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사의 대미는 감자 캐기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감자를 캐낸 밭은 고이 덮어 쉬게 둔다. 입추가 오기 전에 심을 배추와 무로 넘어가기 위함이다. 얼치기(!) 농사를 지으며 칼럼까지 쓰면서 감자를 캐낸 이후 배추, 무를 심기 전까지. 지난해 여름에도 뭘 쓰기가 괴로웠다. 짓는 농사(아니, 농사 참여도)가 별로 없는데, 뭔가를 꾸역꾸역 써내는 일이.
올해 농사는 전국 방방곡곡 많은 텃밭에 좌절과 공포를 안겼을 것이다. 비는 안 오고, 날은 뜨거워지고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첫해에도 그랬다. 그래도 그땐 모든 것이 새로웠다. 비가 오지 않았을 땐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알아봤고, 날이 뜨거워졌을 때는 반나절 이상 땡볕과 싸우며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힘들었지만 말 그대로 재밌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난다는 말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이었달까. 분명 그때는 올해 색다른 접목을 해보겠다, 꿈꿨다.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처음 열매가 맺을 때 ‘타임랩스’(저속촬영)를 찍어 10만 유튜버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소포머 슬럼프’(Sophomore Slump)라도 걸린 걸까. 올해 농사에 유독 흥미를 잃었다. 작물을 고르고 뿌릴 때부터 그랬다. 그리고 내내 농사에 손을 전처럼 대지 못했다.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비가 너무 안 오고 날은 빨리 뜨거워지고 환경이 나빠서였을까, 여러 생각을 해봤지만… 결론은 내 열정이 결국 평균으로 회귀했단 생각이 들었다. 손발이 고되고, 매주 날씨를 염려하며 노심초사하던 나의 열정이 짧고 얕은 나의 심성으로 ‘평균 회귀’한 것이다.
지난해엔 감자 씨알이 좋지 않았다. ‘농달’은 우리가 밭에 한 번에 거름을 너무 많이 주어 잎사귀만 무성해지고 감자 씨알이 굵어지지 않은 것이란 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올해 감자는 달랐다. 별로 신경 쓴 것도 없는데 갑자기 감자가 좋아진 이유가 무엇인지 농달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지난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홈런을 쳤던 고추 농사가 올핸 난항을 겪고 있다. 약도 정확히 쳤고, 노하우도 더 쌓였는데 그건 또 왜 그럴까. 여기서 또 묘한 기분이 든다. 농사란 결국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종종걸음만 치는 것이 아닐까.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이 있다고 밭이 있는 한 농사는 계속되겠지만 올해 농사(참여)는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1년 넘게 써왔던 이 칼럼에서 물러나야겠단 생각을 한 이유다. 기후위기의 시대, 밥상머리 채소 가격이 살벌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때, 텃밭은 크나큰 의미와 즐거움이 돼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도시의 누구라도 기본 텃밭을 가질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다시 돌아오겠다. 곧.
글·사진 김완 <한겨레> 영상뉴스부 기자
*김완 기자의 ‘농사꾼들’을 대신해 인천에서 분해정원을 가꾸는 이아름씨가 새 필자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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