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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약이는 이제 ‘로코킹’

남자1이 ‘남주’가 되기까지… <그해 우리는> 최우식이 그려가는 측은지심
등록 2022-01-03 16:33 수정 2022-01-03 22:51
스튜디오N, 슈퍼문픽쳐스 제공

스튜디오N, 슈퍼문픽쳐스 제공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지. 남자 주인공과 그 친구. 혹은 여자 주인공의 미래 남친(남자친구)과 스쳐 지나가는 남자 1, 2, 3, 4.

친구와 ‘지나가는 남자’로 주로 나오던 배우 최우식이 요즘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여자 주인공의 구남친이자 (아마도) 미래 남친이자 현 썸남으로 나와 숨겨져 있던 ‘로코킹’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내가 최우식을 제대로 본 건 2017년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였다. 주인공 최애라(김지원 분)를 스쳐 지나가는 남자(박무빈) 역이다. 자기 연민에 가득 찬 엘리트 숙맥인데, 결국은 나쁜 놈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나쁜 놈이 찌질하게 김지원을 구해주는 장면에서, 어렵게 찾아가 운동화를 신겨주는 장면에서 설렜다. ‘이거 주인공 바뀌어야 하는 거 아냐?‘

최우식의 인터넷 세계 애칭은 ‘삐약이’다. 비쩍 마른 몸매, 외쌍꺼풀의 작은 눈, 작고 뾰족한 코, 오밀조밀한 입.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주얼로 몸을 허우적거리면서 대사를 하면 정말 “삐약삐약” 하는 것 같다. TV 멜로드라마 첫 주연작 <호구의 사랑>에서 보인 동요 <작은 동물원>의 ‘삐약삐약 병아리, 음매음매 송아지’ 가사에 맞춰 춘 율동이 그 별명의 시작이다. 유튜브에서는 ‘최우식 병아리 시절 모음’ ‘삐약삐약 우식이 귀여움 모음’ 동영상이 가득하다.

나영석 피디는 삐약이 최우식을 백분 활용한다. 리얼리티 예능 <여름방학>에 데려다놓고 어린 시절 비쩍 마른 평범한 친구와 보내던 신나고 따뜻한 여름방학을 재현했다. 삐약이 최우식이 탁구를 해도 “삐약삐약 잘 치고”, 그림일기를 그리니 ‘5살 삐약이 감성’이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윤스테이>에서는 어딘가 초보스럽고 어색한 최우식이 윤여정과 이서진이라는 베테랑 경영진 사이에서 균형점을 맞춘다.

그러나 삐약이 최우식의 연기는 사실 삐약이가 아니다. 배우 최우식은 2014년 김태용 감독의 영화 <거인>에서 그룹홈을 나와야 하지만 나가기 싫어서, 그곳에 머무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처절하게 하는 소년 영재 역을 맡아 봉준호 감독을 사로잡은 ‘측은지심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후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의 시작점이다.

측은지심은 어떤 행동의 여러 속사정을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최우식은 그 인물이 하는 행동의 이유와 감정의 기저를 특유의 얼굴에 담아 표현해낸다. 그 덕에 보는 이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최우식의 인물들에게 ‘측은지심’을 갖게 된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최우식이 하는 ‘최웅’(웅이)의 연기도 별다른 이해가 필요하지 않다. 최우식이 회차를 거듭하며 쌓아올린 웅이의 사정을 시청자는 이미 온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구남친’ 웅이가 ‘구여친’ 국연수(김다미 분)에게 하는 모진 말에 오히려 웅이가 안쓰럽고, 다시 웅이가 마음 편히 사랑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랄 뿐이다. 빗속에서 우산을 던지며 선사한 키스 신에는 그저 환호할 뿐. 한 인터뷰에서 최우식은 “<그해 우리는> 이후에는 ‘로코킹’으로 불리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삐약이 최우식은 이제 그의 바람대로 내 마음속 ‘로코킹’이다.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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