고 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많겠다.
“노출이 너무 심한 옷을 입을 것을 강요해 운동할 때 입는 타이츠를 입고 나오자 하의를 입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손님들이 신체를 공격적으로 추행해 도움을 요청하자 ‘처녀도 아닌데 뭐 어떠냐’며 돌아섰다. 나는 일부러 업주를 피해 다녔지만, 동료 중에는 업주에게 성폭행당한 이도 있다. ‘손님이 6만원치, 3만원치 술을 사줬으니 같이 가야 한다’고 강요하는가 하면, 손님이 팁이나 선물을 가져오면 모두 화내며 빼앗아갔다.”

—정부의 조처는 어떻게 느껴졌나.
“조사하는 사람들의 눈에 나는 이미 범죄자인 듯했다. 범죄자로 낙인찍어놓은 이후 질문할 뿐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잠잘 시간을 주지 않아 출입국사무소에서 의자에 기대앉아 존 적이 있는데, 리모컨으로 테이블을 탕탕탕탕 내리치며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이들은 기자들이 출입국사무소에 취재를 온 날은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다.”

—소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고 어려운 상황인데, 무엇을 위해서 했나.
“존엄성(Dignity). 내 이름을 깨끗하게 하는 것(Clear my name). 재판장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은 ‘쟤네는 필리핀 가난한 집 애들이라서 돈 받아내려고 저러는 것’이란 업주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눈물을 잘 참았는데, 이 얘기를 할 땐 계속 눈물이 난다. 눈물을 보여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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